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 2019 옥스팜 트레일워커   10년 전 여름휴가 당시 제주 올레길을 처음 걸었다. 실수였다. 8월 말 여전히 뜨거웠던 날씨에 걷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할 때만해도 선선했던 날씨가, 점심에 다다르면서는 열기가 심해졌다. 급기야 오후 4시 경에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볕과 동시에 땅에서 지열이 올라왔다. 사막에서 사람이 왜 죽는지를 순간 깨달았다. 어렵게 도착한 숙소의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미쳤다”고. 여름에는 아침에 출발해 1시 경에 걷기를 마무리하고 그늘에서 쉬든지 물놀이를 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리고 주인아저씨는 “제주 올레길 걷기에는 4월이나 9월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개개인마다 날씨에 대한 성향이 다르기에 저 말이 100% 맞다고 보기 어렵지만, 이후 매해 제주도 올레길을 걸어보니 4월과 9월은 확실히 걷기에 적당한 날씨다. 어느 정도 볕도 있고,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한 수준의 바람이 분다. 오후 지열이 약해지면서 여름처럼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하지 않아도 적당하게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가장 큰 것은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서 숙박비가 내려가고, 관광객들의 북적거림을 피할 수 있다. 어딘가를 걸어 다니는 여행지로 제주 올레길이 가장 유명하고, 국내 걷는 길의 붐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전국 곳곳에 마음을 비우며 걸을 수 있는 길들이 많이 생겼다. 서울성곽길을 비롯해 지리산둘레길, 대구올레길, 무등산옛길, 강화 나들길 강릉 해파랑길 등 어느 새 걷기에 알맞게 단장된 길들이 ‘걷기 족(族)’들을 유혹하고 있다. 올레길이 생기기 이전에는 걷기 위해 따로 길이 마련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아예 산에 오르거나, 가벼운 산책길 정도만 있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부러워하면서도 선뜻 가지 못하는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호회를 만들어 같이 걷기도 했지만, 그런 ‘길’이 부족했다. 2000년 쯤에 전국 도보 여행을 시도한 적이 있다. 며칠 걷다가 ‘여행으로 걷기’는 국내에서 힘들다고 생각했다. 차 중심의 도로만 나 있거나, 정비되지 않은 도보길이 많았다. 또 걷다가 제공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편의시설도 없었다. 결국 포기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걷기 족’들은 행복한 상황이다. 그리고 9월은 그 행복함을 배가(倍加) 시킬 수 있는 시기다. 그리고 이런 시기를 놓칠 리 없는 각 시도 지자체들도 가을맞이 걷기 대회를 여러 개 개최한다. 효과? 그런 것은 생각하지 말자. 1시간쯤 걷다보니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를 느끼게 되고, 그 순간 머리가 맑아지니 말이다.

[여행 한담] ‘걷기’ 딱 좋은 시기가 왔다

유명준 기자 승인 2019.09.01 10:48 | 최종 수정 2139.05.02 00:00 의견 0
사진=연합뉴스 / 2019 옥스팜 트레일워커
사진=연합뉴스 / 2019 옥스팜 트레일워커

 

10년 전 여름휴가 당시 제주 올레길을 처음 걸었다. 실수였다. 8월 말 여전히 뜨거웠던 날씨에 걷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할 때만해도 선선했던 날씨가, 점심에 다다르면서는 열기가 심해졌다. 급기야 오후 4시 경에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볕과 동시에 땅에서 지열이 올라왔다. 사막에서 사람이 왜 죽는지를 순간 깨달았다.

어렵게 도착한 숙소의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미쳤다”고. 여름에는 아침에 출발해 1시 경에 걷기를 마무리하고 그늘에서 쉬든지 물놀이를 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리고 주인아저씨는 “제주 올레길 걷기에는 4월이나 9월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개개인마다 날씨에 대한 성향이 다르기에 저 말이 100% 맞다고 보기 어렵지만, 이후 매해 제주도 올레길을 걸어보니 4월과 9월은 확실히 걷기에 적당한 날씨다. 어느 정도 볕도 있고,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한 수준의 바람이 분다. 오후 지열이 약해지면서 여름처럼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하지 않아도 적당하게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가장 큰 것은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서 숙박비가 내려가고, 관광객들의 북적거림을 피할 수 있다.

어딘가를 걸어 다니는 여행지로 제주 올레길이 가장 유명하고, 국내 걷는 길의 붐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전국 곳곳에 마음을 비우며 걸을 수 있는 길들이 많이 생겼다. 서울성곽길을 비롯해 지리산둘레길, 대구올레길, 무등산옛길, 강화 나들길 강릉 해파랑길 등 어느 새 걷기에 알맞게 단장된 길들이 ‘걷기 족(族)’들을 유혹하고 있다.

올레길이 생기기 이전에는 걷기 위해 따로 길이 마련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아예 산에 오르거나, 가벼운 산책길 정도만 있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부러워하면서도 선뜻 가지 못하는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호회를 만들어 같이 걷기도 했지만, 그런 ‘길’이 부족했다.

2000년 쯤에 전국 도보 여행을 시도한 적이 있다. 며칠 걷다가 ‘여행으로 걷기’는 국내에서 힘들다고 생각했다. 차 중심의 도로만 나 있거나, 정비되지 않은 도보길이 많았다. 또 걷다가 제공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편의시설도 없었다. 결국 포기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걷기 족’들은 행복한 상황이다. 그리고 9월은 그 행복함을 배가(倍加) 시킬 수 있는 시기다. 그리고 이런 시기를 놓칠 리 없는 각 시도 지자체들도 가을맞이 걷기 대회를 여러 개 개최한다.

효과? 그런 것은 생각하지 말자. 1시간쯤 걷다보니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를 느끼게 되고, 그 순간 머리가 맑아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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