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소재로 주목받아온 유리기판 시장이 인텔의 사업 철수 검토 소식에도 불구하고 한층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인텔의 퇴장은 일시적인 충격을 안겼지만, 국내 유리기판 기술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유리기판은 AI 시대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고성능·고집적 반도체 구현에 적합한 차세대 소재다. 낮은 열팽창 계수, 높은 평탄도, 낮은 유전 손실률이라는 세 가지 핵심 강점을 바탕으로, 기존 유기물이나 실리콘 기반 인터포저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러한 유리의 특성은 고성능 반도체 패키징에서 발열 문제와 미세 회로 형성 한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김민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유리기판은 단순한 대체재가 아닌, 반도체 패키징의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라며 "기존 인터포저 방식의 병목을 해소하고, 고집적화 시대에 필연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리기판은 구조상 미세 관통 전극(TGV) 형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도의 레이저 가공 및 식각 기술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세 균열은 전체 기판의 수율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극복이 필요한 주요 기술적 허들로 지적되어 왔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들은 각자의 기술력으로 이에 대응하며 기술 선도권 확보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필옵틱스는 기존 ‘Step & Repeat’ 방식의 비효율성을 개선한 ‘Scan 방식’을 도입해 TGV 공정의 속도와 정밀도를 동시에 확보했다. 이 방식은 레이저를 반사각 조절로 조사해 가공 시간을 대폭 단축하고, 다중 도트 및 고속 식각 기술을 통해 불량률을 낮췄다. 디스플레이 장비에서 반도체 장비로 영역을 넓히며 기술 전문성을 입증하고 있다.

소재 분야에서는 와이씨켐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동사는 감광액, 현상액, 박리액 등 핵심 소재 3종을 국내 주요 유리기판 고객사에 공급하고 있으며, 유리-금속 계면의 접착력 개선을 위한 범용 코팅제를 양산 중이다. 특히 이 코팅제는 유리기판 내 고단 RDL 공정의 수율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소재로, 범용성과 확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검사·리페어 장비 분야에서는 기가비스와 HB테크놀러지가 각각 유리기판 검사장비를 확대하며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으며, 유리기판을 위한 테스트 소켓 개발에 나선 ISC는 SKC의 지분 인수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수율 검증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인텔은 유리기판 내부 개발을 철수하고 외부 조달로 전략을 전환했으나, 약 300건에 달하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만큼, 기술적 영향력은 유지될 전망이다. 라이선스 협상과 특허료 수익을 통해 후속 업체들에 대한 기술 장벽을 설정하고, 산업 내 기술 협상의 중심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민찬 연구원은 이어 "인텔의 철수는 단기 리스크 요인일 뿐, 유리기판 기술 자체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은 이 틈을 타 글로벌 공급망 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을 맞았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인텔의 철수가 글로벌 유리기판 산업의 성장 정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관련 기술 개발을 진행해 왔으며, SKC, 삼성전기, LG이노텍 등의 선제적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K-Chips Act를 통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원 등 정책적 인센티브도 산업 성장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

유리기판은 단순한 소재 혁신을 넘어,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고도화된 패키징 수요가 늘어나는 현재, 유리기판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국내 기술기업들의 도전이 곧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한국경제TV 등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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