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에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유산기부가 미국 등 서양에서는 흔치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부호 빌게이츠는 부자들이 재산의 50%를 생전 또는 사후에 기부하자는 기빙 플레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유산기부가 움트고 있는 분위기다.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을 사후에 자식들에게 남겨주는 게 당연시 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문화다.  -편집자주-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사진=카이스트) 카이스트발전재단 이사장인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83)은 지난 7월 676억원 상당의 재산을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앞서 2012년 미국에 있는 8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하기로 한데 이어 2016년 미국에 있는 1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사후 기증하기로 한 지 4년 만에 세 번째 약속을 한 것이다.  카이스트는 이 회장이 기부한 676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금으로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다. 재단 수익금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카이스트 싱귤래러티(Singularity) 교수’들을 지원하는 노벨상 연구 기금으로 사용된다. 카이스트 싱귤래러티 교수는 과학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인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독창적 과학 지식과 이론을 정립할 연구자를 선발해 지원하는 학내 제도다. 카이스트는 이 제도를 통해 교내 연구진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의 사례와 같이 큰 액수를 내놓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본지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사례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4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강성윤 후원자의 부친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사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 스마트폰에 남긴 열 네 글자의 유언 “재산은 어린이재단에 기부합니다” 故강성윤 씨가 생전 스마트폰에 적어놓은 메모 중 일부다. 2019년 43세인 강씨는 2019년 10월에 갑작스레 하늘로 떠났다. 그의 유서처럼 14자의 글을 남겼고 행정복지센터 지현주 사례관리사에게도 문자를 남겼다. 강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갑작스럽게 병마가 찾아왔고 3년 전 회사를 그만두게 되다. 2019년에 병이 더 악화돼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집 근처 수원시 매탄1동 행정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강씨에게는 아버지 외에 의지할 가족ㆍ친척이 전혀 없었고, 5월부터 행정복지센터에서 나온 지 관리사와 말벗을 하면서 아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지 관리사는 강씨가 “저 죽으면 어린이재단에 재산을 기부해 주세요”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전했다. 그는 “혹시 몰라 유서를 써 놓았다”라고 종종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지 관리사님과 아픔을 나누던 강씨는 지난 10월 병세가 갑작스레 악화되었고, 급히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장례를 치렀고 지 관리사가 짐 정리를 하러 텅 빈 집을 찾았을 때 평소 강씨가 늘 쥐고 있던 스마트폰에 유서처럼 써놓은 글을 발견했다. 재산 기부 의사와 함께 “OO에 재산이 얼마 있다”라는 글이었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강씨는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경기도로 올라와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떠올리면서 늘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돕고 싶어 했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선택했다고 한다. 지 관리사는 강씨의 아버지에게 “기왕이면 고인의 뜻을 기리고 싶다. 고인도 기부 사실을 알면 편하게 하늘나라로 갈 것 같다”라고 조심스레 기부 동의 의사를 타진했다. 강씨의 아버지도 어려운 이를 돕고 싶다는 딸의 마지막 뜻을 존중했다.  그는 “모든 건 내 뜻이 아니고 내 딸이 그렇게 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다”라며 흔쾌히 동의했다.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의 동의가 있었기에 유산기부가 이뤄질 수 있었다.     강씨가 남긴 유산 4억4000만 원은 동네의 지역아동센터 6개소와 그룹홈 1개소의 시설 환경개선과 지역사회 내 아동들의 의료비, 보육비로 지원됐다. 강씨의 유산은 소외계층 아동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김밥 장사로 평생 모은 돈 3억원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 (사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 평생 김밥 장사해 모은 전 재산 3억 원 기부 “아이들의 꿈 실현을 위해 기부한 것 후회 없어” 박춘자 할머니는 10세 어린 나이에 서울역에서 장사를 시작해 남한산성에서 수십 년간 김밥장사를 하여 모은 돈 3억 원을 2008년에 기부했다. TV를 보다가 어렵고 힘든 아이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무작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전화를 걸고 찾아와 직접 기부를 한 것이다. 박 할머니는 기부를 결심한 이유를 묻자 “젊어서는 불행도 겪었고, 고생도 하면서 번 돈이지만 즐겁게 쓰고 싶었다”며 “억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행복을 샀기 때문에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전 재산 기부 후 머물던 실버타운이 폐쇄되면서 2019년 원래 살던 성남으로 다시 거주지를 옮겼다.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에서 생활하면서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나눠야 한다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정기후원 2만원을 새롭게 신청하기도 하셨다. 2019년 7월 어느 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담당자에게 할머니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본인이 살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며 현재 지내고 있는 집의 보증금 5000만 원을 본인 사망 시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재단 담당자와 논의 끝에 유언공증(영상촬영)으로 유산기부를 진행 하였고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다 주고 갈 수 있음에 마음이 편해졌다”며 “후원을 통해 삶의 마지막 정리가 잘 되었다”고 말하며 행복해했다.

[뷰어스X초록우산 연중기획 I 유산기부] ②고인의 뜻 꽃피우는 유산기부…일반인도 기부 참여 어려움 없어

유산기부 후원자 이야기, 일반에 귀감 돼

박진희 기자 승인 2020.09.21 14:28 의견 0

사후에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유산기부가 미국 등 서양에서는 흔치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부호 빌게이츠는 부자들이 재산의 50%를 생전 또는 사후에 기부하자는 기빙 플레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유산기부가 움트고 있는 분위기다. 평생 동안 모은 재산을 사후에 자식들에게 남겨주는 게 당연시 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문화다.  -편집자주-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사진=카이스트)


카이스트발전재단 이사장인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83)은 지난 7월 676억원 상당의 재산을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앞서 2012년 미국에 있는 8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하기로 한데 이어 2016년 미국에 있는 1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사후 기증하기로 한 지 4년 만에 세 번째 약속을 한 것이다. 

카이스트는 이 회장이 기부한 676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금으로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다. 재단 수익금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카이스트 싱귤래러티(Singularity) 교수’들을 지원하는 노벨상 연구 기금으로 사용된다. 카이스트 싱귤래러티 교수는 과학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인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독창적 과학 지식과 이론을 정립할 연구자를 선발해 지원하는 학내 제도다. 카이스트는 이 제도를 통해 교내 연구진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의 사례와 같이 큰 액수를 내놓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본지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사례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4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강성윤 후원자의 부친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사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 스마트폰에 남긴 열 네 글자의 유언

“재산은 어린이재단에 기부합니다”

故강성윤 씨가 생전 스마트폰에 적어놓은 메모 중 일부다. 2019년 43세인 강씨는 2019년 10월에 갑작스레 하늘로 떠났다. 그의 유서처럼 14자의 글을 남겼고 행정복지센터 지현주 사례관리사에게도 문자를 남겼다.

강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갑작스럽게 병마가 찾아왔고 3년 전 회사를 그만두게 되다. 2019년에 병이 더 악화돼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집 근처 수원시 매탄1동 행정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강씨에게는 아버지 외에 의지할 가족ㆍ친척이 전혀 없었고, 5월부터 행정복지센터에서 나온 지 관리사와 말벗을 하면서 아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지 관리사는 강씨가 “저 죽으면 어린이재단에 재산을 기부해 주세요”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전했다. 그는 “혹시 몰라 유서를 써 놓았다”라고 종종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지 관리사님과 아픔을 나누던 강씨는 지난 10월 병세가 갑작스레 악화되었고, 급히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장례를 치렀고 지 관리사가 짐 정리를 하러 텅 빈 집을 찾았을 때 평소 강씨가 늘 쥐고 있던 스마트폰에 유서처럼 써놓은 글을 발견했다. 재산 기부 의사와 함께 “OO에 재산이 얼마 있다”라는 글이었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강씨는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경기도로 올라와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떠올리면서 늘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돕고 싶어 했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선택했다고 한다.

지 관리사는 강씨의 아버지에게 “기왕이면 고인의 뜻을 기리고 싶다. 고인도 기부 사실을 알면 편하게 하늘나라로 갈 것 같다”라고 조심스레 기부 동의 의사를 타진했다. 강씨의 아버지도 어려운 이를 돕고 싶다는 딸의 마지막 뜻을 존중했다. 

그는 “모든 건 내 뜻이 아니고 내 딸이 그렇게 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다”라며 흔쾌히 동의했다.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의 동의가 있었기에 유산기부가 이뤄질 수 있었다.
   
강씨가 남긴 유산 4억4000만 원은 동네의 지역아동센터 6개소와 그룹홈 1개소의 시설 환경개선과 지역사회 내 아동들의 의료비, 보육비로 지원됐다. 강씨의 유산은 소외계층 아동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김밥 장사로 평생 모은 돈 3억원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 (사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 평생 김밥 장사해 모은 전 재산 3억 원 기부

“아이들의 꿈 실현을 위해 기부한 것 후회 없어”

박춘자 할머니는 10세 어린 나이에 서울역에서 장사를 시작해 남한산성에서 수십 년간 김밥장사를 하여 모은 돈 3억 원을 2008년에 기부했다. TV를 보다가 어렵고 힘든 아이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무작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전화를 걸고 찾아와 직접 기부를 한 것이다.

박 할머니는 기부를 결심한 이유를 묻자 “젊어서는 불행도 겪었고, 고생도 하면서 번 돈이지만 즐겁게 쓰고 싶었다”며 “억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행복을 샀기 때문에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전 재산 기부 후 머물던 실버타운이 폐쇄되면서 2019년 원래 살던 성남으로 다시 거주지를 옮겼다.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에서 생활하면서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나눠야 한다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정기후원 2만원을 새롭게 신청하기도 하셨다.

2019년 7월 어느 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담당자에게 할머니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본인이 살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며 현재 지내고 있는 집의 보증금 5000만 원을 본인 사망 시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재단 담당자와 논의 끝에 유언공증(영상촬영)으로 유산기부를 진행 하였고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다 주고 갈 수 있음에 마음이 편해졌다”며 “후원을 통해 삶의 마지막 정리가 잘 되었다”고 말하며 행복해했다.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