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한국은행 홈페이지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22년 3월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일로 가보자. 기호1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1614만7738표(47.83%), 기호2번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1639만4815표(48.56%)를 각각 득표했다. 유권자의 77%가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격차는 0.73%포인트(24만7077표)에 불과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확고한 지지층(집토끼)을 대략 30%와 20%로 본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른바 ‘86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되면서 두 진영의 집토끼 비율이 역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정당 색이 뚜렷하지 않은 ‘산토끼’를 더 많이 잡아 이재명 후보를 누를 수 있었다. 산토끼가 민주당에 등을 돌린 이유는 ‘부동산’이 핵심 원인으로 꼽혔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2배 넘게 올랐다. 내 집 마련이 가장 절실한 세대가 40대 전후다. 집을 못 산 사람은 폭등한 집값에, 집을 산 사람은 늘어난 부채(주담대)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토끼를 잡기는커녕 잡았던 집토끼마저 놓쳤던 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대선이었다. ■ 윤정부 출범후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인상 금리와 선거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대선 당시 기준금리는 1.25%. 엔데믹이 다가오면서 2021년 하반기부터 0.25%포인트씩 세 차례 금리가 오르긴 했지만 시장에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7회 연속 금리가 오르면서 3.50%로 껑충 뛰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빠른 인상 속도다. 물가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지만 10년 가까이 1% 안팎 저금리에 익숙해 있던 국민들 충격은 컸다. 금리상승의 충격은 누가 가장 많이 받았을까. 한국은행은 지난 2월 흥미로운 보고서를 하나 내놓았다. ‘가계별 금리익스포저를 감안한 금리상승의 소비 영향 점검’이란 보고서다. ‘금리익스포저’라는 지표로 가계 금리 노출도를 측정했는데 금리상승으로 이익을 보는 가계와 손해를 보는 가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가계를 ‘금리상승 손해층’, ‘취약층’, ‘금리상승 이득층’의 세 집단으로 분류했다. ‘금리상승 손해층’은 연령 면에서 30~40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소득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면서 소비를 많이 하는 집단이다. 반면, ‘금리상승 이득층’은 60대, 고소득 및 고자산층 비중이 높았다. ■ 국민의힘 산토끼는 왜 등을 돌렸나 선거는 집토끼 이탈을 막으면서 산토끼를 더 많이 잡아야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금리상승 이득층’은 집토끼, ‘금리상승 손해층’은 산토끼다. 소득이 높고 소비도 많이 하는 산토끼의 생활형편이 윤석열 정부 들어 급속히 악화됐다. 이자 갚느라 외식도, 여행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이를 “금리상승 손해층의 소비 부진이 금리상승 이득층의 소비 개선을 압도했다”고 표현했다. 살림살이가 현격히 팍팍해진 유권자가 집권당을 찍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금리를 올린 덕분에 치솟던 물가와 집값이 다소 안정되지 않았느냐고 하소연한다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치솟는 집값에 ‘영끌’ 추격 매수했는데 집값이 떨어졌다면? 떨어진 집값도 걱정인데 내야 하는 주담대 이자는 두 배 늘었다면?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못 가게 생겼는데 애들 학원비는 계속 오른다면? 집권당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 물가를 정부가 올린 것도 아니다. 금리 역시 정부가 올린 게 아니다. 한은 금통위의 금리 결정은 독립성이 보장돼 있다. 하지만 억울하기는 유권자도 마찬가진다. 윤석열 정부가 금리를 올린 것은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금리가 올랐다. 팍팍한 살림살이를 어떤 식으로든 호소해서 조금이라도 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국민들의 합리적인 선택지다. 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 업체 4곳이 지난 15~17일 전화면접 방식으로 전국지표조사(NBS)를 실시해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총선에서 투표를 할 때 가장 영향을 미친 요인 1순위로 '물가 등 민생현안(30%)'이 꼽혔다고 한다. '정부 여당 심판'은 20%로 2순위였고 '막말 등 후보자 논란'(11%), '야당 심판'(10%), '의대 정원 증원'(8%) 등이 뒤를 이었다. 유권자들이 먹고 사는 민생 문제에 가장 민감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총선이 끝나고 결과에 대해 저마다 분석이 한창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분석, 저런 분석 모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전인수식 여론호도형 분석도 내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는 능력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유권자의 지나친 욕심일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포르코의 뷰] 금리와 선거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4.19 10:03 의견 0
자료=한국은행 홈페이지


시계를 거꾸로 돌려 2022년 3월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일로 가보자. 기호1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1614만7738표(47.83%), 기호2번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1639만4815표(48.56%)를 각각 득표했다. 유권자의 77%가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격차는 0.73%포인트(24만7077표)에 불과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확고한 지지층(집토끼)을 대략 30%와 20%로 본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른바 ‘86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되면서 두 진영의 집토끼 비율이 역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정당 색이 뚜렷하지 않은 ‘산토끼’를 더 많이 잡아 이재명 후보를 누를 수 있었다.

산토끼가 민주당에 등을 돌린 이유는 ‘부동산’이 핵심 원인으로 꼽혔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2배 넘게 올랐다. 내 집 마련이 가장 절실한 세대가 40대 전후다. 집을 못 산 사람은 폭등한 집값에, 집을 산 사람은 늘어난 부채(주담대)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토끼를 잡기는커녕 잡았던 집토끼마저 놓쳤던 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대선이었다.

윤정부 출범후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인상

금리와 선거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대선 당시 기준금리는 1.25%. 엔데믹이 다가오면서 2021년 하반기부터 0.25%포인트씩 세 차례 금리가 오르긴 했지만 시장에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7회 연속 금리가 오르면서 3.50%로 껑충 뛰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빠른 인상 속도다. 물가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지만 10년 가까이 1% 안팎 저금리에 익숙해 있던 국민들 충격은 컸다.

금리상승의 충격은 누가 가장 많이 받았을까. 한국은행은 지난 2월 흥미로운 보고서를 하나 내놓았다. ‘가계별 금리익스포저를 감안한 금리상승의 소비 영향 점검’이란 보고서다. ‘금리익스포저’라는 지표로 가계 금리 노출도를 측정했는데 금리상승으로 이익을 보는 가계와 손해를 보는 가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가계를 ‘금리상승 손해층’, ‘취약층’, ‘금리상승 이득층’의 세 집단으로 분류했다. ‘금리상승 손해층’은 연령 면에서 30~40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소득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면서 소비를 많이 하는 집단이다. 반면, ‘금리상승 이득층’은 60대, 고소득 및 고자산층 비중이 높았다.

■ 국민의힘 산토끼는 왜 등을 돌렸나

선거는 집토끼 이탈을 막으면서 산토끼를 더 많이 잡아야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금리상승 이득층’은 집토끼, ‘금리상승 손해층’은 산토끼다. 소득이 높고 소비도 많이 하는 산토끼의 생활형편이 윤석열 정부 들어 급속히 악화됐다. 이자 갚느라 외식도, 여행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이를 “금리상승 손해층의 소비 부진이 금리상승 이득층의 소비 개선을 압도했다”고 표현했다.

살림살이가 현격히 팍팍해진 유권자가 집권당을 찍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금리를 올린 덕분에 치솟던 물가와 집값이 다소 안정되지 않았느냐고 하소연한다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치솟는 집값에 ‘영끌’ 추격 매수했는데 집값이 떨어졌다면? 떨어진 집값도 걱정인데 내야 하는 주담대 이자는 두 배 늘었다면?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못 가게 생겼는데 애들 학원비는 계속 오른다면?

집권당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 물가를 정부가 올린 것도 아니다. 금리 역시 정부가 올린 게 아니다. 한은 금통위의 금리 결정은 독립성이 보장돼 있다. 하지만 억울하기는 유권자도 마찬가진다. 윤석열 정부가 금리를 올린 것은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금리가 올랐다. 팍팍한 살림살이를 어떤 식으로든 호소해서 조금이라도 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국민들의 합리적인 선택지다.

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 업체 4곳이 지난 15~17일 전화면접 방식으로 전국지표조사(NBS)를 실시해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총선에서 투표를 할 때 가장 영향을 미친 요인 1순위로 '물가 등 민생현안(30%)'이 꼽혔다고 한다. '정부 여당 심판'은 20%로 2순위였고 '막말 등 후보자 논란'(11%), '야당 심판'(10%), '의대 정원 증원'(8%) 등이 뒤를 이었다. 유권자들이 먹고 사는 민생 문제에 가장 민감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총선이 끝나고 결과에 대해 저마다 분석이 한창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분석, 저런 분석 모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전인수식 여론호도형 분석도 내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는 능력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유권자의 지나친 욕심일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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