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소비의 시대다. 소비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투영하는 소비 트렌드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생산품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소비를 중단하거나 실력행사에 들어간다. 게임산업도 이 같은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나의 '니즈(needs)'를 잘 들어주는, 즉각적인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게임사가 이른바 '좋은 기업'으로 박수를 받는다. 이용자들은 디렉터가 전면에 나서서 빠르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수용하는 모습에 '사이다'라며 열광한다. 게임 중에서도 가치소비가 더 힘을 발휘하는 장르는 특히 온라인 MMORPG다. 이용자들이 가상 공간에서 커뮤니티 작용을 하면서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이나 신념도 게임 플레이 곳곳에서 묻어 난다. 게임사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은 어떤 가치를 수용하느냐다. 개인의 기호도에 맞춰 만들어지는 '가치'가 소비자의 목소리로 나온다. 당연히 하나로 통일 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난무한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넥슨은 지난해 '집게 손가락'이 '메이플 스토리' 애니메이션에 담겼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남성 혐오 표현 논란 중심에 섰다. 넥슨은 논란이 확산되자 즉각적으로 메인 디렉터 등이 방송을 통해서 사태 수습 및 혐오 표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모든 혐오 표현을 반대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메시지를 내놓았음에도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집게 손가락에 대한 비판을 보낸 이용자 목소리와 넥슨의 메시지는 이내 혐오의 의도로 '집게 손가락'을 쓰지 않았다는 의견과 충돌했다. 결국 진영 싸움 양상으로 번지기도 했다. 펄어비스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직접 서비스하는 MMORPG '검은사막'이 이용자 간의 갈등으로 운영 방향 설정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필드쟁, 거점전과 공성전 등 경쟁 콘텐츠서 발생한 유저 사이에서의 심리적 갈등이 적지 않았다. 더불어 'PK'를 즐겨야 하는 이용자와 그렇지 않은 이용자들 간의 다툼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최근 스트리머들을 향한 일부 이용자의 적개심을 문제 삼는 이들과 스트리머들의 행동거지나 역차별 요소가 존재한다며 비판하는 이들까지 부딪혔다. 게임사가 개발만 잘하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용자의 피드백을 수용하되 과대 표현된 목소리를 걸러내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과장된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쪽으로 의견을 설정한다면 이 또한 서비스 역량 부족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만큼 건전한 조정이 필요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커뮤니티 모니터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이용자 반응을 살피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커뮤니티나 게임 내 여론을 수렴하면 조용한 이용자들도 많은 만큼 한쪽에 휘둘리는 운영이라는 비판을 역으로 받을 때도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 몇 년 간 국내외 게임업계는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한 많은 시도를 벌이기도 했다. 소수자 차별을 지양하고 배제하자는 움직임이었으나 반응은 썩 좋지 못한 것 같다. 다양성 포용은 가치소비에 어울리는 전략처럼 비춰졌으나 오히려 적정선을 놓고 주류 소비층의 반발이 크다. 꽤나 오래 플레이한 게임을 끄고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8강 진출을 놓고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이바가 붙은 경기를 봤다. 정규 시간 1대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연장전에서도 추가 골은 나오지 않았다.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2m가 넘는 높이와 7m 이상의 폭을 가진 골대를 혼자 커버해야 하는 골키퍼의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 공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 사방을 살펴야 하는, 잘못된 선택이더라도 일단 몸은 던지고 봐야 하는, 게임사도 페널티킥 앞에선 골키퍼와 같지 않을까.

가치소비 시대, 게임업계의 아슬아슬 외줄타기 [정지수의 랜드마크]

정지수 기자 승인 2024.02.01 15:11 | 최종 수정 2024.02.01 16:09 의견 0

가치소비의 시대다. 소비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투영하는 소비 트렌드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생산품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소비를 중단하거나 실력행사에 들어간다.

게임산업도 이 같은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나의 '니즈(needs)'를 잘 들어주는, 즉각적인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게임사가 이른바 '좋은 기업'으로 박수를 받는다. 이용자들은 디렉터가 전면에 나서서 빠르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수용하는 모습에 '사이다'라며 열광한다.

게임 중에서도 가치소비가 더 힘을 발휘하는 장르는 특히 온라인 MMORPG다. 이용자들이 가상 공간에서 커뮤니티 작용을 하면서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가치관이나 신념도 게임 플레이 곳곳에서 묻어 난다.

게임사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은 어떤 가치를 수용하느냐다. 개인의 기호도에 맞춰 만들어지는 '가치'가 소비자의 목소리로 나온다. 당연히 하나로 통일 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난무한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넥슨은 지난해 '집게 손가락'이 '메이플 스토리' 애니메이션에 담겼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남성 혐오 표현 논란 중심에 섰다.

넥슨은 논란이 확산되자 즉각적으로 메인 디렉터 등이 방송을 통해서 사태 수습 및 혐오 표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모든 혐오 표현을 반대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메시지를 내놓았음에도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집게 손가락에 대한 비판을 보낸 이용자 목소리와 넥슨의 메시지는 이내 혐오의 의도로 '집게 손가락'을 쓰지 않았다는 의견과 충돌했다. 결국 진영 싸움 양상으로 번지기도 했다.

펄어비스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직접 서비스하는 MMORPG '검은사막'이 이용자 간의 갈등으로 운영 방향 설정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필드쟁, 거점전과 공성전 등 경쟁 콘텐츠서 발생한 유저 사이에서의 심리적 갈등이 적지 않았다. 더불어 'PK'를 즐겨야 하는 이용자와 그렇지 않은 이용자들 간의 다툼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최근 스트리머들을 향한 일부 이용자의 적개심을 문제 삼는 이들과 스트리머들의 행동거지나 역차별 요소가 존재한다며 비판하는 이들까지 부딪혔다.

게임사가 개발만 잘하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용자의 피드백을 수용하되 과대 표현된 목소리를 걸러내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과장된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쪽으로 의견을 설정한다면 이 또한 서비스 역량 부족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만큼 건전한 조정이 필요하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커뮤니티 모니터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이용자 반응을 살피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커뮤니티나 게임 내 여론을 수렴하면 조용한 이용자들도 많은 만큼 한쪽에 휘둘리는 운영이라는 비판을 역으로 받을 때도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 몇 년 간 국내외 게임업계는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한 많은 시도를 벌이기도 했다. 소수자 차별을 지양하고 배제하자는 움직임이었으나 반응은 썩 좋지 못한 것 같다. 다양성 포용은 가치소비에 어울리는 전략처럼 비춰졌으나 오히려 적정선을 놓고 주류 소비층의 반발이 크다.

꽤나 오래 플레이한 게임을 끄고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8강 진출을 놓고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이바가 붙은 경기를 봤다. 정규 시간 1대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연장전에서도 추가 골은 나오지 않았다.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2m가 넘는 높이와 7m 이상의 폭을 가진 골대를 혼자 커버해야 하는 골키퍼의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 공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 사방을 살펴야 하는, 잘못된 선택이더라도 일단 몸은 던지고 봐야 하는, 게임사도 페널티킥 앞에선 골키퍼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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