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집값과 전세의 월세화 흐름 속에 무주택자의 주거비 부담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공공주도 공급 확대를 통해 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사업자 참여가 줄고 일반분양으로의 전환 논의가 나오는 등 사업이 좌초하고 있다. 정책 의지와 시장 현실 간의 괴리가 공급 지연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
■ 갈 곳 없는 무주택자…높아지는 주거비 부담
가파른 집값 상승세가 무주택 가구를 늘리는 동시에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도 가중하고 있다. 서울에서 내 집 없이 전·월세살이 중인 무주택 가구가 절반 이상으로 드러났다.
18일 통계청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서울의 무주택 가구는 214만3249가구로 서울 전체(414만1659가구)의 51.7%에 달했다. 이는 전국에서 제일 높은 수치로 평균(43.6%)보다 8.1%포인트 높다.
서울의 무주택 가구 비율이 제일 높은 이유는 지방과 집값 차이가 벌어져 자가 구매 자금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최근 주택시장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월 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의 주택매매가는 16.1% 상승했다. 같은 기간 비수도권 주택매매가는 1.7% 하락했다.
무주택 가구 중 월세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2019년 40.7%였던 월세 비중은 올해 61.9%로 5년 사이 21.2%p 상승했다. 지난 7월 전국 월세 거래는 105만6000여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20만건 이상 늘었다. 이는 전세 대출 한도 제한 등 6·27 대책의 영향이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한 것으로 보인다.
월세화가 진행되며 늘어난 주거비 부담은 임대소득의 증가로 드러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서울 임대업자 1인당 평균 임대소득은 2456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전년 대비 2.0%(48만원) 상승했으며 전국 평균(1774만원)보다 682만원 높았다.
400호 규모 청년주택 후보지로 발표된 서울경찰기마대 부지. (사진=연합)
■공공주택 공급 난항…수익성 한계 지적
정부는 부족한 주택공급이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주거 안정을 위한 대규모 공급계획을 밝혔다. 계획의 주요 내용은 ▲3기 신도시 공급 가속 ▲도심 유휴부지·노후 공공시설 활용 공급 ▲공공주택 확대 ▲신규택지 개발 확대 등이다.
이전 정부들부터 추진되던 3기 신도시를 제외하면 공공 중심의 공급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민간 주택에 비해 저렴한 공공주택 규모를 늘려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7일 올해 하반기 공사·용역 발주액 11조4000억원 중 약 70%인 8조원가량을 공공주택 건설공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공주도 공급은 공공주택 사업의 수익성 문제, LH 자체 역량의 한계, 시장이 요구하는 품질과 공공주택 품질의 수준 차이 등으로 인해 대규모 공급이 어렵다. 이는 기존에 추진되던 공공임대 사업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한계는 서울시의 공공지원 민간임대 사업인 '청년안심주택'에서도 드러난다. 해당 사업은 서울시가 청년층을 대상으로 역세권 주변에 장기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지만 올해 1월부터 7월 말까지 신규 인허가 건수가 전무했다. 2021년 45건이던 연간 인허가 건수는 2022년 22건, 2023년 10건, 지난해 4건으로 매년 감소했으며 올해는 아예 멈췄다. 높은 공사비와 낮은 임대료, 장기 임대 조건이 맞물리며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에 민간 사업자들이 연이어 발을 빼고 있다.
이러한 기류는 인천 도화동 재개발 사업에서도 확인된다. 해당 단지는 2014년부터 공공지원 민간임대 방식으로 추진됐으나 최근 조합과 사업시공사가 일반분양 전환을 적극 검토하고 나섰다. 공사비 상승과 분양가 제한, 임대 운영에 따른 수익성 저하를 감안할 경우 공공임대 방식으로는 사업성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리츠에 저가로 매각하면 일반분양 대비 조합이 확보 가능한 수익이 낮아지기에 조합원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이로 인한 사업 차질 우려도 제기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공공지원 임대에서 일반분양으로 방식을 전환한다면 그간 부여받았던 혜택을 전면 반환하라는 입장이다. HUG는 해당 정비사업장에 보낸 공문을 통해 일반분양 전환 시 용적률 혜택, 금융 보증 등 모든 지원을 회수하고 대출 보증 중단, 사전구상권 청구, 손해배상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공공주도 공급의 수익성 한계가 명확하기에 이러한 전환 시도는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 부평구 청천2구역 공동주택 개발 사업이 일반재개발로 전환하는 등 이미 성공한 사례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결국 공공주도 공급이 가진 수익성 한계라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며 주택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이는 대규모 공급계획을 세우더라도 공공 중심으로 추진한다면 공급 속도가 늦어지거나 사업이 좌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 "공공 만능주의로는 시장 요구 충족 못해"
전문가들은 공공 위주의 공급 정책만으로는 공급 물량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결국 민간이 자발적으로 공급에 나설 수 있도록 정비사업 규제 완화 등 현실적 유인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공공주도의 주택 공급은 LH의 자체 역량 부족, 사업 수익성 한계 등 공급이 지연될 요인이 많고 주택품질도 시장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며 "결국 공급 속도가 늦어지거나 실수요자 눈높이에 맞는 공급이 어려워져 공급 물량이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민간을 배제하고 공공만 나서서는 공급 규모를 확대할 수 없다"며 "재초환 등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해 사업 수익성을 개선하고 민간 공급 확대를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