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이 으르릉거리는가 싶더니 분쟁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발발했다. 고무줄을 양쪽에서 힘껏 잡아당기면 어디서 끊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내게 오는 반동 타격이 상대방보다 약하기만을 바랄 뿐. 복기해 보면 변곡점은 2020년이었다. 오바마 시대까지 꽤 공고했던 WTO 체제는 트럼프 시대에 크게 흔들렸다. 백악관이 중국 봉쇄를 천명하면서 미중 냉전이 본격화됐다. 기업들은 앞다퉈 리쇼어링(reshoring)에 나섰고, 30여년 지속돼 온 세계화 흐름도 끊겼다. 리쇼어링은 필연적으로 비용 상승을 부른다. 인플레이션 시대의 개막이다. 트럼프는 목표달성을 위해 러시아와도 손을 잡았지만 바이든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후원하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맞섰다. 리쇼어링에 전쟁까지 겹치자 인플레이션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미국은 과거 기준금리 20%를 경험한 나라다. 베트남전쟁이 불러온 만성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금리인상 밖에 없었다. 덕분에 미국은 금리인상에 두려움도, 거부감도 없는 나라가 됐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내 고통보다 상대의 고통이 더 크기만 하면 된다. 고유가, 고금리는 개발도상국에게 고통스러운 환경이다. 세계의 공장을 자처한 중국에게도 마찬가지다. 수출경쟁력이 유지되려면 저임금, 저유가, 저금리가 유리하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공장만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자본도 빠져나갔다. 초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이자가 5%인데 중국에 계속 머무를 이유가 없다. 시진핑은 자신이 천명한 ‘중국몽’이 악몽이 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고립에서 탈피하려면 반미연합전선 구축이 최우선 과제다. 다행히 일대일로를 통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 여러 우군을 확보했다. 그 중에서도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우디의 빈 살만은 좋은 공략 대상이다. 지난 3월 중국은 사우디-이란의 국교 회복 중재에 나서 결국 성공을 이끌어 냈다. 불똥은 이스라엘로 튀었다. 중국의 중재에 맞서 미국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회복 중재에 나섰지만 결말은 사뭇 달랐다. 하마스의 침공으로 이어졌다. 이슬람 극단 세력에게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손을 잡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이로써 미국으로서는 상상조차 싫은 시나리오, ‘중국-이란-러시아의 끈끈한 결속’이 현실이 됐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건물들 (가자지구 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의 건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모습. 이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중심도시 가자시티 주민들에게 전원 대피령을 내리고 "며칠 내에 대규모 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3.10.13 이런 현실의 도래는 사실상 트럼프에 힘입은 바 크다. 트럼프는 세계화의 열매를 중국이 독식했다고 선동했다. 조금만 따져봐도 상식 밖의 주장이지만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택했다. 중국에 몰려간 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약속이 듣기 좋았으리라. 내 집에 폭탄만 떨어지지 않으면 유권자들은 세계평화보다는 눈 앞의 이익을 선택하기 마련이니까. 어쨌거나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미중 패권경쟁의 후폭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0%대 금리가 3.5%까지 올랐다. 미국과 달리 변동금리 대출이 많은 한국은 금리 인상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유가, 고금리의 지속은 가계와 기업에 분명 큰 위협이다. 국제금융센터는 금일자 ‘주간 이슈’에서 중동사태 확산 여부와 중국 비구이위안 향방에 주목할 것을 조언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점령에 나선다면 이란의 참전 가능성도 커진다. 이란의 참전은 유가의 폭등을 의미한다. 일단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진정시키고 있지만 향후 상황은 예측불허다. 비구이위안은 상대적으로 오래된 이슈다. 중국의 부동산 위기는 전 세계적인 고금리 환경에 기인한 바 크다. 중국으로서는 무조건 버티는 것 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금리는 인플레이션이 좌우한다. 인플레이션은 유가가 주요 변수다. 유가는 중동 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든, 공화당이 승리하든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역시 그 점만은 분명히 했다. 이는 고유가, 고금리 시대가 상당 기간 지속됨을 의미한다. 이런 시기에 “내년 한국보다 성장률 높은 나라는 별로 없다”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목소리는 무척 공허하게 들린다. 힘의 균형이 깨지면 약한 고리에서부터 탈이 난다. 지구촌이 평화를 만끽할 때조차 한반도는 휴전 상태의 분쟁 지역이었다.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벌어진 일을 남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포르코의 뷰] 이스라엘이 끝일까

최중혁 기자 승인 2023.10.16 14:43 | 최종 수정 2023.10.25 05:16 의견 0

지구촌이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이 으르릉거리는가 싶더니 분쟁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발발했다. 고무줄을 양쪽에서 힘껏 잡아당기면 어디서 끊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내게 오는 반동 타격이 상대방보다 약하기만을 바랄 뿐.

복기해 보면 변곡점은 2020년이었다. 오바마 시대까지 꽤 공고했던 WTO 체제는 트럼프 시대에 크게 흔들렸다. 백악관이 중국 봉쇄를 천명하면서 미중 냉전이 본격화됐다. 기업들은 앞다퉈 리쇼어링(reshoring)에 나섰고, 30여년 지속돼 온 세계화 흐름도 끊겼다.

리쇼어링은 필연적으로 비용 상승을 부른다. 인플레이션 시대의 개막이다. 트럼프는 목표달성을 위해 러시아와도 손을 잡았지만 바이든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후원하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맞섰다.

리쇼어링에 전쟁까지 겹치자 인플레이션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미국은 과거 기준금리 20%를 경험한 나라다. 베트남전쟁이 불러온 만성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금리인상 밖에 없었다. 덕분에 미국은 금리인상에 두려움도, 거부감도 없는 나라가 됐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내 고통보다 상대의 고통이 더 크기만 하면 된다.

고유가, 고금리는 개발도상국에게 고통스러운 환경이다. 세계의 공장을 자처한 중국에게도 마찬가지다. 수출경쟁력이 유지되려면 저임금, 저유가, 저금리가 유리하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공장만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자본도 빠져나갔다. 초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이자가 5%인데 중국에 계속 머무를 이유가 없다.

시진핑은 자신이 천명한 ‘중국몽’이 악몽이 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고립에서 탈피하려면 반미연합전선 구축이 최우선 과제다. 다행히 일대일로를 통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 여러 우군을 확보했다. 그 중에서도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우디의 빈 살만은 좋은 공략 대상이다. 지난 3월 중국은 사우디-이란의 국교 회복 중재에 나서 결국 성공을 이끌어 냈다.

불똥은 이스라엘로 튀었다. 중국의 중재에 맞서 미국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회복 중재에 나섰지만 결말은 사뭇 달랐다. 하마스의 침공으로 이어졌다. 이슬람 극단 세력에게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손을 잡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이로써 미국으로서는 상상조차 싫은 시나리오, ‘중국-이란-러시아의 끈끈한 결속’이 현실이 됐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가자지구 건물들

(가자지구 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의 건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모습. 이날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중심도시 가자시티 주민들에게 전원 대피령을 내리고 "며칠 내에 대규모 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3.10.13


이런 현실의 도래는 사실상 트럼프에 힘입은 바 크다. 트럼프는 세계화의 열매를 중국이 독식했다고 선동했다. 조금만 따져봐도 상식 밖의 주장이지만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택했다. 중국에 몰려간 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약속이 듣기 좋았으리라. 내 집에 폭탄만 떨어지지 않으면 유권자들은 세계평화보다는 눈 앞의 이익을 선택하기 마련이니까.

어쨌거나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미중 패권경쟁의 후폭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0%대 금리가 3.5%까지 올랐다. 미국과 달리 변동금리 대출이 많은 한국은 금리 인상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유가, 고금리의 지속은 가계와 기업에 분명 큰 위협이다.

국제금융센터는 금일자 ‘주간 이슈’에서 중동사태 확산 여부와 중국 비구이위안 향방에 주목할 것을 조언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점령에 나선다면 이란의 참전 가능성도 커진다. 이란의 참전은 유가의 폭등을 의미한다. 일단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진정시키고 있지만 향후 상황은 예측불허다. 비구이위안은 상대적으로 오래된 이슈다. 중국의 부동산 위기는 전 세계적인 고금리 환경에 기인한 바 크다. 중국으로서는 무조건 버티는 것 외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금리는 인플레이션이 좌우한다. 인플레이션은 유가가 주요 변수다. 유가는 중동 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든, 공화당이 승리하든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역시 그 점만은 분명히 했다. 이는 고유가, 고금리 시대가 상당 기간 지속됨을 의미한다.

이런 시기에 “내년 한국보다 성장률 높은 나라는 별로 없다”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목소리는 무척 공허하게 들린다. 힘의 균형이 깨지면 약한 고리에서부터 탈이 난다. 지구촌이 평화를 만끽할 때조차 한반도는 휴전 상태의 분쟁 지역이었다.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벌어진 일을 남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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