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소희 기자] 여기 가수 그리즐리가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이 있다. 그 안에는 하늘을 나는 글라이더도 있고 예쁘게 무지개도 떠 있다. 해적도 나타났지만 마치 동화에서 등장할 법한 익살스러운 이들이다. 밤이 내려앉은 곳에는 낭만적인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인 하나의 섬, 그곳이 바로 그리즐리가 그린 그림이자 그가 살고 있는 현재다. 그리즐리가 최근 발매한 새 EP앨범 ‘아일랜드(Island)’는 ‘하나’의 기분을 준다. 각각의 트랙은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요소요소다. 그래서 앨범을 차례로 듣고 있으면 각각의 것들이 그려진 여러 장의 투명 슬라이드를 한데 겹쳤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그림을 보는 듯하다. 타이틀곡은 ‘섬’이다. 그리고 그를 이루는 수록곡은 ‘글라이더’ ‘레인보우’ ‘해적’ ‘로스트’ ‘불꽃놀이’ 이렇게 5개다.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아일랜드’의 시작, 제주도 “제주도에 일주일 여행을 갔어요. 거기서 묵었던 곳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죠. 사장님이 인테리어를 하셨다고 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졌어요. 다음에는 제주도에 살기 위해 오겠다고 했죠. 그렇게 서울에 갔는데 사고가 있었어요. 공연 직전 공연장 수도관이 터져서 관객을 돌려보내야 했어요. 준비도 많이 했고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에 엄청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마음을 달래려고 다시 제주도에 갔죠” 다시 제주도를 찾은 건 뜻밖의 사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덕분에’라고 말해도 될 듯하다. 그 일을 계기로 한 단계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꿈꾸던 나날들을 지내다 왔기 때문이다. 그리즐리는 그 경험을 두고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기간”이라고 표현했다. “원래 한 달 있으려고 했는데 너무 좋아서 몇 주 더 있었어요. 제주도에서 반신욕도 하고 영화랑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 그게 하루일과였어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하거든요. 내가 하는 음악은 뭘까, 뭘 놓치고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했죠. 앨범 작업을 하러 간 것도 있는데 그렇게 쉬다보니까 오히려 작업이 더 잘 되더라고요. 앨범이나 곡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앨범에는 제주도에서 느꼈던 걸 담았어요”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리즐리의 순수한 현재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번 앨범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감정들로 채워졌다. 그리즐리의 그간 작업들이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며 그리워하고 아파하기도 하고 웃음 지으며 이뤄졌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아일랜드’는 현재 지향적이에요. 트랙마다 모두 내가 지금 느끼는 것들이거든요. 제주도에서의 모든 것을 다 담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자연적인 것들까지도요. 물론 지금도 지나가면 과거가 되니 나중엔 또 과거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제는 현재에 충실하고 지금 내 기분에 맞춰 살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앨범 커버를 보고 하나하나 트랙을 곱씹어보니 저절로 동화 같은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제주도’를 떠올렸을 때 고요함, 푸릇푸릇함, 단순함 등 여러 이미지들이 떠오르지 않나. 그리즐리의 제주도는 그 중에서도 ‘순수함’을 닮아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하자 그리즐리는 바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억지로 꾸미거나 만들어낸 게 아니라 현재의 내 모습을 담은 거니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제주도에 있을 때 가족들이 찾아온 적이 있거든요. 장르나 색깔 등 음악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해줬어요. 특히 형이 ‘너는 인디도 알앤비도 아니고 명확한 장르가 없어서 애매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리즐리는 그리즐리고, 무엇이든 내 머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나의 것이다’라고 답했어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다. 그리즐리는 이번 EP앨범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이미 순수함 그 자체를 원동력 삼아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 앨범 준비를 하면서 어려운 게 있었다면 타이틀곡 선정이었어요. 회사는 대중적인 곡을 원하니까요. ‘다 좋은데 이건 타이틀감으로 좀 약하다, 덜 대중적이지 않냐’고 해요. 각자 입장이 있는 거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많이 담은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타이틀곡은 제가 꼽은 ‘섬’이에요. (웃음)”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자연친화적인 노래가 만들어진 과정 사실 타이틀곡 ‘섬’은 가장 마지막에 쓰인 곡이다. 서울 올라가기 일주일 전에 완성됐다. 제주도에 찾아왔던 형이 해준 조언을 듣고 대화를 하다 보니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잘 써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미니멀한 곡도 많고, 믹싱할 때 목소리에도 기계음을 많이 쓰지 말자고 했어요. 나를 더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다른 요소들은 드라이하게 잡았죠. 또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떠나자’고 느꼈으면 좋겠다 싶어서 바다소리 등도 담았어요. 자연친화적이죠. 하하” 그리즐리는 제주도의 소리에 귀담았다. 차 소리도 안 나고 사람도 없는 고요함을 즐겼다. 밤바다에서 일정치 않은 파도 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불꽃놀이를 하는 커플을 보고 ‘불꽃놀이’를 떠올렸고, 장난스럽고 술 취한 느낌이 나는 ‘해적’도 만들었다.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점은 이례적으로 ‘현재의 나’를 담은 앨범인데 피처링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summersoul은 ‘글라이더’에, 크루셜스타는 ‘레인보우’에, 스텔라장은 ‘불꽃놀이’에 참여했다. 본인의 것으로만 채울 법도 한데 그리즐리는 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렸을까? “1절 만들고 나면 항상 2절 만들기가 귀찮거든요. (일제히 웃음) 나에 대한 이야기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음악적으로 필요하겠다 싶어서요. ‘레인보우’도 만들다가 랩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크루셜스타에게 부탁했는데 하루 만에 가사를 주더라고요. summersoul은 SNS로만 아는 사이었는데 같이 작업하면서 아예 믹스까지 맡겼어요. 스텔라장은 첫 소절 내뱉는데 깜짝 놀랐어요. 30분 만에 녹음을 끝냈어요. 심지어 내가 ‘본인이 직접 디렉을 봐라. 수정할 게 없다’고 말했어요. 스텔라장은 ‘왜 자꾸 나한테 맡기냐. 수정할 거 해달라’고 말했지만 말이에요. (웃음)”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앞으로도 반짝거릴 섬 그렇다면 현재가 모여 만들어낼 그리즐리의 미래는 어떨까? 스스로와 대화를 나눌 줄 알고 본인의 것을 찾아갈 수 있는 그이기에 감히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리즐리는 최근 영국 런던에서 공연을 펼치며 이례적인 행보를 걸었다. 이에 “잘 나간다”고 부추겼더니 무던(?)한 성격의 그리즐리는 뭐가 잘 나가냐며 손사래를 쳤다. “런던 공연은 좋은 경험이었어요. 언제 다시 하게 될 줄 모르잖아요. 여러 인종의 관객을 한 곳에서 만나니 색다르더라고요. 눈빛이 좀 달라요. 다들 눈 감고 노래를 감상하거나, 춤을 추고 맥주를 마셔요. 내가 앉으면 관객들도 뭘 깔지도 않고 그냥 바닥에 앉아요. 공연 시작 전에도 밋앤그릿을 했는데, 질문들도 신선했어요. 처음부터 좋아하는 색깔이나 음식 등을 묻는데 그런 대화들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런던으로 떠나기 전 별다른 실감을 하지 못했던 그리즐리지만 막상 공연에 돌입하자 기존의 틀을 깨는 영감을 받고 왔다. 이번 경험으로 명확한 무언가가 떠올랐다기보다,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며 새로운 환기가 됐다는 쪽이 더 맞다.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람은 역시 멀리 나가야하는구나 느꼈어요. 스태프 분들한테도 ‘행복은 가까이에 있는 게 아니라 멀리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웃음) 멀리 간만큼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와 다른 건축물, 오래된 것들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걸 쌓는 모습 등을 보며 멋있다고 느꼈어요. 한 브랜드 매장에 갔는데 일하는 직원들이 행복해하는 것도 봤어요. 안에 DJ도 있고 음악도 나오는데, 직원들이 물건을 가져올 때도 서로 춤추고 대화하면서 다니더라니까요!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는 게 멋있었어요” 그러면서 그리즐리는 이날 입고 온 의상도 모두 런던에서 사온 거라며 웃었다. 기분 좋은 출발을 알린 그리즐리는 오는 14, 15일 해브어나이스데이 무대에 오른다. 데뷔 후 처음으로 서는 페스티벌이다.  공연장 수도관도 터지고, 런던 공연도 1회가 취소가 되는 등 일을 겪은 그리즐리는 스스로를 공연에 있어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도 “재밌을 것 같다. 지난해 한강을 건너면서 ‘나도 여기에서 하는 행사에 나가겠다’고 말했는데 우리게 돼서 좋다”고 흐뭇해했다.  그리즐리의 꿈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 이런 것들이 또 다른 현재의 그리즐리가 그릴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산책하면서 나무 사이사이 맑은 기운들을 느꼈다. 초록색의 숲을 나의 섬에 들이고 싶다”고 했다. 바다 그리고 나무, 그리즐리의 섬에 순수한 그 어떤 것들이 쌓여갈 때마다 그곳의 공기는 반짝거린다.

그리즐리의 순수한 ‘섬’

이소희 기자 승인 2018.04.06 12:19 | 최종 수정 2136.07.10 00:00 의견 0

[뷰어스=이소희 기자] 여기 가수 그리즐리가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이 있다. 그 안에는 하늘을 나는 글라이더도 있고 예쁘게 무지개도 떠 있다. 해적도 나타났지만 마치 동화에서 등장할 법한 익살스러운 이들이다. 밤이 내려앉은 곳에는 낭만적인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인 하나의 섬, 그곳이 바로 그리즐리가 그린 그림이자 그가 살고 있는 현재다.

그리즐리가 최근 발매한 새 EP앨범 ‘아일랜드(Island)’는 ‘하나’의 기분을 준다. 각각의 트랙은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요소요소다. 그래서 앨범을 차례로 듣고 있으면 각각의 것들이 그려진 여러 장의 투명 슬라이드를 한데 겹쳤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그림을 보는 듯하다. 타이틀곡은 ‘섬’이다. 그리고 그를 이루는 수록곡은 ‘글라이더’ ‘레인보우’ ‘해적’ ‘로스트’ ‘불꽃놀이’ 이렇게 5개다.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아일랜드’의 시작, 제주도

“제주도에 일주일 여행을 갔어요. 거기서 묵었던 곳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죠. 사장님이 인테리어를 하셨다고 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졌어요. 다음에는 제주도에 살기 위해 오겠다고 했죠. 그렇게 서울에 갔는데 사고가 있었어요. 공연 직전 공연장 수도관이 터져서 관객을 돌려보내야 했어요. 준비도 많이 했고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에 엄청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마음을 달래려고 다시 제주도에 갔죠”

다시 제주도를 찾은 건 뜻밖의 사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덕분에’라고 말해도 될 듯하다. 그 일을 계기로 한 단계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꿈꾸던 나날들을 지내다 왔기 때문이다. 그리즐리는 그 경험을 두고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기간”이라고 표현했다.

“원래 한 달 있으려고 했는데 너무 좋아서 몇 주 더 있었어요. 제주도에서 반신욕도 하고 영화랑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 그게 하루일과였어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좋아하거든요. 내가 하는 음악은 뭘까, 뭘 놓치고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했죠. 앨범 작업을 하러 간 것도 있는데 그렇게 쉬다보니까 오히려 작업이 더 잘 되더라고요. 앨범이나 곡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앨범에는 제주도에서 느꼈던 걸 담았어요”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리즐리의 순수한 현재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번 앨범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감정들로 채워졌다. 그리즐리의 그간 작업들이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며 그리워하고 아파하기도 하고 웃음 지으며 이뤄졌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아일랜드’는 현재 지향적이에요. 트랙마다 모두 내가 지금 느끼는 것들이거든요. 제주도에서의 모든 것을 다 담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자연적인 것들까지도요. 물론 지금도 지나가면 과거가 되니 나중엔 또 과거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제는 현재에 충실하고 지금 내 기분에 맞춰 살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앨범 커버를 보고 하나하나 트랙을 곱씹어보니 저절로 동화 같은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제주도’를 떠올렸을 때 고요함, 푸릇푸릇함, 단순함 등 여러 이미지들이 떠오르지 않나. 그리즐리의 제주도는 그 중에서도 ‘순수함’을 닮아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하자 그리즐리는 바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억지로 꾸미거나 만들어낸 게 아니라 현재의 내 모습을 담은 거니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제주도에 있을 때 가족들이 찾아온 적이 있거든요. 장르나 색깔 등 음악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해줬어요. 특히 형이 ‘너는 인디도 알앤비도 아니고 명확한 장르가 없어서 애매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리즐리는 그리즐리고, 무엇이든 내 머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나의 것이다’라고 답했어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다. 그리즐리는 이번 EP앨범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이미 순수함 그 자체를 원동력 삼아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이번 앨범 준비를 하면서 어려운 게 있었다면 타이틀곡 선정이었어요. 회사는 대중적인 곡을 원하니까요. ‘다 좋은데 이건 타이틀감으로 좀 약하다, 덜 대중적이지 않냐’고 해요. 각자 입장이 있는 거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많이 담은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타이틀곡은 제가 꼽은 ‘섬’이에요. (웃음)”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자연친화적인 노래가 만들어진 과정

사실 타이틀곡 ‘섬’은 가장 마지막에 쓰인 곡이다. 서울 올라가기 일주일 전에 완성됐다. 제주도에 찾아왔던 형이 해준 조언을 듣고 대화를 하다 보니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잘 써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미니멀한 곡도 많고, 믹싱할 때 목소리에도 기계음을 많이 쓰지 말자고 했어요. 나를 더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다른 요소들은 드라이하게 잡았죠. 또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떠나자’고 느꼈으면 좋겠다 싶어서 바다소리 등도 담았어요. 자연친화적이죠. 하하”

그리즐리는 제주도의 소리에 귀담았다. 차 소리도 안 나고 사람도 없는 고요함을 즐겼다. 밤바다에서 일정치 않은 파도 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불꽃놀이를 하는 커플을 보고 ‘불꽃놀이’를 떠올렸고, 장난스럽고 술 취한 느낌이 나는 ‘해적’도 만들었다.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다.

독특한 점은 이례적으로 ‘현재의 나’를 담은 앨범인데 피처링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summersoul은 ‘글라이더’에, 크루셜스타는 ‘레인보우’에, 스텔라장은 ‘불꽃놀이’에 참여했다. 본인의 것으로만 채울 법도 한데 그리즐리는 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렸을까?

“1절 만들고 나면 항상 2절 만들기가 귀찮거든요. (일제히 웃음) 나에 대한 이야기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음악적으로 필요하겠다 싶어서요. ‘레인보우’도 만들다가 랩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크루셜스타에게 부탁했는데 하루 만에 가사를 주더라고요. summersoul은 SNS로만 아는 사이었는데 같이 작업하면서 아예 믹스까지 맡겼어요. 스텔라장은 첫 소절 내뱉는데 깜짝 놀랐어요. 30분 만에 녹음을 끝냈어요. 심지어 내가 ‘본인이 직접 디렉을 봐라. 수정할 게 없다’고 말했어요. 스텔라장은 ‘왜 자꾸 나한테 맡기냐. 수정할 거 해달라’고 말했지만 말이에요. (웃음)”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 앞으로도 반짝거릴 섬

그렇다면 현재가 모여 만들어낼 그리즐리의 미래는 어떨까? 스스로와 대화를 나눌 줄 알고 본인의 것을 찾아갈 수 있는 그이기에 감히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리즐리는 최근 영국 런던에서 공연을 펼치며 이례적인 행보를 걸었다. 이에 “잘 나간다”고 부추겼더니 무던(?)한 성격의 그리즐리는 뭐가 잘 나가냐며 손사래를 쳤다.

“런던 공연은 좋은 경험이었어요. 언제 다시 하게 될 줄 모르잖아요. 여러 인종의 관객을 한 곳에서 만나니 색다르더라고요. 눈빛이 좀 달라요. 다들 눈 감고 노래를 감상하거나, 춤을 추고 맥주를 마셔요. 내가 앉으면 관객들도 뭘 깔지도 않고 그냥 바닥에 앉아요. 공연 시작 전에도 밋앤그릿을 했는데, 질문들도 신선했어요. 처음부터 좋아하는 색깔이나 음식 등을 묻는데 그런 대화들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런던으로 떠나기 전 별다른 실감을 하지 못했던 그리즐리지만 막상 공연에 돌입하자 기존의 틀을 깨는 영감을 받고 왔다. 이번 경험으로 명확한 무언가가 떠올랐다기보다,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며 새로운 환기가 됐다는 쪽이 더 맞다.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리즐리(사진=EGO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람은 역시 멀리 나가야하는구나 느꼈어요. 스태프 분들한테도 ‘행복은 가까이에 있는 게 아니라 멀리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웃음) 멀리 간만큼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와 다른 건축물, 오래된 것들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걸 쌓는 모습 등을 보며 멋있다고 느꼈어요. 한 브랜드 매장에 갔는데 일하는 직원들이 행복해하는 것도 봤어요. 안에 DJ도 있고 음악도 나오는데, 직원들이 물건을 가져올 때도 서로 춤추고 대화하면서 다니더라니까요!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는 게 멋있었어요”

그러면서 그리즐리는 이날 입고 온 의상도 모두 런던에서 사온 거라며 웃었다. 기분 좋은 출발을 알린 그리즐리는 오는 14, 15일 해브어나이스데이 무대에 오른다. 데뷔 후 처음으로 서는 페스티벌이다. 

공연장 수도관도 터지고, 런던 공연도 1회가 취소가 되는 등 일을 겪은 그리즐리는 스스로를 공연에 있어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도 “재밌을 것 같다. 지난해 한강을 건너면서 ‘나도 여기에서 하는 행사에 나가겠다’고 말했는데 우리게 돼서 좋다”고 흐뭇해했다. 

그리즐리의 꿈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 이런 것들이 또 다른 현재의 그리즐리가 그릴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산책하면서 나무 사이사이 맑은 기운들을 느꼈다. 초록색의 숲을 나의 섬에 들이고 싶다”고 했다. 바다 그리고 나무, 그리즐리의 섬에 순수한 그 어떤 것들이 쌓여갈 때마다 그곳의 공기는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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