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현지 기자 ‘제일’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간판 외에는 이 공간을 설명하는 단어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당혹스럽다. 절반 이상이 텅 빈 이 공간에는 긴 테이블 하나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회색 철문 틈으로 큰 주방이 보여 이곳이 식당이라는 것을 겨우 알게 한다. 동생과 함께 2년째 이 식당은 운영 중인 김주환은 ‘제일’이라는 간판조차 기존에 있던 것을 사용할 만큼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독특함 가득한 공간에도 어떤 콘셉트나 의도는 없었다. 이 공간을 채우는 손님들이 가게의 의미를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만든 사람이 콘셉트를 잡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손님들이 그것을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아직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가게를 찾아주시는 특정 손님들의 특징이 이 가게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처음에는 스피커가 그 역할을 했다. 우연히 가져다 둔 스피커가 고가라는 것을 알아본 손님들이 이 가게를 즐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상징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식장이 위치한 성수동에 디자인 업계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음악과 함께 식사를 즐기는 식당이 된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울림이 너무 심해 스피커는 가게에 둘 수 없었고, 그 공간을 자연스럽게 비워두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현지 기자 그럼에도 식당은 식당이다. 음식의 맛과 종류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음식을 파는지 조차 파악하기 힘든 이 가게에서는 메뉴를 설명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먼저 손님이 들어오면 메뉴판을 건네는데, 메뉴 설명조차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음과 모음을 모두 풀어썼기 때문에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메뉴판으로 김주환이 자신의 방식대로 음식을 설명한다. “흑돼지, 고등어와 명란은 고정 메뉴다. 다른 메뉴는 바꾸고 싶을 때 바꾼다. 적절한 계절 음식이 될 때도 있고, 바꾸고 싶을 때 바꾼다. 음식의 콘셉트는 내가 정하고 있다. 맛을 보고 원하는 맛이 아니면 팔 수 없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달라고 한다. 주류 설명도 직접 해드린다. 다만 전문적인 설명은 아니고, 느낀 것을 말씀드린다.” 대신 담백함은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강한 양념이나 자극적인 맛이 아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담백함이 ‘제일’ 메뉴들의 특징이다. “담백함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많이 생각한다. 어떤 좋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도, 이후 늘 붓는다는 손님이 오히려 붓기가 빠졌다는 일화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이 맛을 즐겨주시는 손님들이 꼭 있다.” 소주나 맥주가 아닌 전통주를 파는 것도 이런 음식과 어울리는 술이기 때문이다. 소주를 팔지 않는 것은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지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주만 팔고 있다. 전국 전통주의 맛을 많이 보고 있다. 메뉴에 잘 어울리는 것들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향이 있는 술이어야 하고, 맛도 있어야 한다. 또 손님들이 직접 경험해 보길 원하는 전통주를 선택한다. 이게 정답은 아니다. 내가 느낀 대로 하는 것이다.” 사진=이현지 기자 김주환은 식당 주인이지만 동시에 배우다. 음식 그 자체에만 신경 쓰지 않고, 손님들이 이 공간을 즐기기를 원하는 그의 바람은 연기를 하며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연기 역시 정해진 틀을 벗어날 때에 진정한 어떤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좇아서 하는 사람과 온전히 스스로 공부해서 보는 사람은 분명 다르다. 누군가가 주입을 해서 느끼게 되면 그 범위가 한정된다. 연기도 입시 때는 대학을 가기 위해 배운다. 하지만 그때의 습관이 있으면 대학에 들어가서 힘들다.” 연기 경험이 공간을 자기 식대로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됐다. 잠시 연기를 쉬고는 있지만, 앞으로 꾸준히 오디션을 보며 식당과 연기 모두를 함께 해낼 생각이다. “지금은 연기를 못 하고 있다. 하지만 가게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공연을 할 때 이미지를 많이 그리는 편이다. 처음 스타트부터 머리로 쭉 그려보는 습관이 있다. 공간을 꾸미고, 바깥 날씨부터 손님들이 이 공간에 들어와 어떤 것을 느끼는지 스토리를 써가기도 한다.” 고정 수입을 위해 도전하게 된 식당이지만, 큰돈을 벌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연기와 식당 운영 모두 자신의 가치관대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저변을 넓히기 위해 욕심을 내다보면 자신의 것을 잃어버린다는 그의 가치관이 묻어난 발언이었다. “연기는 해야 되겠고, 돈은 없고, 한 달에 100만 원만 벌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파이를 벌리고 싶지는 않다. 직선으로 가고 싶지, 넓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인맥도 그렇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쏟으며 멀리 가고 싶다.”

[공간의 맛] 배우 김주환, 의문의 공간 ‘제일’을 채우는 방법

장수정 기자 승인 2019.08.22 10:02 | 최종 수정 2139.04.20 00:00 의견 0
사진=이현지 기자
사진=이현지 기자

‘제일’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간판 외에는 이 공간을 설명하는 단어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당혹스럽다. 절반 이상이 텅 빈 이 공간에는 긴 테이블 하나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회색 철문 틈으로 큰 주방이 보여 이곳이 식당이라는 것을 겨우 알게 한다.

동생과 함께 2년째 이 식당은 운영 중인 김주환은 ‘제일’이라는 간판조차 기존에 있던 것을 사용할 만큼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독특함 가득한 공간에도 어떤 콘셉트나 의도는 없었다. 이 공간을 채우는 손님들이 가게의 의미를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만든 사람이 콘셉트를 잡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손님들이 그것을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아직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가게를 찾아주시는 특정 손님들의 특징이 이 가게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처음에는 스피커가 그 역할을 했다. 우연히 가져다 둔 스피커가 고가라는 것을 알아본 손님들이 이 가게를 즐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상징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식장이 위치한 성수동에 디자인 업계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음악과 함께 식사를 즐기는 식당이 된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울림이 너무 심해 스피커는 가게에 둘 수 없었고, 그 공간을 자연스럽게 비워두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현지 기자
사진=이현지 기자

그럼에도 식당은 식당이다. 음식의 맛과 종류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음식을 파는지 조차 파악하기 힘든 이 가게에서는 메뉴를 설명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먼저 손님이 들어오면 메뉴판을 건네는데, 메뉴 설명조차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음과 모음을 모두 풀어썼기 때문에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메뉴판으로 김주환이 자신의 방식대로 음식을 설명한다.

“흑돼지, 고등어와 명란은 고정 메뉴다. 다른 메뉴는 바꾸고 싶을 때 바꾼다. 적절한 계절 음식이 될 때도 있고, 바꾸고 싶을 때 바꾼다. 음식의 콘셉트는 내가 정하고 있다. 맛을 보고 원하는 맛이 아니면 팔 수 없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달라고 한다. 주류 설명도 직접 해드린다. 다만 전문적인 설명은 아니고, 느낀 것을 말씀드린다.”

대신 담백함은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강한 양념이나 자극적인 맛이 아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담백함이 ‘제일’ 메뉴들의 특징이다.

“담백함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많이 생각한다. 어떤 좋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도, 이후 늘 붓는다는 손님이 오히려 붓기가 빠졌다는 일화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이 맛을 즐겨주시는 손님들이 꼭 있다.”

소주나 맥주가 아닌 전통주를 파는 것도 이런 음식과 어울리는 술이기 때문이다. 소주를 팔지 않는 것은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지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주만 팔고 있다. 전국 전통주의 맛을 많이 보고 있다. 메뉴에 잘 어울리는 것들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향이 있는 술이어야 하고, 맛도 있어야 한다. 또 손님들이 직접 경험해 보길 원하는 전통주를 선택한다. 이게 정답은 아니다. 내가 느낀 대로 하는 것이다.”

사진=이현지 기자
사진=이현지 기자

김주환은 식당 주인이지만 동시에 배우다. 음식 그 자체에만 신경 쓰지 않고, 손님들이 이 공간을 즐기기를 원하는 그의 바람은 연기를 하며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연기 역시 정해진 틀을 벗어날 때에 진정한 어떤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좇아서 하는 사람과 온전히 스스로 공부해서 보는 사람은 분명 다르다. 누군가가 주입을 해서 느끼게 되면 그 범위가 한정된다. 연기도 입시 때는 대학을 가기 위해 배운다. 하지만 그때의 습관이 있으면 대학에 들어가서 힘들다.”

연기 경험이 공간을 자기 식대로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됐다. 잠시 연기를 쉬고는 있지만, 앞으로 꾸준히 오디션을 보며 식당과 연기 모두를 함께 해낼 생각이다.

“지금은 연기를 못 하고 있다. 하지만 가게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공연을 할 때 이미지를 많이 그리는 편이다. 처음 스타트부터 머리로 쭉 그려보는 습관이 있다. 공간을 꾸미고, 바깥 날씨부터 손님들이 이 공간에 들어와 어떤 것을 느끼는지 스토리를 써가기도 한다.”

고정 수입을 위해 도전하게 된 식당이지만, 큰돈을 벌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연기와 식당 운영 모두 자신의 가치관대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저변을 넓히기 위해 욕심을 내다보면 자신의 것을 잃어버린다는 그의 가치관이 묻어난 발언이었다.

“연기는 해야 되겠고, 돈은 없고, 한 달에 100만 원만 벌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파이를 벌리고 싶지는 않다. 직선으로 가고 싶지, 넓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인맥도 그렇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쏟으며 멀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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