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고 지나가는 것 없이 모든 걸 이슈화하고 개혁해 나가겠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보험개혁회의’ 킥-오프 미팅에서 던진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뒤집어 보면 금융당국이 그 동안 덮고 지나간 것이 많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당국이 더 이상 ‘덮고 지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문제점은 대체 뭘까. 가장 심각하게 여긴 문제는 ‘신뢰 상실’이다. 지난해 새로운 회계제도(IFRS17)가 시행됐는데 일부 보험사들이 도입 취지를 외면하고 단기 성과에 치중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는 일을 자초했다. 회계는 기업의 재무정보를 읽을 수 있는 일종의 언어다. 하지만 나라마다 언어가 달라 비교와 소통이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회계기준(IFRS)이 2000년대 초반 제정됐고, 우리나라도 준비를 거쳐 2011년 모든 상장기업에 이를 적용시켰다. 하지만 보험업계의 경우 회계기준의 복잡성 등으로 여러 나라에서 연기를 요청해 지난해에야 처음 적용됐다. 기대와 우려 속에 작년 1분기 첫 실적발표를 통해 공개된 신회계제도의 효과는 혼돈 그 자체였다. IFRS17의 핵심 내용은 보험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현재가치)로 평가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자산의 경우 현재가치로, 부채는 원가로 평가해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과 부채 간 괴리가 커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IFRS17에서는 보험부채를 현재가치로 측정하는 ‘계리적 가정’을 보험사 자율에 맡기는 혁신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일부 보험사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을 적용해 이익을 부풀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보험사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CSM(보험계약마진)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특정 상품을 집중적으로 팔기도 했다. 최근까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단기납 종신보험’이 대표적이다. 생보사 가운데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사는 물론이고 신한라이프, NH농협, 미래에셋, 푸본현대, 동양 등 중·소형사들도 거의 대부분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정 상품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팔려면 치고 빠지는 ‘절판 마케팅’이 효과적이다. 일부 보험사들이 대리점(GA) 쪽에 높은 수수료를 제시하며 절판 마케팅에 몰두한 배경이다. 고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의 특정 목적을 위해 상품을 집중적으로 팔 경우 불완전판매 우려가 커진다. 보험계약이 계속 유지되지 않고 1~2년 사이 이탈할 확률도 높아진다. 보험사의 CSM이 계속 돋보이려면 계약의 유지가 전제돼야 하는데 해지율이 높아질 조짐이 나타나면 신계약을 늘려 이탈한 만큼 메꾸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신계약을 늘리기 위해 다시 GA에 높은 수수료를 약속하며 상품 판매를 독려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인맥에 의존한 밀어내기 영업, 높은 수수료 등 판매채널에서 기존 관행이 반복되며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시키고 불완전판매 등 민생 침해가 증가했다”고 문제점을 요약 제시했다. 이어 “GA 등 보험판매채널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으나 내부통제 및 판매관리 체계 등은 미흡하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했다. 오랜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금융당국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업계에 화살을 돌리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나섰다. 보험개혁회의 출범에 앞서 지난 3~4월 사전 이슈 조사까지 실시하며 개혁의 명분을 다졌다. 당국은 보험개혁회의를 올해 말까지 정기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산하에는 신회계제도반, 상품구조반, 영업관행반, 판매채널반, 미래준비반 등 5개 실무반이 돌아간다. IFRS17 안착을 위한 계리가정의 신뢰성 제고, GA 등 판매채널 관리체계 강화, 중장기적 관점의 경쟁을 위한 판매채널 제도 개편 등의 개선방안을 도출해 내년 초 발표할 계획이다. 권대영 사무처장은 “보험업권이 신뢰를 얻고 재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생보-손보 간, 중소-대형사 간 이해갈등보다는 미래생존을 위해 함께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세영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최근 보험업권 판매채널의 불건전 영업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가장 큰 현안 리스크”라며 “보험사의 판매채널 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과열 경쟁을 방조하는 보험사는 상응한 책임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신뢰회복과 혁신을 위한 보험개혁회의에 참석해 금융소비자학회 등 학계·유관기관·연구기관·보험회사·보험협회 등과 보험개혁회의 운영방안과 최근 보험업권의 이슈사항, 미래대비 과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자료=연합뉴스)

“더이상 덮지 않겠다”...금융당국, 보험업계 정조준, 왜?

신회계제도 악용, 나쁜 판매관행 반복 지적
"불건전 GA 방조 보험사에 책임 부과" 별러
5개 실무반 구성, 내년 초 개선방안 발표 예정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5.07 16:04 의견 0

“덮고 지나가는 것 없이 모든 걸 이슈화하고 개혁해 나가겠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보험개혁회의’ 킥-오프 미팅에서 던진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뒤집어 보면 금융당국이 그 동안 덮고 지나간 것이 많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당국이 더 이상 ‘덮고 지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문제점은 대체 뭘까.

가장 심각하게 여긴 문제는 ‘신뢰 상실’이다. 지난해 새로운 회계제도(IFRS17)가 시행됐는데 일부 보험사들이 도입 취지를 외면하고 단기 성과에 치중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는 일을 자초했다.

회계는 기업의 재무정보를 읽을 수 있는 일종의 언어다. 하지만 나라마다 언어가 달라 비교와 소통이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회계기준(IFRS)이 2000년대 초반 제정됐고, 우리나라도 준비를 거쳐 2011년 모든 상장기업에 이를 적용시켰다. 하지만 보험업계의 경우 회계기준의 복잡성 등으로 여러 나라에서 연기를 요청해 지난해에야 처음 적용됐다.

기대와 우려 속에 작년 1분기 첫 실적발표를 통해 공개된 신회계제도의 효과는 혼돈 그 자체였다. IFRS17의 핵심 내용은 보험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현재가치)로 평가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자산의 경우 현재가치로, 부채는 원가로 평가해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과 부채 간 괴리가 커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IFRS17에서는 보험부채를 현재가치로 측정하는 ‘계리적 가정’을 보험사 자율에 맡기는 혁신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일부 보험사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을 적용해 이익을 부풀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보험사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CSM(보험계약마진)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특정 상품을 집중적으로 팔기도 했다. 최근까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단기납 종신보험’이 대표적이다. 생보사 가운데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사는 물론이고 신한라이프, NH농협, 미래에셋, 푸본현대, 동양 등 중·소형사들도 거의 대부분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정 상품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팔려면 치고 빠지는 ‘절판 마케팅’이 효과적이다. 일부 보험사들이 대리점(GA) 쪽에 높은 수수료를 제시하며 절판 마케팅에 몰두한 배경이다.

고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의 특정 목적을 위해 상품을 집중적으로 팔 경우 불완전판매 우려가 커진다. 보험계약이 계속 유지되지 않고 1~2년 사이 이탈할 확률도 높아진다. 보험사의 CSM이 계속 돋보이려면 계약의 유지가 전제돼야 하는데 해지율이 높아질 조짐이 나타나면 신계약을 늘려 이탈한 만큼 메꾸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신계약을 늘리기 위해 다시 GA에 높은 수수료를 약속하며 상품 판매를 독려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인맥에 의존한 밀어내기 영업, 높은 수수료 등 판매채널에서 기존 관행이 반복되며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시키고 불완전판매 등 민생 침해가 증가했다”고 문제점을 요약 제시했다. 이어 “GA 등 보험판매채널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으나 내부통제 및 판매관리 체계 등은 미흡하다”는 점도 분명히 지적했다.

오랜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금융당국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업계에 화살을 돌리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나섰다. 보험개혁회의 출범에 앞서 지난 3~4월 사전 이슈 조사까지 실시하며 개혁의 명분을 다졌다.

당국은 보험개혁회의를 올해 말까지 정기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산하에는 신회계제도반, 상품구조반, 영업관행반, 판매채널반, 미래준비반 등 5개 실무반이 돌아간다. IFRS17 안착을 위한 계리가정의 신뢰성 제고, GA 등 판매채널 관리체계 강화, 중장기적 관점의 경쟁을 위한 판매채널 제도 개편 등의 개선방안을 도출해 내년 초 발표할 계획이다.

권대영 사무처장은 “보험업권이 신뢰를 얻고 재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생보-손보 간, 중소-대형사 간 이해갈등보다는 미래생존을 위해 함께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세영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최근 보험업권 판매채널의 불건전 영업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가장 큰 현안 리스크”라며 “보험사의 판매채널 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과열 경쟁을 방조하는 보험사는 상응한 책임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신뢰회복과 혁신을 위한 보험개혁회의에 참석해 금융소비자학회 등 학계·유관기관·연구기관·보험회사·보험협회 등과 보험개혁회의 운영방안과 최근 보험업권의 이슈사항, 미래대비 과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자료=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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