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청구 절차로 인해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은 국민 4000만명 이상이 가입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손보험으로 진료비를 보장받기 위해선 까다로운 보험금 청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진료 후 의료기관에서 증빙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한다. 보험사는 이 증빙서류를 수작업으로 전산시스템에 입력한다. 이렇게 청구가 완료되면 심사를 거쳐 지급 여부와 보험금이 결정된다.
병원이 바로 보험사에 관련서류를 넘기거나 소비자가 곧바로 전산시스템에 입력하면 이 절차는 좀더 간편해질 수 있다. 현실은 어느 보험사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진료비를 보장받기 위해 가입한 대다수의 소비자는 까다로운 보험금 청구 절차 때문에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고 있다.
28일 녹색소비자연대 등 3개 시민단체가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2명 중 1명이 보험금 청구를 포기했다. 포기한 이유 중 첫번째가 종이문서 기반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청구 절차였다.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 시 전산 청구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78.6%에 달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간소화가 12년째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제자리걸음 중이다. 결국 국회가 나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담긴 보험업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실손보험 간소화는 또다시 보험업계와 의료계의 대립으로 인해 아쉬운 결말로 향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전산화를 주장하지만 의료계는 의료기관이 실손보험의 계약당사자(환자와 보험사)가 아니기 때문에 서류 전송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또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도 이유로 들었다.
의료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미 보험금 청구를 대행하는 핀테크 기업이 등장했고 실제로 많은 소비자가 사용하고 있다. 비슷한 시스템이 이미 나와 있는 이상 손쉽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종이로 접수하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입력하는 것이 아닌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처리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소비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의료계에서 말한 개인정보 유출도 문제를 막기 위한 장치가 법안에 이미 담겨있다.
의료계와 보험업계, 국회와 정부는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인 보험금 청구권이 제한되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더이상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 전산화·간소화가 되지 않는다면 실손보험은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보험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