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좌측부터 김용범 메리츠화재 및 메리츠금융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최희문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사진=메리츠금융그룹) #. 재벌 오너의 이익을 위한 쪼개기 상장이 잇따르면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커지던 요즘, 해마다 반복되는 소위 로얄 패밀리들의 임원 승진인사가 판을 치는 인사철이 임박한 지금, 어떻게든 세금 덜 내고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묘안은 없나 고민하는 오너들이 득세한 시대. 유쾌한 소식 하나가 들려와 반갑습니다. 엊그제 메리츠금융지주가 상장사 3개를 1개로 합치는 포괄적 주식스왑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80%에 달하는 대주주 지분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합니다. "내 지분이 내려가도 괜찮아요. 기업을 승계할 생각이 없으니 경영 효율을 높이고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 봅시다." 메리츠금융그룹 관계자는 "조정호 회장이 족쇄를 풀어헤치니 두 참모(김용범, 최희문 부회장)가 머리를 맞대 액션플랜을 만들어냈다"며 "시장경제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라고 귀띔합니다. 메리츠의 이번 파격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포괄적 주식교환이라는 플랜을 구체화한 김용범 부회장은 지난 21일 컨퍼런스콜을 통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과거에도 조정호 회장은 기업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번 주식교환은 대주주 지분승계와 전혀 상관 없습니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되고 미래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사업 환경 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결정입니다." 사실 자본 재분배 차원에서도 화재와 증권의 편입이 필요했던 게 사실입니다. 예컨대 화재의 이익으로 증권에 투자 기회를 노리고자 할 때 지금은 각각 다른 회사다보니 주총까지 기다려 배당을 받고 이를 증자하는데만도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이번 합병으로 이런 비효율성이 사라질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 창업자, 혹은 오너 2,3세 중 경영 승계를 고민하지 않는 이는 아마 없을 겁니다. 김용범 부회장의 컨콜 언급을 차치하더라도 조 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의사가 없다는 얘기는 본인과 주변 지인들을 통해 공공연하게 전해져왔습니다. 물론 대부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설마설마했지요. 공들여 키워온 회사를 남에게 맡긴다는 것이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만큼은 비정상, 비현실로 여겨졌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선 기업 오너들조차 회사가 잘 될땐 경영진 성과를 최소화하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그들에게 책임을 지웠던 게 우리 기업문화 현실이었습니다. 조 회장은 이를 깼습니다. 지주와 보험은 김용범 부회장에, 증권은 최희문 부회장에 일임하고 빅딜 외에는 일일이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오너 기업 경영방식과는 다른 컬쳐를 유지해왔습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이 손해보험, 증권 등 각 업권에서 지속가능한 성장, 경기와 무관하게 우상향 실적을 꾸준히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컬쳐 영향이 컸습니다. 물론 남다른(?) 경영방식으로 제도권 안팎에서 메리츠에 대한 경계감과 소외도 적지 않았는데요. 소위 증권사 애널리스트사이에서 블랙리스트로 가장 먼저 꼽히는 곳이 메리츠금융입니다. 이익측면에서 2~3위를 오르내리는 메리츠화재는 항상 손보 3사 비교 분석에선 빠지곤 했습니다. 올해 실적 반토막에 시달리는 증권가에서 업계 톱 수준의 이익을 시현 중인 메리츠증권 역시 애널리스트 사이에선 항상 리스크가 잠재된 곳으로 꼽혀 왔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그런 꼼수가 없습니다. 관련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자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3사는 일제히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며 시장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묻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애널리스트들 역시 대부분 긍정적 보고서를 쏟아냅니다. #. 일각에선 메리츠 구조개편 후 '실리'는 조정호 회장이 챙길 것이란 분석도 슬금슬금 나옵니다. 당장 지배력은 낮아지나 경영권을 위협받는 수준은 아니고, 전반적인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실리는 소액주주에 비해 조 회장이 더 크게 취할 것이란 주장입니다. 지난해 갑작스럽게 나온 메리츠금융그룹의 배당축소 방침 역시 이 같은 구조개편의 사전포석으로 조 회장에 실리를 더해줬다는 날 선 비판도 흘러나옵니다. 이익의 50%를 주주환원하겠다는 것 역시 향후 배당과 자사주매입/소각간 실리와 효율성을 이유로 메리츠 구조개편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물론 있습니다. 다만 이 시점에 잊지말아야 할 건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시대, 시장경제 체제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대주주가, 어느 기업오너가 선의로만 기업을 경영할 수 있을까요. 자기 이익을 위한 결정이 대주주와 소액주주 모두에 이득이 되는 결정이라면 충분한 것 아닐까. 현 시점에서 중요한 건 대주주 이익과 소액주주의 이익이 일치되는, 이것이 어긋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간 재벌들의 사익추구 행태로 인해 우리나라에선 대주주의 이익은 곧 소액주주의 손실이라는 논리, 반대로 소액주주의 이익은 곧 대주주의 손실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지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재벌은 몰라도 조 회장의 메리츠에는 다소 맞지 않은 말인 것 같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요. 대주주와 소액주주 모두 이익을 내는 길, 그것이 바로 우리 기업과 주식시장이 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고, 이를 실현하고자 했던 게 조정호의 메리츠가 택한 통 큰 결단의 진심이 아닐까요.

[홍승훈의 Y] 메리츠의 조정호, 이런 오너가 또 있을까

홍승훈 기자 승인 2022.11.23 16:19 | 최종 수정 2022.11.23 16:27 의견 0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좌측부터 김용범 메리츠화재 및 메리츠금융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최희문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사진=메리츠금융그룹)


#. 재벌 오너의 이익을 위한 쪼개기 상장이 잇따르면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커지던 요즘, 해마다 반복되는 소위 로얄 패밀리들의 임원 승진인사가 판을 치는 인사철이 임박한 지금, 어떻게든 세금 덜 내고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묘안은 없나 고민하는 오너들이 득세한 시대. 유쾌한 소식 하나가 들려와 반갑습니다.

엊그제 메리츠금융지주가 상장사 3개를 1개로 합치는 포괄적 주식스왑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80%에 달하는 대주주 지분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합니다.

"내 지분이 내려가도 괜찮아요. 기업을 승계할 생각이 없으니 경영 효율을 높이고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 봅시다."

메리츠금융그룹 관계자는 "조정호 회장이 족쇄를 풀어헤치니 두 참모(김용범, 최희문 부회장)가 머리를 맞대 액션플랜을 만들어냈다"며 "시장경제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라고 귀띔합니다.

메리츠의 이번 파격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포괄적 주식교환이라는 플랜을 구체화한 김용범 부회장은 지난 21일 컨퍼런스콜을 통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과거에도 조정호 회장은 기업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번 주식교환은 대주주 지분승계와 전혀 상관 없습니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되고 미래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사업 환경 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결정입니다."

사실 자본 재분배 차원에서도 화재와 증권의 편입이 필요했던 게 사실입니다. 예컨대 화재의 이익으로 증권에 투자 기회를 노리고자 할 때 지금은 각각 다른 회사다보니 주총까지 기다려 배당을 받고 이를 증자하는데만도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이번 합병으로 이런 비효율성이 사라질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 창업자, 혹은 오너 2,3세 중 경영 승계를 고민하지 않는 이는 아마 없을 겁니다. 김용범 부회장의 컨콜 언급을 차치하더라도 조 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의사가 없다는 얘기는 본인과 주변 지인들을 통해 공공연하게 전해져왔습니다. 물론 대부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설마설마했지요. 공들여 키워온 회사를 남에게 맡긴다는 것이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만큼은 비정상, 비현실로 여겨졌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선 기업 오너들조차 회사가 잘 될땐 경영진 성과를 최소화하고 기업이 어려워지면 그들에게 책임을 지웠던 게 우리 기업문화 현실이었습니다.

조 회장은 이를 깼습니다. 지주와 보험은 김용범 부회장에, 증권은 최희문 부회장에 일임하고 빅딜 외에는 일일이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오너 기업 경영방식과는 다른 컬쳐를 유지해왔습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이 손해보험, 증권 등 각 업권에서 지속가능한 성장, 경기와 무관하게 우상향 실적을 꾸준히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컬쳐 영향이 컸습니다.

물론 남다른(?) 경영방식으로 제도권 안팎에서 메리츠에 대한 경계감과 소외도 적지 않았는데요. 소위 증권사 애널리스트사이에서 블랙리스트로 가장 먼저 꼽히는 곳이 메리츠금융입니다. 이익측면에서 2~3위를 오르내리는 메리츠화재는 항상 손보 3사 비교 분석에선 빠지곤 했습니다. 올해 실적 반토막에 시달리는 증권가에서 업계 톱 수준의 이익을 시현 중인 메리츠증권 역시 애널리스트 사이에선 항상 리스크가 잠재된 곳으로 꼽혀 왔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그런 꼼수가 없습니다. 관련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자 메리츠금융지주,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3사는 일제히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며 시장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묻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애널리스트들 역시 대부분 긍정적 보고서를 쏟아냅니다.

#. 일각에선 메리츠 구조개편 후 '실리'는 조정호 회장이 챙길 것이란 분석도 슬금슬금 나옵니다. 당장 지배력은 낮아지나 경영권을 위협받는 수준은 아니고, 전반적인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실리는 소액주주에 비해 조 회장이 더 크게 취할 것이란 주장입니다. 지난해 갑작스럽게 나온 메리츠금융그룹의 배당축소 방침 역시 이 같은 구조개편의 사전포석으로 조 회장에 실리를 더해줬다는 날 선 비판도 흘러나옵니다. 이익의 50%를 주주환원하겠다는 것 역시 향후 배당과 자사주매입/소각간 실리와 효율성을 이유로 메리츠 구조개편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물론 있습니다.

다만 이 시점에 잊지말아야 할 건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시대, 시장경제 체제에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대주주가, 어느 기업오너가 선의로만 기업을 경영할 수 있을까요. 자기 이익을 위한 결정이 대주주와 소액주주 모두에 이득이 되는 결정이라면 충분한 것 아닐까. 현 시점에서 중요한 건 대주주 이익과 소액주주의 이익이 일치되는, 이것이 어긋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간 재벌들의 사익추구 행태로 인해 우리나라에선 대주주의 이익은 곧 소액주주의 손실이라는 논리, 반대로 소액주주의 이익은 곧 대주주의 손실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지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재벌은 몰라도 조 회장의 메리츠에는 다소 맞지 않은 말인 것 같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요. 대주주와 소액주주 모두 이익을 내는 길, 그것이 바로 우리 기업과 주식시장이 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고, 이를 실현하고자 했던 게 조정호의 메리츠가 택한 통 큰 결단의 진심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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