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은행에게는 정책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은행의 주주환원 제고 의지와 능력을 억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자사주 정책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만 있어도 리레이팅(re-rating)이 가능합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정한 자본시장’ 정책에 대해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의 코멘트다. 한 마디로 ‘정부가 간섭만 덜해도 은행 주가는 더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많은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금융지주 주가가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는커녕 0.5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유를 정부의 과도한 개입에서 찾고 있다. 정부 간섭 때문에 주가가 억눌려 있었다면 정부 간섭을 줄이는 게 해법이다. 하지만 최근 일이 돌아가는 모양새는 요상하다. 주가가 저평가된 것까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겠다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이가 문제 해결을 자처하고 나섰다. 뭔가 이상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긍정’ 일변도다. 5만원선에서 움직이던 KB금융 주가가 7만원에 다가섰다. 불과 2주만에 30% 넘게 올랐다. 하나금융과 신한지주의 주가 흐름도 다르지 않다. 금융주를 넘어 저(低) PBR에 해당하는 많은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세를 연출 중이다. 애널리스트 말마따나 시그널이 중요하지 정책 내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그런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따져볼 게 있다. 금융위원회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등장시킨 배경이다. 주지하다시피 새해 들어 각 정부 부처가 충성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신년 업무보고를 기회 삼아 부처마다 총선용 ‘선물’을 준비해 대통령에 상납하는 식이다. 대통령실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로 포장한다. 1월 4일 1차 토론회를 시작으로 한 달 간 십여 차례나 개최했다. 오래 전부터 사전 기획을 하지 않고서는 성사되기 어려운 이벤트다. 각 분야별 토론회 때마다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발표됐는데 대표적으로 재건축 규제완화가 있다. 안전진단 없이 지은 지 30년만 지나면 모두 재건축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밖에도 단말기유통법 폐지, 대형마트 영업규제 개선, 광역철도 확대, 실손보험 정비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국민들이 듣기에 흡족한 뉴스들이 나왔다. 하지만 ‘하고 싶다’와 ‘할 수 있다’는 엄연히 다르다. 흡족 뉴스의 신호탄이던 재건축 규제완화만 해도 ‘안전진단 폐지’는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절차 개선 추진’이다. 기존에는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사업추진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안전진단과 사업추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팩트다. 이처럼 흡족 뉴스들의 상당수는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자, 그렇다면 금융위원회는 대통령과 국민들의 귀를 흡족하게 만들어 줄 선물로 무엇을 준비했을까. 1월 17일 발표된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면 ‘자본시장을 통한 국민 자산형성 지원’이다. 한 마디로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에는 증시 부양 내용이 없다. 자본시장과 관련해서는 ‘공정성 제고’가 핵심이다. 하지만 올해 갑자기 ‘국민 자산형성 지원’ 내용이 추가됐다. 4월 총선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표현이다. 정부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려면 국회의 협조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 법 개정 사항이 많아서다. 현재 국회는 여소야대다. 야당에 협조를 구해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 동안 야당을 대화 상대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의아해 한다. 윤석열 정부는 야당 협조 없이도 정책을 구현할 묘수라도 있는 것일까. 새해 들어서야 실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의지만 피력해도 우리 선한 국민들이 정부의 진정성을 믿고 표를 던져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국정에서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 다른 목소리까지 철저히 배제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정부의 이런 상황 인식은 좋게 표현하면 순진한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졸렬한 것일 수 있다. 야당을 설득하긴 쉽지 않고 원내 제1당은 되고 싶으니 나오는 행태들이 아닌가란 얘기들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이 자존심이 강해 야당에 머리 숙이기를 한사코 거부하면 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보게 된다.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의 오기와 자존심이다. 그 본질을 감춰보려 대통령실 참모들은 ‘민생토론회’를 열어 ‘서민 대통령’ 코스프레를 펼친다. 참모들이 안쓰럽고, 국민들은 답답하다. 금융 업종 주가 상승폭이 최근 꽤 컸다. 오직 하나, 아직 내용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덕분이다. 대통령과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개혁에 진심이라면 오른 주가는 유지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잔재주를 부린 것이라면 주가는 고꾸라지며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국정 난맥의 본질이 대통령의 자존심이라면 저(低) PBR의 본질은 정부 간섭이다. 정부는 지난 한 해 은행 경영에 어디까지 간섭할 수 있는지 ‘끝판왕’ 수준을 보여줬다. 그런 정부가 자본시장 디스카운트 해소를 외치고 있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포르코의 뷰] 저PBR주의 반란..."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해"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2.12 22:45 | 최종 수정 2024.02.13 07:18 의견 0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은행에게는 정책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은행의 주주환원 제고 의지와 능력을 억제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자사주 정책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만 있어도 리레이팅(re-rating)이 가능합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정한 자본시장’ 정책에 대해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의 코멘트다. 한 마디로 ‘정부가 간섭만 덜해도 은행 주가는 더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많은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금융지주 주가가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는커녕 0.5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유를 정부의 과도한 개입에서 찾고 있다.

정부 간섭 때문에 주가가 억눌려 있었다면 정부 간섭을 줄이는 게 해법이다. 하지만 최근 일이 돌아가는 모양새는 요상하다. 주가가 저평가된 것까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겠다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이가 문제 해결을 자처하고 나섰다. 뭔가 이상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긍정’ 일변도다.

5만원선에서 움직이던 KB금융 주가가 7만원에 다가섰다. 불과 2주만에 30% 넘게 올랐다. 하나금융과 신한지주의 주가 흐름도 다르지 않다. 금융주를 넘어 저(低) PBR에 해당하는 많은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세를 연출 중이다. 애널리스트 말마따나 시그널이 중요하지 정책 내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그런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따져볼 게 있다. 금융위원회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등장시킨 배경이다.

주지하다시피 새해 들어 각 정부 부처가 충성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신년 업무보고를 기회 삼아 부처마다 총선용 ‘선물’을 준비해 대통령에 상납하는 식이다. 대통령실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로 포장한다. 1월 4일 1차 토론회를 시작으로 한 달 간 십여 차례나 개최했다. 오래 전부터 사전 기획을 하지 않고서는 성사되기 어려운 이벤트다.

각 분야별 토론회 때마다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발표됐는데 대표적으로 재건축 규제완화가 있다. 안전진단 없이 지은 지 30년만 지나면 모두 재건축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밖에도 단말기유통법 폐지, 대형마트 영업규제 개선, 광역철도 확대, 실손보험 정비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국민들이 듣기에 흡족한 뉴스들이 나왔다.

하지만 ‘하고 싶다’와 ‘할 수 있다’는 엄연히 다르다. 흡족 뉴스의 신호탄이던 재건축 규제완화만 해도 ‘안전진단 폐지’는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절차 개선 추진’이다. 기존에는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사업추진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안전진단과 사업추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팩트다. 이처럼 흡족 뉴스들의 상당수는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자, 그렇다면 금융위원회는 대통령과 국민들의 귀를 흡족하게 만들어 줄 선물로 무엇을 준비했을까. 1월 17일 발표된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면 ‘자본시장을 통한 국민 자산형성 지원’이다. 한 마디로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에는 증시 부양 내용이 없다. 자본시장과 관련해서는 ‘공정성 제고’가 핵심이다. 하지만 올해 갑자기 ‘국민 자산형성 지원’ 내용이 추가됐다. 4월 총선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표현이다.

정부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려면 국회의 협조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 법 개정 사항이 많아서다. 현재 국회는 여소야대다. 야당에 협조를 구해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그 동안 야당을 대화 상대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의아해 한다. 윤석열 정부는 야당 협조 없이도 정책을 구현할 묘수라도 있는 것일까.

새해 들어서야 실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의지만 피력해도 우리 선한 국민들이 정부의 진정성을 믿고 표를 던져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국정에서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 다른 목소리까지 철저히 배제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정부의 이런 상황 인식은 좋게 표현하면 순진한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졸렬한 것일 수 있다. 야당을 설득하긴 쉽지 않고 원내 제1당은 되고 싶으니 나오는 행태들이 아닌가란 얘기들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이 자존심이 강해 야당에 머리 숙이기를 한사코 거부하면 그 피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보게 된다.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의 오기와 자존심이다. 그 본질을 감춰보려 대통령실 참모들은 ‘민생토론회’를 열어 ‘서민 대통령’ 코스프레를 펼친다. 참모들이 안쓰럽고, 국민들은 답답하다.

금융 업종 주가 상승폭이 최근 꽤 컸다. 오직 하나, 아직 내용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덕분이다. 대통령과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개혁에 진심이라면 오른 주가는 유지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잔재주를 부린 것이라면 주가는 고꾸라지며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국정 난맥의 본질이 대통령의 자존심이라면 저(低) PBR의 본질은 정부 간섭이다. 정부는 지난 한 해 은행 경영에 어디까지 간섭할 수 있는지 ‘끝판왕’ 수준을 보여줬다. 그런 정부가 자본시장 디스카운트 해소를 외치고 있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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