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감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10.17 ondol@yna.co.kr 지난 17일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금융권 임직원 횡령사고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야 24명 의원 중 해당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의원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권 횡령 사고는 나날이 규모가 커지면서 대범해지고 있다. 최근 경남은행에선 약 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횡령 사고가 발생,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에서도 700억원 규모의 직원 횡령 사고가 적발됐고, 국민은행 역시 직원들이 내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127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이 알려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권 임직원 횡령사고 금액과 건수는 2021년 73억원(14건)에서 지난해 740억원(20건)으로 불어났고, 올해에는 이 마저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서 내부통제가 가장 엄격하다는 은행의 사정이 이렇다. 당연히 대책 마련이 필요하고 의원들은 금융감독 수장에게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수 차례 물었다. 그 때마다 이복현 원장은 빠짐 없이 ‘유동성 과잉’을 언급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서 금융사고가 급증했다는 인식이다. “오랜 기간 과유동성이 지속된 상태에서 흐트러진 윤리의식이라든가 이익추구 극대화 현상이 표출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동성 증가와 횡령사고 증가 간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주요 원인이라는 인식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정확한 검증은 학자들의 연구가 뒤따라야겠지만 일반적으로 횡령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불법인 줄 알면서도 저지르는 행위로 간주된다. 시중에 풀린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유혹을 이기는 강도가 달라진다는 인식은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직업군을 꼽을 때 은행원과 회계사는 항상 상위권에 든다. 직업 특성상 은행원은 융통성보다는 규정과 원리원칙을 중시한다. 돈과 숫자를 다루는 직업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차변과 대변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은 재무제표는 상상하기 어렵다. 항상 남의 돈을 다루기 때문에 윤리의식 또한 그 어느 직종보다 철저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은행원들은 타 직종 대비 학력과 연봉도 높다. 이런 은행원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횡령을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접근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쪽으로는 ‘나도 남들처럼 갑부가 돼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것이고, 안타까운 쪽으로는 ‘지금 형편상 너무 절박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일 테다. 전자는 ‘한탕주의’, 후자는 ‘생활고’ 정도로 요약하자. 한탕주의의 극단은 ‘로또’다. 합법적이긴 하지만 당첨 확률이 너무 낮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민들은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다. 로또보다는 낫지만 성공 확률이 낮기는 매 한가지다. 최근에는 코인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코인이든 누군가는 성공해서 안락한 삶을 누린다. 매체들은 너도나도 이 소수의 성공 사례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는 일인 것처럼 부풀려 널리 전파한다. 내집 마련도 못했는데 월급으로만 버티는 사람은 뭔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종잣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지금 당장 투자에 뛰어들라고 속삭인다. 이런 속삭임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부지불식간 마음 속에는 조금씩 소외감과 박탈감, 상실감이 쌓인다. 그래도 한탕주의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 생활고 쪽은 훨씬 절박하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다. 지난해 방영돼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골프선수 지망 딸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는 기러기 아빠(차승원 분)가 등장한다. 은행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에도 불구하고 늘 궁핍하다. 미국에 있는 아내와 딸은 빨리 생활비를 보내라고 독촉하고 급전을 못 구한 아빠는 결국 큰 유혹에 빠진다.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5년5개월 동안 국내 17개 은행이 1만7402명의 희망퇴직자에게 지급한 퇴직금은 9조6047억원에 달했다. 1인당 평균 5억5193만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정년퇴직은 ‘특별한’ 케이스로 인식된다. 대부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떠난다. 30대가 희망퇴직 대상자에 포함됐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나온다. 100세 시대로 수명은 자꾸 늘어나는데 안정된 직장 구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없는 형편에 노후를 떠올리면 불안감부터 엄습한다. 공금 횡령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 때문이라기보다는 한탕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고용불안으로 노후대책에 답이 없는 직장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분석 아닐까. 21대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산은 약 25억원으로 집계됐다. 검사 출신 이복현 원장은 지난해 성과급으로만 1억3500만원을 받았다. 노후걱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이날 국감장에서 의원들은 더 엄격하고, 더 철저한 금융감독과 내부통제를 주문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의 말대로 시중에 유동성이 줄어들고 내부통제가 더 엄격해지면 과연 횡령 사고가 줄어들까. 분명 아닐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포르코의 뷰] 이복현의 착각, 은행 횡령사고가 과유동성 때문?

최중혁 기자 승인 2023.10.19 09:58 의견 0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감원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10.17 ondol@yna.co.kr


지난 17일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금융권 임직원 횡령사고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야 24명 의원 중 해당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의원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권 횡령 사고는 나날이 규모가 커지면서 대범해지고 있다.

최근 경남은행에선 약 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횡령 사고가 발생,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에서도 700억원 규모의 직원 횡령 사고가 적발됐고, 국민은행 역시 직원들이 내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127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이 알려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권 임직원 횡령사고 금액과 건수는 2021년 73억원(14건)에서 지난해 740억원(20건)으로 불어났고, 올해에는 이 마저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서 내부통제가 가장 엄격하다는 은행의 사정이 이렇다.

당연히 대책 마련이 필요하고 의원들은 금융감독 수장에게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수 차례 물었다. 그 때마다 이복현 원장은 빠짐 없이 ‘유동성 과잉’을 언급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서 금융사고가 급증했다는 인식이다.

“오랜 기간 과유동성이 지속된 상태에서 흐트러진 윤리의식이라든가 이익추구 극대화 현상이 표출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동성 증가와 횡령사고 증가 간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주요 원인이라는 인식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정확한 검증은 학자들의 연구가 뒤따라야겠지만 일반적으로 횡령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불법인 줄 알면서도 저지르는 행위로 간주된다. 시중에 풀린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유혹을 이기는 강도가 달라진다는 인식은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직업군을 꼽을 때 은행원과 회계사는 항상 상위권에 든다. 직업 특성상 은행원은 융통성보다는 규정과 원리원칙을 중시한다. 돈과 숫자를 다루는 직업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차변과 대변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은 재무제표는 상상하기 어렵다. 항상 남의 돈을 다루기 때문에 윤리의식 또한 그 어느 직종보다 철저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은행원들은 타 직종 대비 학력과 연봉도 높다.

이런 은행원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횡령을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접근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쪽으로는 ‘나도 남들처럼 갑부가 돼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것이고, 안타까운 쪽으로는 ‘지금 형편상 너무 절박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일 테다. 전자는 ‘한탕주의’, 후자는 ‘생활고’ 정도로 요약하자.

한탕주의의 극단은 ‘로또’다. 합법적이긴 하지만 당첨 확률이 너무 낮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민들은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다. 로또보다는 낫지만 성공 확률이 낮기는 매 한가지다. 최근에는 코인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코인이든 누군가는 성공해서 안락한 삶을 누린다. 매체들은 너도나도 이 소수의 성공 사례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는 일인 것처럼 부풀려 널리 전파한다. 내집 마련도 못했는데 월급으로만 버티는 사람은 뭔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종잣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지금 당장 투자에 뛰어들라고 속삭인다. 이런 속삭임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부지불식간 마음 속에는 조금씩 소외감과 박탈감, 상실감이 쌓인다.

그래도 한탕주의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 생활고 쪽은 훨씬 절박하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다. 지난해 방영돼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겼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골프선수 지망 딸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는 기러기 아빠(차승원 분)가 등장한다. 은행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에도 불구하고 늘 궁핍하다. 미국에 있는 아내와 딸은 빨리 생활비를 보내라고 독촉하고 급전을 못 구한 아빠는 결국 큰 유혹에 빠진다.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5년5개월 동안 국내 17개 은행이 1만7402명의 희망퇴직자에게 지급한 퇴직금은 9조6047억원에 달했다. 1인당 평균 5억5193만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정년퇴직은 ‘특별한’ 케이스로 인식된다. 대부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란 이름으로 자의반, 타의반 회사를 떠난다. 30대가 희망퇴직 대상자에 포함됐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나온다. 100세 시대로 수명은 자꾸 늘어나는데 안정된 직장 구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없는 형편에 노후를 떠올리면 불안감부터 엄습한다.

공금 횡령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 때문이라기보다는 한탕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고용불안으로 노후대책에 답이 없는 직장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분석 아닐까.

21대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산은 약 25억원으로 집계됐다. 검사 출신 이복현 원장은 지난해 성과급으로만 1억3500만원을 받았다. 노후걱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이날 국감장에서 의원들은 더 엄격하고, 더 철저한 금융감독과 내부통제를 주문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의 말대로 시중에 유동성이 줄어들고 내부통제가 더 엄격해지면 과연 횡령 사고가 줄어들까. 분명 아닐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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