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144P-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 모를 ‘82년생 김지영’을 읽는 내내 가장 속 시원한 김지영 씨의 말이다.  1982년에 출생한 가장 흔한 여자 아이 이름 김지영. 그야말로 ‘흔녀’ 김지영이 세상의 모든 ‘흔녀’를 대변한 책 ‘82년생 김지영’은 그만큼 많은 공감 속에서 영화가 개봉됐다.  서점가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소설 판매율이 급증했다고 하고, 평단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이 시대의 페미니즘을 이야기 한다고 논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관람을 두고 연인 혹은 부부 사이의 갈등이 야기됐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집어든 여성들, 적어도 1982년 이전에 태어난 여성들에게 이 책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이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해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 둘째, 셋째, 넷째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대. 남아 출산율이 높아 성비마저 무너졌던 1980년대에 태어나, 여학생들에게‘만’ 정숙과 단정을 강요했던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취업난이 막 시작됐던 2000년대에 사회에 발을 내딛어, 3포-4포-5포…말도 많은 2010년대에 결혼과 출산을 한 여성들.  그들은 여전한 남성우월주의와 여성비하가 만연한 시대에 직업을 가졌고,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다. 그 대가는 자아와 책임 사이에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경제는 어려워져 남자 혼자서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이른바 ‘외벌이’로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이 사회는 능력 있는,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피곤해 한다.  어디 가족 내에서라고 다를까. 아내와 남편, 모두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바깥양반’이면서도 집안일과 육아에 있어서는 유독 여성에게만 ‘안 사람’이기를 강요하는 사회다. 남성의 집안일과 육아는 ‘도움’이라 미화되고, 여성의 경제 활동은 ‘당연’시 되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 사회다.    올해 초 발표된 통계청 자료만 봐도 명백하다. 1999년부터 5년 주기로 실시되는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기혼 남녀의 시간관리 실태 분석에서 남자의 하루 평균 가사 관리 시간은 19분이다. 반면 여자의 하루 평균 가사 관리 시간은 140분. 무려 7배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충이니, 김치녀니 하는 여성 비하 신조어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다. 집안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결혼 후 시댁 식구들 앞에서…하고 싶은 말을 삼킬 수  밖에 없었던 김지영 씨에게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김지영 씨들에게 선택지는 있는 것일까.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165P- 결혼과 출산으로 일과 꿈을 포기한 김지영 씨. 산후우울증에서 겨우 벗어나 첫 외출에서 커피 한 잔 마셨다가 “맘충”이라는 시선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결국 김지영 씨는 소위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미치는 것만이 해법인 것 같은 현 시대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일과 가사, 꿈과 현실, 자아와 책무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사회 제도는 느리게, 지나칠 정도로 느리게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의 암묵적인 동의 하게 철저히 희생양이 되고 있는 여성들이 과연 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적어도 이 길만큼은 여성 스스로 찾기보다 사회적인 인식과 동의 속에서 찾아내 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생명’이라는 거룩함에 철저히 갇혀버린 여성들, 그리고 각종 미사여구로 창살을 더욱 견고하게 치장한 가족들, 그 보이지 않는 폭력에서 벗어나는 길이 오로지 ‘미치는’ 것뿐이라면 최하위 수준의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OECD 평균 정도로 올라가기를 먼저 포기해 주어야 할 것이다.

[책에 길을 묻다] 어쩌면 미치는 것이 유일한 길이 었을까?…‘82년생 김지영’

박진희 기자 승인 2019.10.29 09:25 의견 0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144P-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 모를 ‘82년생 김지영’을 읽는 내내 가장 속 시원한 김지영 씨의 말이다. 

1982년에 출생한 가장 흔한 여자 아이 이름 김지영. 그야말로 ‘흔녀’ 김지영이 세상의 모든 ‘흔녀’를 대변한 책 ‘82년생 김지영’은 그만큼 많은 공감 속에서 영화가 개봉됐다. 

서점가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소설 판매율이 급증했다고 하고, 평단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이 시대의 페미니즘을 이야기 한다고 논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관람을 두고 연인 혹은 부부 사이의 갈등이 야기됐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집어든 여성들, 적어도 1982년 이전에 태어난 여성들에게 이 책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이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해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 둘째, 셋째, 넷째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대. 남아 출산율이 높아 성비마저 무너졌던 1980년대에 태어나, 여학생들에게‘만’ 정숙과 단정을 강요했던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취업난이 막 시작됐던 2000년대에 사회에 발을 내딛어, 3포-4포-5포…말도 많은 2010년대에 결혼과 출산을 한 여성들. 

그들은 여전한 남성우월주의와 여성비하가 만연한 시대에 직업을 가졌고, 결혼을 했고, 출산을 했다. 그 대가는 자아와 책임 사이에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경제는 어려워져 남자 혼자서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이른바 ‘외벌이’로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이 사회는 능력 있는,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피곤해 한다. 

어디 가족 내에서라고 다를까. 아내와 남편, 모두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바깥양반’이면서도 집안일과 육아에 있어서는 유독 여성에게만 ‘안 사람’이기를 강요하는 사회다. 남성의 집안일과 육아는 ‘도움’이라 미화되고, 여성의 경제 활동은 ‘당연’시 되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 사회다.   

올해 초 발표된 통계청 자료만 봐도 명백하다. 1999년부터 5년 주기로 실시되는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기혼 남녀의 시간관리 실태 분석에서 남자의 하루 평균 가사 관리 시간은 19분이다. 반면 여자의 하루 평균 가사 관리 시간은 140분. 무려 7배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충이니, 김치녀니 하는 여성 비하 신조어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다. 집안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결혼 후 시댁 식구들 앞에서…하고 싶은 말을 삼킬 수  밖에 없었던 김지영 씨에게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김지영 씨들에게 선택지는 있는 것일까.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165P-

결혼과 출산으로 일과 꿈을 포기한 김지영 씨. 산후우울증에서 겨우 벗어나 첫 외출에서 커피 한 잔 마셨다가 “맘충”이라는 시선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결국 김지영 씨는 소위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미치는 것만이 해법인 것 같은 현 시대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일과 가사, 꿈과 현실, 자아와 책무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사회 제도는 느리게, 지나칠 정도로 느리게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의 암묵적인 동의 하게 철저히 희생양이 되고 있는 여성들이 과연 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적어도 이 길만큼은 여성 스스로 찾기보다 사회적인 인식과 동의 속에서 찾아내 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생명’이라는 거룩함에 철저히 갇혀버린 여성들, 그리고 각종 미사여구로 창살을 더욱 견고하게 치장한 가족들, 그 보이지 않는 폭력에서 벗어나는 길이 오로지 ‘미치는’ 것뿐이라면 최하위 수준의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OECD 평균 정도로 올라가기를 먼저 포기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