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섣불러선 안된다. 세상이 그렇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 흔들리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이들이 생을 붙잡을 수 있도록 어떻게 품어야 할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이미 너무도 많은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기회들을 포착하기란 어렵다. 분명한 것은 지역, 직업, 연령 등 수많은 요인들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죽기로 결심한 이들에게는 죽고자 하는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죽겠다 마음먹은 이들을 되돌릴 수 있는 계기는 개인일수도, 기업일수도, 국가일 수도 있다. 10일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현 사회의 실태와 각계각층의 노력을 조명한다.-편집자주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OECD 회원 가입 이후 13년간 매년 자살률 1위 국가였다. 그러던 중 2016년 리투아니아가 회원국이 되면서 불명예스러운 1위 자리를 털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보다 더한 사정의 리투아니아가 OECD회원국으로 가입했기 때문일 뿐 자살률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2011년 자살예방법 제정 이후 3400명 정도 자살 사망이 줄어들었지만 OECD회원국 평균 자살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2017년에만 1만 2643명이 자살로 이 생을 떠났다. 하루 평균 43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 것이다. 이는 교통사고로 황망히 세상을 떠난 사망자보다 세배 많은 수치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중앙자살예방센터 통계를 보면 더욱 복잡해진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연령, 지역, 직업군에 따른 적재적소 예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개인 특성별 자살현황을 조사하고 있는데 15세~64세 자살자 중 직업별로는 학생, 가사, 무직이 45.6%로 가장 많은 비율을 보였다. 결혼 여부로 구분하면 기혼자(44.2%)가 미혼자(29,.0%)에 비해 더 많이 자살을 선택했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동기로는 정신과적 문제(31.7%), 경제생활문제(25.0%), 육체적 질병(20.6%) 순이었다. 단순하게 연령별로만 봐도 어느 세대가 안정적이라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10대와 20대는 핵가족화에서 오는 정신건강의 어려움, 새로운 세대에 대한 이해 부족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 40~50대는 실업이나 사업실패 등 경제적 원인이, 60대 이상은 신체적 질환으로 인한 고립과 외로움이 가장 큰 위기로 작용한다. 사진=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 ■ 사람의 온기는 그 무엇보다 효과적이다 주목할 점은 이런 이들에겐 국가나 기업보다 주변의 개인이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당신이 위기에 빠졌을 때 당신을 도울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한민국의 답은 절망적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한민국 순위는 최하위. 결국 공감의 부족, 사회의존도 하락 등 사회적 관계지수가 부족한 상태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붙잡을 확률을 낮추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핵가족화, 1인 가구 급증, 혼밥 문화, 직장 내 개인주의화 확산 등 갖은 요소들이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지수를 낮추고 있다. 결국 성장만 좇으며 달려온 사회에 삭막하고 메마른 정서가 주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다만 희망적인 건 이같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요인이 거창하고 복잡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단 한마디의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조언이다. 이 중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제시하는 단적인 예는 바로 일본 아키타 현의 사례다. 이 곳은 일본 내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지만 20년간 꾸준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캠페인을 펼친 후 자살률이 감소했다. 이 인사는 위기에 빠진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의 표현이 됐고, 불쑥 자신의 문제를 토로하는 열쇠가 됐다. 혹은 인사를 건넨 사람이 위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면서 자살률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같은 캠페인은 단순하게 ‘자살을 예방합시다’ ‘자살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등 식상한 문구보다도 더 큰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올 때 효과가 있다. ‘밥은 먹었어?’, ‘속상해 하지 마’처럼 가족이나 친구가 건네는 듯한 메시지를 노출시킨 마포대교는 의미있는 기획으로 각종 상을 휩쓸었지만 그로부터 1년, 오히려 자살 명소로 인식되면서 투신시도자 수가 크게 늘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3년 한해 마포대교에서 발생한 투신시도 건수는 총 93건으로 생명의 다리가 설치됐던 2012년(15건)보다 6배 이상 늘었다. 그 어떤 따뜻한 문구도, 위로의 문구도 사람의 온기보다 효과적일 수 없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사진=노원구 제공 ■ 거시적이기보다 미시적으로…지역 특색 맞춘 예방책 활성화돼야 인간이 인간으로 옮겨주는 온기의 효과와 더불어 발맞춰 나가야 할 다음 순서는 갖가지 상황에 맞는 맞춤형 대책과 시스템이 구축되는가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자살자 전수조사는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어떤 상황과 삶에서 생명을 포기하는가를 알게 해주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게 해주는 의미있는 지표다. 8일 공개된 중앙심리부검센터의 ‘경찰수사기록을 통한 자살사망 분석 결과보고서’는 현재까지 완료된 서울, 광주, 강원, 충북, 충남, 세종 사망자를 분석한 것이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지난해 5월부터 전국 254개 경찰관서에 기록된 자살사망자 7만명을 분석하고 있으며 아직 전라도, 경상도 부산 등이 분석 진행 중에 있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는 각 자치구, 지자체별로 이유와 동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강남구의 경우는 직업 문제가 동기가 된 경우가 많았고 마포구는 대인관계가, 영등포구는 신체건강문제가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는 구에 어떤 연령층, 직업군이 사는가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따라서 지역의 환경을 잘 파악하고 국가적 대책이 아닌 지자체별 특성에 맞는 미시적 대책을 수립해야 자살률을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각 자치구, 지자체별 특색에 맞춘 자살예방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효과를 보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는 것. 서울 노원구의 경우는 2013년부터 어르신돌봄지원센터를 운영했다. 이 서비스를 받는 독거노인 2200명 중 자살한 이는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 6일 발표한 노원구 설명이다. 87명의 생활관리사가 1인당 26~32명을 맡고 있는데 지속적인 자택방문, 안부전화, 각종 민원업무 및 나들이 동행이 주효했다는 자평이다. 서울 마포구는 각종 자살예방 사업을 꾸준히 추진 중이다. 지난 7년간 자살예방지킴이 3800명을 꾸준히 양성했을 뿐 아니라 구내 복지지원센터를 포함해 정신건강의원까지 동참해 자살 원인 해소를 위해 노력한 결과, 마포구의 2016년 대비 2017년 자살 사망자수는 16.5% 감소(국가통계포털)했다. 같은 기간 4.8%, 서울시가 8.6%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광주의 경우는 청년 자살 예방에 효과적인 ‘마인드링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지역은 청년 특화 정신건강센터를 운영하며 그룹인지행동치료, 스트레스 관리, 학업 및 구직활동 지원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자살 사망자가 중장년층이 다수라면 경제적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들의 손길과 일자리 창출, 가정주부가 많다면 각종 문화 프로그램과 지자체 행사 참여 기회를 마련하는 등 미시적이고 국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사진=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 ■ 정부, 맞춤형+범정부 행동지침 동반 정책 시동 정부도 이같은 정책에 적극 동의하고 있다.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9일 출범한 것. 범정부적인 자살 예방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국무총리 소속 자살예방정책위원회에 대해 이낙연 총리는 “지역사회에 (자살 예방을 위한) 안전망을 촘촘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우선 올해 말 완료되는 자살 사망자 전수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해마다 자살위험 지역을 선정하고,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해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중앙자살예방센터·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도 한국방송작가협회와 함께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지난 5일 보건복지부는 4개월간 전문가 11명과 함께 만든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자살 방법과 도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 자살을 문제 해결 수단으로 제시하거나 미화하지 않을 것, 동반자살이나 살해 후 자살과 같은 장면을 지양할 것, 청소년의 자살 장면은 더욱 주의할 것 등 4가지 원칙이다. 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지침에 따라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때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자살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본인 뿐 아니라 자살자의 주변, 경제, 국가적 타격으로 이어진다. 자살자는 떠나도 유가족과 지인들의 트라우마와 상처 치유는 힘겹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자살자 주변인의 또다른 자살 비율도 적지 않아 우려 요소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 ‘5대 사망원인의 사회경제적 비용 분석’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 6조 5000억원에 이른다. 건강한 사회가 개개인의 행복과 국력을 키운다. 본인의 의지, 주변의 관심, 그리고 맞춤형 대책들이 한 데 어우러질 때 건강한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

[자살 없는 세상을 꿈꾸며 ①]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자살률 낮춘 인사말의 의미

문다영 기자 승인 2019.09.10 10:29 | 최종 수정 2139.05.20 00:00 의견 0

‘자살’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섣불러선 안된다. 세상이 그렇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 흔들리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이들이 생을 붙잡을 수 있도록 어떻게 품어야 할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이미 너무도 많은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기회들을 포착하기란 어렵다. 분명한 것은 지역, 직업, 연령 등 수많은 요인들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죽기로 결심한 이들에게는 죽고자 하는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죽겠다 마음먹은 이들을 되돌릴 수 있는 계기는 개인일수도, 기업일수도, 국가일 수도 있다. 10일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현 사회의 실태와 각계각층의 노력을 조명한다.-편집자주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OECD 회원 가입 이후 13년간 매년 자살률 1위 국가였다. 그러던 중 2016년 리투아니아가 회원국이 되면서 불명예스러운 1위 자리를 털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보다 더한 사정의 리투아니아가 OECD회원국으로 가입했기 때문일 뿐 자살률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2011년 자살예방법 제정 이후 3400명 정도 자살 사망이 줄어들었지만 OECD회원국 평균 자살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2017년에만 1만 2643명이 자살로 이 생을 떠났다. 하루 평균 43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 것이다. 이는 교통사고로 황망히 세상을 떠난 사망자보다 세배 많은 수치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중앙자살예방센터 통계를 보면 더욱 복잡해진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연령, 지역, 직업군에 따른 적재적소 예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개인 특성별 자살현황을 조사하고 있는데 15세~64세 자살자 중 직업별로는 학생, 가사, 무직이 45.6%로 가장 많은 비율을 보였다. 결혼 여부로 구분하면 기혼자(44.2%)가 미혼자(29,.0%)에 비해 더 많이 자살을 선택했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동기로는 정신과적 문제(31.7%), 경제생활문제(25.0%), 육체적 질병(20.6%) 순이었다.

단순하게 연령별로만 봐도 어느 세대가 안정적이라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10대와 20대는 핵가족화에서 오는 정신건강의 어려움, 새로운 세대에 대한 이해 부족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 40~50대는 실업이나 사업실패 등 경제적 원인이, 60대 이상은 신체적 질환으로 인한 고립과 외로움이 가장 큰 위기로 작용한다.

사진=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
사진=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

■ 사람의 온기는 그 무엇보다 효과적이다

주목할 점은 이런 이들에겐 국가나 기업보다 주변의 개인이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당신이 위기에 빠졌을 때 당신을 도울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한민국의 답은 절망적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한민국 순위는 최하위. 결국 공감의 부족, 사회의존도 하락 등 사회적 관계지수가 부족한 상태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붙잡을 확률을 낮추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핵가족화, 1인 가구 급증, 혼밥 문화, 직장 내 개인주의화 확산 등 갖은 요소들이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지수를 낮추고 있다.

결국 성장만 좇으며 달려온 사회에 삭막하고 메마른 정서가 주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다만 희망적인 건 이같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요인이 거창하고 복잡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단 한마디의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조언이다. 이 중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제시하는 단적인 예는 바로 일본 아키타 현의 사례다. 이 곳은 일본 내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지만 20년간 꾸준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캠페인을 펼친 후 자살률이 감소했다. 이 인사는 위기에 빠진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의 표현이 됐고, 불쑥 자신의 문제를 토로하는 열쇠가 됐다. 혹은 인사를 건넨 사람이 위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면서 자살률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같은 캠페인은 단순하게 ‘자살을 예방합시다’ ‘자살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등 식상한 문구보다도 더 큰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올 때 효과가 있다. ‘밥은 먹었어?’, ‘속상해 하지 마’처럼 가족이나 친구가 건네는 듯한 메시지를 노출시킨 마포대교는 의미있는 기획으로 각종 상을 휩쓸었지만 그로부터 1년, 오히려 자살 명소로 인식되면서 투신시도자 수가 크게 늘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3년 한해 마포대교에서 발생한 투신시도 건수는 총 93건으로 생명의 다리가 설치됐던 2012년(15건)보다 6배 이상 늘었다. 그 어떤 따뜻한 문구도, 위로의 문구도 사람의 온기보다 효과적일 수 없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사진=노원구 제공
사진=노원구 제공

■ 거시적이기보다 미시적으로…지역 특색 맞춘 예방책 활성화돼야

인간이 인간으로 옮겨주는 온기의 효과와 더불어 발맞춰 나가야 할 다음 순서는 갖가지 상황에 맞는 맞춤형 대책과 시스템이 구축되는가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자살자 전수조사는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어떤 상황과 삶에서 생명을 포기하는가를 알게 해주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게 해주는 의미있는 지표다. 8일 공개된 중앙심리부검센터의 ‘경찰수사기록을 통한 자살사망 분석 결과보고서’는 현재까지 완료된 서울, 광주, 강원, 충북, 충남, 세종 사망자를 분석한 것이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지난해 5월부터 전국 254개 경찰관서에 기록된 자살사망자 7만명을 분석하고 있으며 아직 전라도, 경상도 부산 등이 분석 진행 중에 있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는 각 자치구, 지자체별로 이유와 동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강남구의 경우는 직업 문제가 동기가 된 경우가 많았고 마포구는 대인관계가, 영등포구는 신체건강문제가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는 구에 어떤 연령층, 직업군이 사는가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따라서 지역의 환경을 잘 파악하고 국가적 대책이 아닌 지자체별 특성에 맞는 미시적 대책을 수립해야 자살률을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각 자치구, 지자체별 특색에 맞춘 자살예방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효과를 보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는 것. 서울 노원구의 경우는 2013년부터 어르신돌봄지원센터를 운영했다. 이 서비스를 받는 독거노인 2200명 중 자살한 이는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 6일 발표한 노원구 설명이다. 87명의 생활관리사가 1인당 26~32명을 맡고 있는데 지속적인 자택방문, 안부전화, 각종 민원업무 및 나들이 동행이 주효했다는 자평이다. 서울 마포구는 각종 자살예방 사업을 꾸준히 추진 중이다. 지난 7년간 자살예방지킴이 3800명을 꾸준히 양성했을 뿐 아니라 구내 복지지원센터를 포함해 정신건강의원까지 동참해 자살 원인 해소를 위해 노력한 결과, 마포구의 2016년 대비 2017년 자살 사망자수는 16.5% 감소(국가통계포털)했다. 같은 기간 4.8%, 서울시가 8.6%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광주의 경우는 청년 자살 예방에 효과적인 ‘마인드링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지역은 청년 특화 정신건강센터를 운영하며 그룹인지행동치료, 스트레스 관리, 학업 및 구직활동 지원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자살 사망자가 중장년층이 다수라면 경제적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들의 손길과 일자리 창출, 가정주부가 많다면 각종 문화 프로그램과 지자체 행사 참여 기회를 마련하는 등 미시적이고 국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사진=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
사진=중앙자살예방센터 홈페이지

■ 정부, 맞춤형+범정부 행동지침 동반 정책 시동

정부도 이같은 정책에 적극 동의하고 있다.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9일 출범한 것. 범정부적인 자살 예방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국무총리 소속 자살예방정책위원회에 대해 이낙연 총리는 “지역사회에 (자살 예방을 위한) 안전망을 촘촘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우선 올해 말 완료되는 자살 사망자 전수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해마다 자살위험 지역을 선정하고,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해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중앙자살예방센터·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도 한국방송작가협회와 함께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지난 5일 보건복지부는 4개월간 전문가 11명과 함께 만든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자살 방법과 도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 자살을 문제 해결 수단으로 제시하거나 미화하지 않을 것, 동반자살이나 살해 후 자살과 같은 장면을 지양할 것, 청소년의 자살 장면은 더욱 주의할 것 등 4가지 원칙이다. 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지침에 따라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때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자살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본인 뿐 아니라 자살자의 주변, 경제, 국가적 타격으로 이어진다. 자살자는 떠나도 유가족과 지인들의 트라우마와 상처 치유는 힘겹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자살자 주변인의 또다른 자살 비율도 적지 않아 우려 요소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 ‘5대 사망원인의 사회경제적 비용 분석’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 6조 5000억원에 이른다. 건강한 사회가 개개인의 행복과 국력을 키운다. 본인의 의지, 주변의 관심, 그리고 맞춤형 대책들이 한 데 어우러질 때 건강한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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