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한아름컴퍼니 유명하지 않은 한 배우가 말했다. “원래 무명배우 마지노선이 서른다섯이었는데, 허성태 형 때문에 마흔으로 늘려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많은 배우들이 그런 고민을 한다.” 자신의 연기력을 펼칠 무대가 없는 배우들의 삶은 고달프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여유가 있는 경우는 장사를 한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오디션에 전력을 다한다.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우가 많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현실을 택하는 마지막 나이가 기존에는 서른다섯이었다고 한다. 허성태의 성공이 현실의 길이를 늘여 놨다. SBS ‘기적의 오디션’ 때 수 천 만원 상당의 연봉을 받는 대기업 팀장 자리를 내려놓고 배우의 길을 택했다. 비록 방송에 얼굴은 비췄지만, ‘기적의 오디션’ 자체가 화제성이 떨어졌다. 단역으로만 약 5~60편에 나왔다. 그러다 ‘밀정’에서 확 떴다. 그 이후로는 조연으로 캐스팅의 폭이 넓어졌고, 이제는 주연 자리도 노리는 주조연급으로 성장했다. 약 3~4년의 비교적 짧은 무명배우의 시절을 거쳐 이름값 있는 배우가 되는 허들을 넘은 것이다. 때문에 ‘무명배우의 희망’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허성태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어떤 동생이 형도 ‘서른다섯에 시작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저는 겁나요. 제가 뭐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게 참. 사실 무책임한 발언일 수 있거든요. 불만 확 지피고, 실질적으로 도와 줄 수는 없고요. 저도 엄청 힘들었어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자기한테 확신이 있으면 하는 거고요. 그건 뜯어말려도 안 돼요. 아는 형이 삼겹살 집을 시작했는데, 1년 있다가 다시 연기하려고 하더라고요. 그건 못 막아요.” 연기를 위해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가시밭길이었다. 금전적으로도 부침이 심했다. 갑자기 뚝 끊겨버린 월 수 백 만원의 공백은 컸다. “두 번 정도 후회했어요. 보험을 깨가면서 다음 달 월세를 낸 적이 있는데, 그 때 후회가 많이 됐죠. 그래도 포기는 할 수 없었던 게 이런 면목으로 어머니를 볼 자신이 없더라고요. 어머니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게 제일 싫어요. 지금은 천만다행이에요. 아직도 단역하고 있어 봐요. 43살인데 50대를 준비해야 하는데, 어휴 끔찍하죠.” 사진제공=한아름컴퍼니 무명 생활 중 녹록치 않은 장면이 많았다. 비록 3~4년이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 압박감이 강했다. 낮에 할 일이 없어, 제작사를 전전하며 프로필 사진을 돌리곤 했다. 어떤 제작사에서는 “제발 오지 말아달라”는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갈증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래도 연기를 할 것 같기는 해요. 간절했으니까요. 어떤 달에는 단역을 다섯 개정도 했는데, 300만원이 들어오더라고요. ‘이대로만 벌어도 먹고 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몇 년 하다보니까 단역으로 찾는 분들이 많았어요.”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출근길이라고 한다. 회사 생활 할 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면 이제는 잠을 거의 못자더라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일의 즐거움이 생활에 변화를 줬다. 그런 열정과 즐거움으로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드는 주조연이 됐다. 좀만 더 멀리 보면 큰 작품의 주인공도 내다볼 수 있는 위치에서 그는 어떤 미래를 내다보고 있을까. “회사생활 할 때 사업계획표를 많이 내봤는데,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제가 지금 주인공을 목표로 연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하다보면 그 자리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계획이 계획이잖아요. 2년 정도 열심히 달려온 거 같은데,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보고 싶네요.”

[마주보기②] 허성태, 무명배우의 희망

함상범 기자 승인 2019.09.08 11:46 | 최종 수정 2139.05.18 00:00 의견 0
사진제공=한아름컴퍼니
사진제공=한아름컴퍼니

유명하지 않은 한 배우가 말했다. “원래 무명배우 마지노선이 서른다섯이었는데, 허성태 형 때문에 마흔으로 늘려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많은 배우들이 그런 고민을 한다.”

자신의 연기력을 펼칠 무대가 없는 배우들의 삶은 고달프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여유가 있는 경우는 장사를 한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오디션에 전력을 다한다.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우가 많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현실을 택하는 마지막 나이가 기존에는 서른다섯이었다고 한다. 허성태의 성공이 현실의 길이를 늘여 놨다.

SBS ‘기적의 오디션’ 때 수 천 만원 상당의 연봉을 받는 대기업 팀장 자리를 내려놓고 배우의 길을 택했다. 비록 방송에 얼굴은 비췄지만, ‘기적의 오디션’ 자체가 화제성이 떨어졌다. 단역으로만 약 5~60편에 나왔다. 그러다 ‘밀정’에서 확 떴다. 그 이후로는 조연으로 캐스팅의 폭이 넓어졌고, 이제는 주연 자리도 노리는 주조연급으로 성장했다. 약 3~4년의 비교적 짧은 무명배우의 시절을 거쳐 이름값 있는 배우가 되는 허들을 넘은 것이다. 때문에 ‘무명배우의 희망’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허성태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어떤 동생이 형도 ‘서른다섯에 시작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저는 겁나요. 제가 뭐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게 참. 사실 무책임한 발언일 수 있거든요. 불만 확 지피고, 실질적으로 도와 줄 수는 없고요. 저도 엄청 힘들었어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자기한테 확신이 있으면 하는 거고요. 그건 뜯어말려도 안 돼요. 아는 형이 삼겹살 집을 시작했는데, 1년 있다가 다시 연기하려고 하더라고요. 그건 못 막아요.”

연기를 위해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가시밭길이었다. 금전적으로도 부침이 심했다. 갑자기 뚝 끊겨버린 월 수 백 만원의 공백은 컸다.

“두 번 정도 후회했어요. 보험을 깨가면서 다음 달 월세를 낸 적이 있는데, 그 때 후회가 많이 됐죠. 그래도 포기는 할 수 없었던 게 이런 면목으로 어머니를 볼 자신이 없더라고요. 어머니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게 제일 싫어요. 지금은 천만다행이에요. 아직도 단역하고 있어 봐요. 43살인데 50대를 준비해야 하는데, 어휴 끔찍하죠.”

사진제공=한아름컴퍼니
사진제공=한아름컴퍼니

무명 생활 중 녹록치 않은 장면이 많았다. 비록 3~4년이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 압박감이 강했다. 낮에 할 일이 없어, 제작사를 전전하며 프로필 사진을 돌리곤 했다. 어떤 제작사에서는 “제발 오지 말아달라”는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갈증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래도 연기를 할 것 같기는 해요. 간절했으니까요. 어떤 달에는 단역을 다섯 개정도 했는데, 300만원이 들어오더라고요. ‘이대로만 벌어도 먹고 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몇 년 하다보니까 단역으로 찾는 분들이 많았어요.”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출근길이라고 한다. 회사 생활 할 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면 이제는 잠을 거의 못자더라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일의 즐거움이 생활에 변화를 줬다. 그런 열정과 즐거움으로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드는 주조연이 됐다. 좀만 더 멀리 보면 큰 작품의 주인공도 내다볼 수 있는 위치에서 그는 어떤 미래를 내다보고 있을까.

“회사생활 할 때 사업계획표를 많이 내봤는데,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제가 지금 주인공을 목표로 연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하다보면 그 자리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계획이 계획이잖아요. 2년 정도 열심히 달려온 거 같은데,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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