사진=픽사베이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왔고, 심지어 이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가 직업이 됐는데도 여전히 ‘관계’라는 건 어렵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책장에는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가 거의 장식품처럼 꽂혀 있었다. 여기서 ‘장식품’이라고 한 건 분명 보긴 한 것 같은데, 크게 이렇다 할 기억이 남아있지 않아서다. 그중 ‘빨간 머리 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인어공주’ ‘플랜더스의 개’ 등 몇 개의 책만 너덜너덜하게 낡았다.  그 때의 책들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넷플릭스에서 ‘빨간 머리 앤’이 시리즈로 올라오고, 전시가 열리면서 구석에 20여년을 웅크리고 있던 빨간 머리에 주근깨 많은 고아 소녀를 다시 꺼냈다. 다시 집어든 책은 그때 봤던 책과는 두께부터가 달랐다. 족히 10배는 넘는 두께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런 말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앤.”  한시도 입을 닫고 있지 못하는, 어쩌다 입을 다물었다 해도 책에서는 소녀가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것까지 일일이 글자로 보여주다 보니 그 피로감은 상당했다. 그럼에도 소녀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성격은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무엇하나 ‘거짓’된 감정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가끔 지나치게 솔직해서 문제가 되긴 하지만.  나 역시 사람을 만나면서 ‘솔직함’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최근 지인 중 한 명은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했다. 어쩌다 알게 됐는데 각자에게 한 말이 모두 앞뒤가 맞지 않았다. ‘거짓말’을 다수에게 하려다 보니 당사자도 혼란이 왔던 것이다. 당연히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꾸미려는 사람, 인간관계에 있어서 늘 서투르고 어색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지독하게 솔직한 편이 손해를 덜 본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을 경계할 친구는 없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지독하게 솔직한 어린 앤이 부럽기도 하고, 응원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앤에게 투영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경 가운데서도 희망을 품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긍정적인 앤과 그런 앤을 품으며 되레 사랑을 배운 마릴라와 매슈, 그리고 온정 넘치는 에이번리 이웃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잠시 잊고 살았던 ‘나’와 주변을 되돌아보게 한다.

[책에 길을 묻다] 아이나 어른이나 ‘관계’는 늘 어렵다

'빨간 머리 앤'을 통해 되돌아 보는 인간관계

박정선 기자 승인 2019.11.15 10:09 의견 0
사진=픽사베이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왔고, 심지어 이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가 직업이 됐는데도 여전히 ‘관계’라는 건 어렵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책장에는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가 거의 장식품처럼 꽂혀 있었다. 여기서 ‘장식품’이라고 한 건 분명 보긴 한 것 같은데, 크게 이렇다 할 기억이 남아있지 않아서다. 그중 ‘빨간 머리 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인어공주’ ‘플랜더스의 개’ 등 몇 개의 책만 너덜너덜하게 낡았다. 

그 때의 책들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넷플릭스에서 ‘빨간 머리 앤’이 시리즈로 올라오고, 전시가 열리면서 구석에 20여년을 웅크리고 있던 빨간 머리에 주근깨 많은 고아 소녀를 다시 꺼냈다. 다시 집어든 책은 그때 봤던 책과는 두께부터가 달랐다. 족히 10배는 넘는 두께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런 말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앤.” 

한시도 입을 닫고 있지 못하는, 어쩌다 입을 다물었다 해도 책에서는 소녀가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것까지 일일이 글자로 보여주다 보니 그 피로감은 상당했다. 그럼에도 소녀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성격은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무엇하나 ‘거짓’된 감정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가끔 지나치게 솔직해서 문제가 되긴 하지만. 

나 역시 사람을 만나면서 ‘솔직함’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최근 지인 중 한 명은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했다. 어쩌다 알게 됐는데 각자에게 한 말이 모두 앞뒤가 맞지 않았다. ‘거짓말’을 다수에게 하려다 보니 당사자도 혼란이 왔던 것이다. 당연히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꾸미려는 사람, 인간관계에 있어서 늘 서투르고 어색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지독하게 솔직한 편이 손해를 덜 본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을 경계할 친구는 없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지독하게 솔직한 어린 앤이 부럽기도 하고, 응원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앤에게 투영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경 가운데서도 희망을 품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긍정적인 앤과 그런 앤을 품으며 되레 사랑을 배운 마릴라와 매슈, 그리고 온정 넘치는 에이번리 이웃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잠시 잊고 살았던 ‘나’와 주변을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