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영화 역사는 한국영화의 칸 도전기와 함께 한다. 대구 출신의 봉 감독은 2000년 영화 ‘플란다스의 개’로 감독 데뷔했다. 한국영화가 칸 경쟁 부문에 첫 진출한 것은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다 봉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누적관객수는 447명뿐이었다. 그러나 3년 뒤인 2003년 송강호와 손잡은 ‘살인의 추억’이 500만 관객을 모으며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흥행도 이뤄냈다.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온 봉 감독은 이후 2006년 ‘괴물’로 1000만 영화를 만들었고, ‘마더’ ‘설국열차’ ‘옥자’ 등을 대중에게 선보였고, 칸 영화제에서도 ‘괴물’(2006년 감독 주간), ‘도쿄!’(2008년 주목할 만한 시선), ‘마더’(2009년 주목할 만한 시선), ‘옥자’(2017년 경쟁 부문), ‘기생충’까지 본인의 연출작으로만 5번째 칸에 초청되며 국제적인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국제 무대의 중심에 우뚝 선 셈이다. 한국영화의 19년 칸 도전도 화려했지만 험난했다.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이 2002년 제5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올드보이’(박찬욱 감독)가 2004년 제57회 심사위원대상을, ‘밀양’(이창동 감독)의 전도연이 2007년 제60회 여우주연상을, ‘박쥐’(박찬욱 감독)가 2009년 제62회 심사위원상을, ‘시’의 이창동 감독이 2010년 제63회 각본상을 각각 받았다. 그러나 황금종려상을 한국으로 가져오지는 못했다. 봉 감독의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료상 수상은 본인의 영화 인생 19년, 한국영화 칸 도전 19년, 한국영화 100년사를 한꺼번에 빛낸 셈이다.

[스크린 초점] 한국영화史100년·칸 도전史 19년…정점은 ‘봉준호’ 였다

유명준 기자 승인 2019.05.26 07:32 | 최종 수정 2138.10.18 00:00 의견 0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영화 역사는 한국영화의 칸 도전기와 함께 한다.

대구 출신의 봉 감독은 2000년 영화 ‘플란다스의 개’로 감독 데뷔했다. 한국영화가 칸 경쟁 부문에 첫 진출한 것은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다

봉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누적관객수는 447명뿐이었다. 그러나 3년 뒤인 2003년 송강호와 손잡은 ‘살인의 추억’이 500만 관객을 모으며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흥행도 이뤄냈다.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온 봉 감독은 이후 2006년 ‘괴물’로 1000만 영화를 만들었고, ‘마더’ ‘설국열차’ ‘옥자’ 등을 대중에게 선보였고, 칸 영화제에서도 ‘괴물’(2006년 감독 주간), ‘도쿄!’(2008년 주목할 만한 시선), ‘마더’(2009년 주목할 만한 시선), ‘옥자’(2017년 경쟁 부문), ‘기생충’까지 본인의 연출작으로만 5번째 칸에 초청되며 국제적인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국제 무대의 중심에 우뚝 선 셈이다.

한국영화의 19년 칸 도전도 화려했지만 험난했다.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이 2002년 제5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올드보이’(박찬욱 감독)가 2004년 제57회 심사위원대상을, ‘밀양’(이창동 감독)의 전도연이 2007년 제60회 여우주연상을, ‘박쥐’(박찬욱 감독)가 2009년 제62회 심사위원상을, ‘시’의 이창동 감독이 2010년 제63회 각본상을 각각 받았다. 그러나 황금종려상을 한국으로 가져오지는 못했다.

봉 감독의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료상 수상은 본인의 영화 인생 19년, 한국영화 칸 도전 19년, 한국영화 100년사를 한꺼번에 빛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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