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60여 년 동안 영화계를 지켜 온 정일성 촬영감독이 그동안의 활동과 지난 영화계를 되돌아봤다. 모든 과정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던 정 감독이지만, 한국 영화만이 가진 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최근 영화계에 대한 아쉬움을 가감 없이 털어놓은 정 감독은 한국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4일 오전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인 정일성 촬영감독의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정 감독은 1957년 영화 ‘지상의 비극’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바보들의 행진’ ‘만다라’ ‘만추’ ‘서편제’ ‘춘향뎐’ ‘취화선’ 등 걸출한 작품들을 촬영하며 미학적 촬영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정 감독은 회고전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해 “영화를 시작하고 10년쯤 됐을 때 존 포워드 회고전을 외신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젊은 나이에 ‘어쩜 저렇게 평생을 영화할 수 있을까. 나도 그 나이가 될 때까지 할 수 있을까. 부럽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언 영화를 한 지 60년이 넘었다”고 감회를 표하며 “일본의 평론가가 회고전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일본에서는 촬영감독 회고전이 열린 적이 없다더라. 축하한다고 말해줬는데, 내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앞으로 좋은 촬영감독들이 보다 많은 회고전을 열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밝혔다. 60여 년 동안의 영화 인생을 돌아보며 “그동안 격변이 많았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이 됐고, 이후 무정부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불행한 근대사를 겪으며 고통과 기쁨, 슬픔을 우리 세대가 함께 나눴다. 긴장 속에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살면서 영화를 통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지 생각하며 정신 무장이 된 것 같다. 영화를 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특히 5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지만, 독재정권 아래에서는 질 낮은 영화들이 만들어지며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TV의 등장으로 영화가 위축될 때도 있었다. 정 감독은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6.25 이후 지금까지 엄청난 영화적 진화가 진행됐다. 무성에서 유성으로 접어들고, 흑백에서 컬러 영화로 전환이 되기도 했다. 소형 영화에서 대형 영화로의 변화도 있다. TV로 인해 한국 영화가 몰락하기도 했다. 그때는 포르노, 중국 아류 영화들로 맥을 유지한 적도 있다. 경제적 열악 속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들만으로 영화계가 유지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38편의 영화를 찍은 정 감독에게도 아쉬운 작품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영화 중 4~50편은 부끄러운 영화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영화들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 그는 “어떤 사람들은 대표작이 뭔지 묻는데, 젊었을 때는 흥행작이나 수상작을 대표작으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철딱서니 없는 말인 것 같다.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4,50편의 영화가 교과서처럼 나를 지배하고 있다. 열심히 찍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영화보다 실패한 영화가 내게 좋은 교과서라는 생각을 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연합뉴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현재 한국 영화계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정 감독은 “지금의 영화인들은 행복한 시대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좋은 기회 속에서 영화를 하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영화적 질이 나아져야 한다. 그런 영화들도 물론 있지만 더 발전하고 더 좋은 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슬픈 역사를 겪은 우리 세대로서는 무리한 요구를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일례로 필름을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세대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했다. 그는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 촬영감독이다. 하지만 지금은 필름이라고는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디지털을 통해 촬영을 하고 있다. 영화 학도들도 필름 과정을 공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필름 세대는 골동품 취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털을 하더라도, 아날로그 과정의 기술적인 과정을 완벽하게 이수를 하지 않으면 좋은 디지털을 촬영할 수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필름을 건너뛰고 디지털에 바로 진입한 이들의 작품을 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필름을 한 사람은 화학적인 과정을 거쳐 감독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과학적인 결과를 또는 이론을 감독에게 설명하는 능력이 있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 독창성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정 감독은 “내가 그동안 형식보다 더 우위에 놓은 건 격조였다. 리얼리즘이라고 하면 있는 그대로를 찍는 거라고 알고 있는 영화 학도들이 많다. 하지만 리얼리즘에도 꿈이 없으면 기록으로만 남고 만다. 내 나름대로 정한 원칙은 한 번도 져버린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촬영감독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영화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설명했다. “사람이 죽을 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앞으로 더 하고 싶다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정 감독은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있다고 했다. 그는 “나를 모르는 젊은 감독이 느닷없이 어느 날 같이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준다면, 길이 없는 들판에서 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라고 했다.

[24th BIFF] 정일성 촬영감독, 허심탄회하게 돌아본 60년 영화 인생

부산=장수정 기자 승인 2019.10.04 10:56 | 최종 수정 2139.07.07 00:00 의견 0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60여 년 동안 영화계를 지켜 온 정일성 촬영감독이 그동안의 활동과 지난 영화계를 되돌아봤다. 모든 과정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던 정 감독이지만, 한국 영화만이 가진 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최근 영화계에 대한 아쉬움을 가감 없이 털어놓은 정 감독은 한국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4일 오전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인 정일성 촬영감독의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정 감독은 1957년 영화 ‘지상의 비극’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바보들의 행진’ ‘만다라’ ‘만추’ ‘서편제’ ‘춘향뎐’ ‘취화선’ 등 걸출한 작품들을 촬영하며 미학적 촬영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정 감독은 회고전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해 “영화를 시작하고 10년쯤 됐을 때 존 포워드 회고전을 외신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젊은 나이에 ‘어쩜 저렇게 평생을 영화할 수 있을까. 나도 그 나이가 될 때까지 할 수 있을까. 부럽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언 영화를 한 지 60년이 넘었다”고 감회를 표하며 “일본의 평론가가 회고전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일본에서는 촬영감독 회고전이 열린 적이 없다더라. 축하한다고 말해줬는데, 내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앞으로 좋은 촬영감독들이 보다 많은 회고전을 열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밝혔다.

60여 년 동안의 영화 인생을 돌아보며 “그동안 격변이 많았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이 됐고, 이후 무정부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불행한 근대사를 겪으며 고통과 기쁨, 슬픔을 우리 세대가 함께 나눴다. 긴장 속에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살면서 영화를 통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지 생각하며 정신 무장이 된 것 같다. 영화를 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특히 5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지만, 독재정권 아래에서는 질 낮은 영화들이 만들어지며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TV의 등장으로 영화가 위축될 때도 있었다. 정 감독은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6.25 이후 지금까지 엄청난 영화적 진화가 진행됐다. 무성에서 유성으로 접어들고, 흑백에서 컬러 영화로 전환이 되기도 했다. 소형 영화에서 대형 영화로의 변화도 있다. TV로 인해 한국 영화가 몰락하기도 했다. 그때는 포르노, 중국 아류 영화들로 맥을 유지한 적도 있다. 경제적 열악 속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들만으로 영화계가 유지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38편의 영화를 찍은 정 감독에게도 아쉬운 작품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영화 중 4~50편은 부끄러운 영화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영화들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 그는 “어떤 사람들은 대표작이 뭔지 묻는데, 젊었을 때는 흥행작이나 수상작을 대표작으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철딱서니 없는 말인 것 같다. 내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4,50편의 영화가 교과서처럼 나를 지배하고 있다. 열심히 찍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영화보다 실패한 영화가 내게 좋은 교과서라는 생각을 한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현재 한국 영화계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정 감독은 “지금의 영화인들은 행복한 시대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좋은 기회 속에서 영화를 하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영화적 질이 나아져야 한다. 그런 영화들도 물론 있지만 더 발전하고 더 좋은 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슬픈 역사를 겪은 우리 세대로서는 무리한 요구를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일례로 필름을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세대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했다. 그는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 촬영감독이다. 하지만 지금은 필름이라고는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디지털을 통해 촬영을 하고 있다. 영화 학도들도 필름 과정을 공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필름 세대는 골동품 취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털을 하더라도, 아날로그 과정의 기술적인 과정을 완벽하게 이수를 하지 않으면 좋은 디지털을 촬영할 수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필름을 건너뛰고 디지털에 바로 진입한 이들의 작품을 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필름을 한 사람은 화학적인 과정을 거쳐 감독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과학적인 결과를 또는 이론을 감독에게 설명하는 능력이 있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 독창성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정 감독은 “내가 그동안 형식보다 더 우위에 놓은 건 격조였다. 리얼리즘이라고 하면 있는 그대로를 찍는 거라고 알고 있는 영화 학도들이 많다. 하지만 리얼리즘에도 꿈이 없으면 기록으로만 남고 만다. 내 나름대로 정한 원칙은 한 번도 져버린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촬영감독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영화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설명했다.

“사람이 죽을 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앞으로 더 하고 싶다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정 감독은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있다고 했다. 그는 “나를 모르는 젊은 감독이 느닷없이 어느 날 같이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준다면, 길이 없는 들판에서 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라고 했다.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