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경제는 산업과 금융, 두 개의 큰 바퀴로 굴러간다. 산업 분야에선 이미 삼성전자라는 세계 1등 기업의 DNA를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금융 분야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배출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답답하고 초라한 상황이다. ‘금융의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경제의 오랜 화두이자 숙제다. 뷰어스는 K금융의 유일한 해법으로 꼽히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한 과제와 한계점,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자료=신한금융 “현지화 성공 사례를 찾는다면 신한베트남은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은행의 해외 진출 역사에 대해 식견을 갖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신한베트남은행에는 어떤 성공 스토리가 담겨 있길래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 시장 진출은 빨랐지만 선점엔 실패 ‘세계경영’을 줄곧 펼쳤던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1990년대 인도, 중앙아시아와 함께 베트남 시장에 공을 들였다. 대우그룹의 주채권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이 한국 은행들 중에서 가장 먼저 베트남에 진출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제일은행은 한국-베트남 수교 이듬해인 1993년 대우증권과 함께 베트남 퍼스트 비나은행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공산국가였기 때문에 단독 진출은 불가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고 제일은행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조흥은행이 제일은행과 대우증권의 지분을 넘겨받아 베트콤은행과 함께 공동 최대주주가 됐다. 허나 조흥은행 역시 2006년 신한은행에 합병되면서 베트남 합작회사의 한국측 지분은 최종 신한은행이 갖게 됐다. 신한은행은 베트남 시장 가능성을 보고 철수보다는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2009년 별도 지점 설립에 이어 2011년에는 베트콤은행의 지분까지 사들였다. 신한베트남은행의 탄생이다. 한국 은행업의 베트남 진출은 상당히 빨랐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여러 번의 손바뀜이 생기면서 제대로 된 현지화 고민은 201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화됐다. 당시 신한은행은 다른 많은 은행들처럼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영업을 했다. 하지만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한국 상품을 파는 것으로는 현지 공략에 한계가 너무 뚜렷했다. 이에 베트남 직원들이, 베트남 고객들에게, 베트남 상품을 파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 M&A 계기로 ‘진정한 현지화’ 속도 신한금융 관계자는 “베트남 시장에 어떻게 녹아들 것이냐를 두고 당시 다각도로 조사와 연구를 했는데 2017년 호주계 ANZ은행 인수가 계기가 된 것 같다”며 “그 후로 현지 직원을 대거 채용하고 중간 관리자를 육성하는 등 진정한 현지화가 이뤄졌다”고 회고했다. 호주계 ANZ은행은 2010년대 베트남에서 고전하고 있었고 리테일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이를 눈여겨봐왔던 신한금융이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결국 인수했다. 소규모이긴 했지만 리테일 영업망이 확보되면서 본격적인 시장 공략이 시작됐다. 베트남신한은행의 매니저(부장급) 인원은 2017년 32명에서 2020년 63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162명까지 불어났다. 경영진에 해당하는 본부장급 현지 직원도 2017년에는 한 명도 없었지만 현재 9명 중 6명이 베트남인이다. 그럼에도 한국인 주재원 수는 2017년 43명에서 2023년 43명으로 변동이 없다. 신한금융이 인력의 현지화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베트남에서의 성공 덕에 국내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신한금융은 해외 수익 비중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5638억원으로, 그룹 전체 수익에서 12.9%를 차지한다. 신한은행의 국외점포별 자산 비중을 살펴보면 신한베트남은행은 전체 국외지점(33%), 일본 SBJ은행(25%)에 이어 16%를 차지한다. 반면, 손익 비중은 42%로, 국외지점(12%)과 SBJ은행(23%)보다 월등히 높다. 적은 자산으로도 높은 수익을 내고 있어 가성비가 좋다. 이에 베트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이른 기대감이긴 하나 신한베트남은행이 국내 신한은행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는 날이 올 것이란 희망도 생긴다. ■ 아직 요원한 성공 케이스의 ‘확산’ 물론 우려도 있다. 신한금융의 성공 케이스가 보편화되지 못하고 특수 케이스에 머물러 있어서다. 차근차근 조금씩 성장하고는 있지만 신한베트남은행은 아직 베트남 10대 은행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KB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 등 한국의 은행들 간 경쟁도 치열하다. 신한금융은 베트남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에도 진출했지만 아직 베트남만큼의 쾌거는 없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일본 은행들의 경우 오랫동안 제로금리에 가까운 환경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동남아 시장으로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며 “한국 은행들은 일본 은행들이 선점한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서 성공 사례가 나오기 쉽지 않은 여건”이라고 전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의 성공이 오히려 예외적인 사례에 가깝다는 것.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점포 중 60% 이상이 국내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 동남아,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며 “국내 금융회사 간 출혈경쟁 얘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이 ANZ은행 인수를 계기로 현지화 전략에 전환점을 맞이했듯이 인오가닉(inorganic) 전략을 적극 구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연구소들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대형 은행들은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현지 금융기관과 전략적 제휴는 물론, 지분투자 등으로 진출방식을 다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신디케이트론 등 글로벌 IB 부문으로 사업 분야 확대를 꾀하는 분위기다. 박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회사 간 출혈경쟁을 완화하고, 비은행의 해외진출을 촉진하며, 현지시장에서의 경쟁력 및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며 “은행, 비은행, 정책금융기관 등이 협력해 전략적 투자자로서 시장 지배력이 있는 현지 대형 금융회사의 지분을 공동 인수하는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신한베트남은행 전경(사진=신한은행)

[응답하라 K금융④] 신한금융 베트남법인에 어떤 성공스토리 있길래...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2.14 10:28 | 최종 수정 2024.02.14 18:39 의견 0

한 나라의 경제는 산업과 금융, 두 개의 큰 바퀴로 굴러간다. 산업 분야에선 이미 삼성전자라는 세계 1등 기업의 DNA를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금융 분야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배출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답답하고 초라한 상황이다. ‘금융의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경제의 오랜 화두이자 숙제다. 뷰어스는 K금융의 유일한 해법으로 꼽히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한 과제와 한계점,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자료=신한금융


“현지화 성공 사례를 찾는다면 신한베트남은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은행의 해외 진출 역사에 대해 식견을 갖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신한베트남은행에는 어떤 성공 스토리가 담겨 있길래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 시장 진출은 빨랐지만 선점엔 실패

‘세계경영’을 줄곧 펼쳤던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1990년대 인도, 중앙아시아와 함께 베트남 시장에 공을 들였다. 대우그룹의 주채권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이 한국 은행들 중에서 가장 먼저 베트남에 진출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제일은행은 한국-베트남 수교 이듬해인 1993년 대우증권과 함께 베트남 퍼스트 비나은행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공산국가였기 때문에 단독 진출은 불가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고 제일은행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조흥은행이 제일은행과 대우증권의 지분을 넘겨받아 베트콤은행과 함께 공동 최대주주가 됐다. 허나 조흥은행 역시 2006년 신한은행에 합병되면서 베트남 합작회사의 한국측 지분은 최종 신한은행이 갖게 됐다. 신한은행은 베트남 시장 가능성을 보고 철수보다는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2009년 별도 지점 설립에 이어 2011년에는 베트콤은행의 지분까지 사들였다. 신한베트남은행의 탄생이다.

한국 은행업의 베트남 진출은 상당히 빨랐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여러 번의 손바뀜이 생기면서 제대로 된 현지화 고민은 201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화됐다. 당시 신한은행은 다른 많은 은행들처럼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영업을 했다. 하지만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한국 상품을 파는 것으로는 현지 공략에 한계가 너무 뚜렷했다. 이에 베트남 직원들이, 베트남 고객들에게, 베트남 상품을 파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 M&A 계기로 ‘진정한 현지화’ 속도

신한금융 관계자는 “베트남 시장에 어떻게 녹아들 것이냐를 두고 당시 다각도로 조사와 연구를 했는데 2017년 호주계 ANZ은행 인수가 계기가 된 것 같다”며 “그 후로 현지 직원을 대거 채용하고 중간 관리자를 육성하는 등 진정한 현지화가 이뤄졌다”고 회고했다.

호주계 ANZ은행은 2010년대 베트남에서 고전하고 있었고 리테일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이를 눈여겨봐왔던 신한금융이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결국 인수했다. 소규모이긴 했지만 리테일 영업망이 확보되면서 본격적인 시장 공략이 시작됐다.

베트남신한은행의 매니저(부장급) 인원은 2017년 32명에서 2020년 63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162명까지 불어났다. 경영진에 해당하는 본부장급 현지 직원도 2017년에는 한 명도 없었지만 현재 9명 중 6명이 베트남인이다. 그럼에도 한국인 주재원 수는 2017년 43명에서 2023년 43명으로 변동이 없다. 신한금융이 인력의 현지화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베트남에서의 성공 덕에 국내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신한금융은 해외 수익 비중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5638억원으로, 그룹 전체 수익에서 12.9%를 차지한다. 신한은행의 국외점포별 자산 비중을 살펴보면 신한베트남은행은 전체 국외지점(33%), 일본 SBJ은행(25%)에 이어 16%를 차지한다. 반면, 손익 비중은 42%로, 국외지점(12%)과 SBJ은행(23%)보다 월등히 높다. 적은 자산으로도 높은 수익을 내고 있어 가성비가 좋다. 이에 베트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이른 기대감이긴 하나 신한베트남은행이 국내 신한은행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는 날이 올 것이란 희망도 생긴다.

■ 아직 요원한 성공 케이스의 ‘확산’

물론 우려도 있다. 신한금융의 성공 케이스가 보편화되지 못하고 특수 케이스에 머물러 있어서다. 차근차근 조금씩 성장하고는 있지만 신한베트남은행은 아직 베트남 10대 은행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KB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 등 한국의 은행들 간 경쟁도 치열하다. 신한금융은 베트남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에도 진출했지만 아직 베트남만큼의 쾌거는 없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일본 은행들의 경우 오랫동안 제로금리에 가까운 환경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동남아 시장으로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며 “한국 은행들은 일본 은행들이 선점한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서 성공 사례가 나오기 쉽지 않은 여건”이라고 전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의 성공이 오히려 예외적인 사례에 가깝다는 것.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점포 중 60% 이상이 국내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중국, 동남아,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며 “국내 금융회사 간 출혈경쟁 얘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이 ANZ은행 인수를 계기로 현지화 전략에 전환점을 맞이했듯이 인오가닉(inorganic) 전략을 적극 구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연구소들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대형 은행들은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현지 금융기관과 전략적 제휴는 물론, 지분투자 등으로 진출방식을 다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신디케이트론 등 글로벌 IB 부문으로 사업 분야 확대를 꾀하는 분위기다.

박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회사 간 출혈경쟁을 완화하고, 비은행의 해외진출을 촉진하며, 현지시장에서의 경쟁력 및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며 “은행, 비은행, 정책금융기관 등이 협력해 전략적 투자자로서 시장 지배력이 있는 현지 대형 금융회사의 지분을 공동 인수하는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신한베트남은행 전경(사진=신한은행)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