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 자영업자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 은행권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의 '횡재세' 거론에 당혹했던 업계가 더욱 놀라고 있다. 국내 4대 은행 간판(사진=연합뉴스) 은행업은 본질이 이자 장사다. 교과서에도 나오듯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돈을 모아 불특정 다수에 돈을 공급해주는 '간접금융'이 바로 은행업이다. 돈을 모아오면서 지급하는 댓가와 공급하면서 받는 댓가의 차이 즉, 예대금리 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이)가 곧 은행 수익의 기본이다. 예대금리 차 바꿔말해 이자 장사가 없으면 은행은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과도한' 예대금리 차로 은행이 '약탈적'일 때다. 자금 공급에 비해 절대적으로 수요가 많은 시기에 은행은 '갑'의 위치에 서서 말도 안되는 무리한 요구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한때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시기가 있었다. 은행 문턱이 천국만큼 높던 시기였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금융 환경이 과연 그런가? 은행이 갑질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오히려 은행보다 기업들이 가진 돈이 많아졌다. 투자를 위해 자금을 조달해야할 때 기업은 은행을 찾지 않는다. 회사채 시장을 활용하거나 외국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구한다. 은행은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며 아양을 떨어야한다. 은행들은 대기업을 상대하기 보다 중소기업, 가계를 상대로 영업을 집중했다. 때마침 아파트 투자가 '불패'로 인식되면서 너도나도 빚 내서 집 사는 게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 돼버렸다. 중소기업 소상공인도 일부는 운영자금으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에 투자했다. 이렇게 가계의 자금 수요가 많아졌다해서 은행이 '약탈적' 수준의 고금리를 부과할 수 있는가? 5대 시중은행이 경쟁하고, 지방은행, 인터넷은행까지 가세해 '경쟁 시장'으로 바뀌었다. 한 은행이 높은 금리로 이자 장사를 하려하면 스마트한 소비자들은 금리 비교를 통해 다른 은행으로 발길을 돌려버린다. 0.1%포인트라도 금리를 더 주는 은행에 예금하고, 더 싼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게 대한민국 은행 시장이다. 그렇다면 '약탈적'이지 않은 은행이 어떻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낼 수 있는가? 무엇보다 자금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계부채 증가세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재테크로 한 몫 잡아보려는 수요는 줄지 않은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물건이 잘 팔리니 이익이 늘어나는 거다. 부실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은행의 이익이 커지는 이유다. 은행의 수익성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부실이다. 대출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면 은행의 손실이 커진다. 2008년 외환위기 당시 봤듯이 거액을 빌려간 대기업들이 빚을 갚지 못하고 줄줄이 쓰러지니 은행도 망했다. 가계부채의 연체율이 최근 시나브로 오르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 시기 지원했던 자금의 만기를 연장해주고, 코로나 지원금 환수를 면제하는 등으로 도와주니 위기가 뒤로 늦춰지고 있을 뿐이다.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고, 대출원리금을 못갚은 가계가 많아지면 고스란히 은행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아쉽다. 대출금을 안갚고 버티면 언젠가는 탕감해주겠지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금융이 '약탈적'이라면 그 부분을 규제하는게 정부의 역할이지 근간을 흔드는 듯한 발언은 선을 넘은 것이다. 은행이 정부 눈치 보느라 위험 신호에도 불구하고 어물쩍 넘어갔다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러면 전가의 보도처럼 국민 세금으로 은행을 살려줘야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오히려 정부가 입장을 분명히 해야한다. 가계대출 억제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은행에 대출금리를 높이도록 지도해야한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은행 문턱을 낮추도록 지도해야한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으면서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데스크 칼럼] ‘종노릇’과 은행 이자 장사

문형민 기자 승인 2023.10.31 17:06 | 최종 수정 2023.10.31 17:19 의견 0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 자영업자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 은행권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의 '횡재세' 거론에 당혹했던 업계가 더욱 놀라고 있다.

국내 4대 은행 간판(사진=연합뉴스)

은행업은 본질이 이자 장사다. 교과서에도 나오듯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돈을 모아 불특정 다수에 돈을 공급해주는 '간접금융'이 바로 은행업이다. 돈을 모아오면서 지급하는 댓가와 공급하면서 받는 댓가의 차이 즉, 예대금리 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이)가 곧 은행 수익의 기본이다. 예대금리 차 바꿔말해 이자 장사가 없으면 은행은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과도한' 예대금리 차로 은행이 '약탈적'일 때다. 자금 공급에 비해 절대적으로 수요가 많은 시기에 은행은 '갑'의 위치에 서서 말도 안되는 무리한 요구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한때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시기가 있었다. 은행 문턱이 천국만큼 높던 시기였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금융 환경이 과연 그런가? 은행이 갑질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오히려 은행보다 기업들이 가진 돈이 많아졌다. 투자를 위해 자금을 조달해야할 때 기업은 은행을 찾지 않는다. 회사채 시장을 활용하거나 외국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구한다. 은행은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며 아양을 떨어야한다.

은행들은 대기업을 상대하기 보다 중소기업, 가계를 상대로 영업을 집중했다. 때마침 아파트 투자가 '불패'로 인식되면서 너도나도 빚 내서 집 사는 게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 돼버렸다. 중소기업 소상공인도 일부는 운영자금으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에 투자했다.

이렇게 가계의 자금 수요가 많아졌다해서 은행이 '약탈적' 수준의 고금리를 부과할 수 있는가? 5대 시중은행이 경쟁하고, 지방은행, 인터넷은행까지 가세해 '경쟁 시장'으로 바뀌었다. 한 은행이 높은 금리로 이자 장사를 하려하면 스마트한 소비자들은 금리 비교를 통해 다른 은행으로 발길을 돌려버린다. 0.1%포인트라도 금리를 더 주는 은행에 예금하고, 더 싼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게 대한민국 은행 시장이다.

그렇다면 '약탈적'이지 않은 은행이 어떻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낼 수 있는가? 무엇보다 자금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계부채 증가세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재테크로 한 몫 잡아보려는 수요는 줄지 않은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물건이 잘 팔리니 이익이 늘어나는 거다.

부실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은행의 이익이 커지는 이유다. 은행의 수익성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부실이다. 대출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면 은행의 손실이 커진다. 2008년 외환위기 당시 봤듯이 거액을 빌려간 대기업들이 빚을 갚지 못하고 줄줄이 쓰러지니 은행도 망했다.

가계부채의 연체율이 최근 시나브로 오르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 시기 지원했던 자금의 만기를 연장해주고, 코로나 지원금 환수를 면제하는 등으로 도와주니 위기가 뒤로 늦춰지고 있을 뿐이다.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고, 대출원리금을 못갚은 가계가 많아지면 고스란히 은행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아쉽다. 대출금을 안갚고 버티면 언젠가는 탕감해주겠지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금융이 '약탈적'이라면 그 부분을 규제하는게 정부의 역할이지 근간을 흔드는 듯한 발언은 선을 넘은 것이다.


은행이 정부 눈치 보느라 위험 신호에도 불구하고 어물쩍 넘어갔다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러면 전가의 보도처럼 국민 세금으로 은행을 살려줘야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오히려 정부가 입장을 분명히 해야한다. 가계대출 억제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은행에 대출금리를 높이도록 지도해야한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은행 문턱을 낮추도록 지도해야한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으면서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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