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슬로우진 제공 음악은 만국의 공통어다. 말 없이도 보편적인 감수성에 호소할 수 있는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의 언어다. 예컨대 알 수 없는 언어의 음악을 듣고도,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실제 가사와 맞닿아 있는 경우가 있다. 가수 슬로우진은 이 말만 믿고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떠나는 과감하지만,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  전주에서 나도 자란 슬로우진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상경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무작정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연고가 없는 서울에 처음 자리를 잡는 누구나가 느끼듯 그에게도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이 무척이나 괴롭게 다가왔다. 그러다 돌연 택한 것이 유럽행이었다.   “안 좋은 일과 좋은 일은 동시에 터진다고 가족과도 같았던 밴드 멤버와 17년 1월에 헤어지게 되고 당시에 만나고 있던 친구와도 헤어져서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은 거 같은 생각만 있었어요. 의욕이 바닥에 치고 있을 때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영국 음악과 그 본토 음악에 대한 환상이 갑자기 떠올랐고 이미 잃을 것도 없는 몸이기에 망설임 없이 저의 첫 해외이자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곳에서 버스킹으로 생활이 될지 안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모한 모험이었죠”  사진=슬로우진 제공 무작정 떠난 유럽 여행은 슬로우진이 앞으로 나아갈 음악 활동에 예상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의 활동명을 갖게 된 것도 이때였다. 기존에 ‘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그는 영국에서 만난 친구들이 본명인 ‘영진’을 줄여 ‘진’이라고 불렀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던 중 처음 마셔본 진(Gin)의 종류인 ‘Sloe Gin’에 꽂혀 지금의 슬로우진이 됐다. 그는 “사실 이름에 큰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분명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의미 있는 이름을 만들어 준거다.  “영국에 가서는 주로 커버 노래로 버스킹을 했지만 가끔가다 제 자작곡 혹은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면 오히려 더 반응이 좋은 경우들이 많았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불가능할 수도 있었고 무모한 도전을 저지른 것이지만 그곳에서 저축도 해서 영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 여행도 마칠 수 있었죠.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게 되고 깊은 이야기를 공감하고 공유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곳의 생활이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그가 영국에서 지낼 당시 뉴스 헤드라인에 뜰 정도로 무서운 일도 있었다. 그가 버스킹을 했던 밀레니엄 브릿지 근처인 런던 브릿지에서 테러가 발생했던 것이다. 자칫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슬로우진은 버스킹을 멈추지 않았다.  “정말 충격이었죠. 그 해에 영국에서만 테러가 4번이나 일어났어요. 무대에 서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도, 차별과 혐오에 대한 겁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근데 무슨 용기였는지 다음날도 나가서 노래를 불렀고, 오히려 더 악착같이 돌아다니다 보니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더라고요. 그로 인해서 알게 된 인연들이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사진=슬로우진 제공 슬로우진은 잊지 못할 영국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가족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온 그는 새 앨범 ‘아무르’(amour)를 발매하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돌입했다. 이번 앨범은 다시 시작하는 그에게 ‘첫 시작’과도 같은 앨범이다.  “그동안 제 삶이 그렇게 녹록치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새로운 시작을, 그동안의 아픔을 사랑(amour)으로 아물게 해 새롭게 나아가자라는 의미를 담은 앨범명이죠. 아, 이 이유는 말할 때마다 오글거리는 것 같아요(웃음)”  그의 목소리는 나른함에서 오는 부드러움을 가진 동시에 곳곳에 거칠고 불안한 분위기의 허스키함도 함께 공존한다. 한 노래, 한 소절 안에서도 부드러움과 거친 음색이 교차하면서 오는 묘한 매력이 슬로우진의 매력 포인트다.  이번 앨범 ‘아무르’에는 동명의 타이틀곡을 비롯해 ‘유로지비’(Yurodivy) ‘탕아’(Libertine) ‘피터팬에게’(To Peter with Love) ‘빗물고백’(Raindrop Proposal) ‘돛단배’(Sailer) ‘데칼코마니’(Décalcomanie) ‘물왕멀로’(Murwangmeol-ro) ‘Untitled’ ‘베개’(The Pillow) 등 총 7곡이 담겼다. 특히 앨범 수록곡들에 각각 혼돈과 숭고함, 반항, 환상, 고백, 황홀, 애증, 상실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선율로 만들면서 그의 목소리는 더욱 빛을 발한다.  “제가 팝송을 좋아하는 이유는 멜로디와 사운드에요.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 잊을 수 없었던 멜로디가 뭔 소린지도 모르겠는데 다시 한 번 듣게 되거나 계속 생각나게 되는 마법같이 작용해서였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좋은 멜로디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리고 사운드인데 요즘은 확실히 자본과 사운드는 비례해진 것 같습니다. 더 멋진 연주를 보여주고 더 좋은 장비로 녹음하고 더 좋은 기계로 만져지면 더 좋은 사운드가 되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멜로디의 힘이라고 생각해서 사운드도 물론 중요하지만 멜로디를 더욱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네요”  사진='아무르' 앨범 재킷 이번 앨범 재킷 사진에는 슬로우진이 리스너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음악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하나의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미지의 공간에서 제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언제나 좋은 음악은 청자로 하여금 다른 세계 혹은 공간으로 데려다준다고 생각해요. 그곳이 어떠한 곳이든 제 음악이 그들을 데려다주는 역할을 잘 수행했으면 합니다”  슬로우진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의 창작 욕구는 ‘여행’에서 비롯된 듯 보인다. 그는 지난 앨범이 이번 ‘아무르’를 내는 발판이 되어준 것처럼, 이번 앨범도 다음 앨범을 위한 좋은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물론 지금의 앨범이 그저 ‘발판’ 수준에 머물 진 않는다. 언제나 지금 내놓는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내놓지만,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슬로우진도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었다. 이런 아쉬움이 앞으로 그를 더욱 발전하게 할 원동력이다.

[인디;파인(人)더] 슬로우진, 무모했던 도전 그리고 ‘아무르’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

박정선 기자 승인 2019.12.06 14:32 | 최종 수정 2019.12.08 11:24 의견 0
사진=슬로우진 제공

음악은 만국의 공통어다. 말 없이도 보편적인 감수성에 호소할 수 있는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의 언어다. 예컨대 알 수 없는 언어의 음악을 듣고도,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실제 가사와 맞닿아 있는 경우가 있다. 가수 슬로우진은 이 말만 믿고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떠나는 과감하지만,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 

전주에서 나도 자란 슬로우진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상경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무작정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연고가 없는 서울에 처음 자리를 잡는 누구나가 느끼듯 그에게도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이 무척이나 괴롭게 다가왔다. 그러다 돌연 택한 것이 유럽행이었다. 

 “안 좋은 일과 좋은 일은 동시에 터진다고 가족과도 같았던 밴드 멤버와 17년 1월에 헤어지게 되고 당시에 만나고 있던 친구와도 헤어져서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은 거 같은 생각만 있었어요. 의욕이 바닥에 치고 있을 때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영국 음악과 그 본토 음악에 대한 환상이 갑자기 떠올랐고 이미 잃을 것도 없는 몸이기에 망설임 없이 저의 첫 해외이자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곳에서 버스킹으로 생활이 될지 안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모한 모험이었죠” 

사진=슬로우진 제공

무작정 떠난 유럽 여행은 슬로우진이 앞으로 나아갈 음악 활동에 예상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의 활동명을 갖게 된 것도 이때였다. 기존에 ‘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그는 영국에서 만난 친구들이 본명인 ‘영진’을 줄여 ‘진’이라고 불렀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던 중 처음 마셔본 진(Gin)의 종류인 ‘Sloe Gin’에 꽂혀 지금의 슬로우진이 됐다. 그는 “사실 이름에 큰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분명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의미 있는 이름을 만들어 준거다. 

“영국에 가서는 주로 커버 노래로 버스킹을 했지만 가끔가다 제 자작곡 혹은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면 오히려 더 반응이 좋은 경우들이 많았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불가능할 수도 있었고 무모한 도전을 저지른 것이지만 그곳에서 저축도 해서 영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 여행도 마칠 수 있었죠.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게 되고 깊은 이야기를 공감하고 공유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곳의 생활이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그가 영국에서 지낼 당시 뉴스 헤드라인에 뜰 정도로 무서운 일도 있었다. 그가 버스킹을 했던 밀레니엄 브릿지 근처인 런던 브릿지에서 테러가 발생했던 것이다. 자칫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슬로우진은 버스킹을 멈추지 않았다. 

“정말 충격이었죠. 그 해에 영국에서만 테러가 4번이나 일어났어요. 무대에 서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도, 차별과 혐오에 대한 겁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근데 무슨 용기였는지 다음날도 나가서 노래를 불렀고, 오히려 더 악착같이 돌아다니다 보니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더라고요. 그로 인해서 알게 된 인연들이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사진=슬로우진 제공

슬로우진은 잊지 못할 영국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가족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온 그는 새 앨범 ‘아무르’(amour)를 발매하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돌입했다. 이번 앨범은 다시 시작하는 그에게 ‘첫 시작’과도 같은 앨범이다. 

“그동안 제 삶이 그렇게 녹록치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새로운 시작을, 그동안의 아픔을 사랑(amour)으로 아물게 해 새롭게 나아가자라는 의미를 담은 앨범명이죠. 아, 이 이유는 말할 때마다 오글거리는 것 같아요(웃음)” 

그의 목소리는 나른함에서 오는 부드러움을 가진 동시에 곳곳에 거칠고 불안한 분위기의 허스키함도 함께 공존한다. 한 노래, 한 소절 안에서도 부드러움과 거친 음색이 교차하면서 오는 묘한 매력이 슬로우진의 매력 포인트다. 

이번 앨범 ‘아무르’에는 동명의 타이틀곡을 비롯해 ‘유로지비’(Yurodivy) ‘탕아’(Libertine) ‘피터팬에게’(To Peter with Love) ‘빗물고백’(Raindrop Proposal) ‘돛단배’(Sailer) ‘데칼코마니’(Décalcomanie) ‘물왕멀로’(Murwangmeol-ro) ‘Untitled’ ‘베개’(The Pillow) 등 총 7곡이 담겼다. 특히 앨범 수록곡들에 각각 혼돈과 숭고함, 반항, 환상, 고백, 황홀, 애증, 상실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선율로 만들면서 그의 목소리는 더욱 빛을 발한다. 

“제가 팝송을 좋아하는 이유는 멜로디와 사운드에요.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 잊을 수 없었던 멜로디가 뭔 소린지도 모르겠는데 다시 한 번 듣게 되거나 계속 생각나게 되는 마법같이 작용해서였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좋은 멜로디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리고 사운드인데 요즘은 확실히 자본과 사운드는 비례해진 것 같습니다. 더 멋진 연주를 보여주고 더 좋은 장비로 녹음하고 더 좋은 기계로 만져지면 더 좋은 사운드가 되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멜로디의 힘이라고 생각해서 사운드도 물론 중요하지만 멜로디를 더욱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네요” 

사진='아무르' 앨범 재킷

이번 앨범 재킷 사진에는 슬로우진이 리스너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음악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하나의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미지의 공간에서 제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언제나 좋은 음악은 청자로 하여금 다른 세계 혹은 공간으로 데려다준다고 생각해요. 그곳이 어떠한 곳이든 제 음악이 그들을 데려다주는 역할을 잘 수행했으면 합니다” 

슬로우진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의 창작 욕구는 ‘여행’에서 비롯된 듯 보인다. 그는 지난 앨범이 이번 ‘아무르’를 내는 발판이 되어준 것처럼, 이번 앨범도 다음 앨범을 위한 좋은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물론 지금의 앨범이 그저 ‘발판’ 수준에 머물 진 않는다. 언제나 지금 내놓는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내놓지만,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슬로우진도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었다. 이런 아쉬움이 앞으로 그를 더욱 발전하게 할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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