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출처=셀트리온그룹)
"셀트리온'에 붙던 물음표는 느낌표가 되었다. 확신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의구심과 회의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셀트리온그룹이 지난 2017년 창립 15주년을 맞아 발간한 사사에 담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말이다. '물음표'에서 시작된 그룹의 '첫 작품'이자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성분명 인플릭시맙)'는 지난해 단일 품목 '매출 1조원' 신기록 달성이란 기적을 일으켰다. 글로벌시장을 무대로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선 지 10여년. 현재도 초고속으로 성장중인 램시마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17일 셀트리온그룹에 따르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는 지난해 연매출 1조2680억원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1호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에 등극했다. 이는 셀트리온 전체 매출의 35.6%에 달하는 수치다. 더욱이 램시마가 써낸 단일 브랜드 '매출 1조원'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첫 사례다.
램시마의 이 같은 성과는 10여년 전부터 신대륙에서 열린 기회와 맞닿아 있다. 지난 2013년 유럽 출시를 시작으로 2016년 미국 출시까지 이루면서, 지난 10년여간 글로벌시장에서 기념비적인 성과를 달성해왔기 때문이다. 램시마의 글로벌 첫 무대는 유럽이었다. 2013년 9월 유럽에 출시된 후 약 4년의 시간이 흐른 2017년 말 의약품 시장조사기관인 아이큐비아(IQVIA) 기준 52% 점유율을 기록하며 항체 바이오시밀러로서 처음으로 오리지널 제품의 점유율을 넘어서는 업적을 달성했다.
2017년에는 글로벌 전역에서 1조2000억원(IQVIA) 이상의 처방을 기록하며 '전세계 처방액 기준 연간 1조원을 돌파한 첫 국산 의약품'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2022년에는 '규제기관 품목 허가국 100개를 넘긴 최초의 국산 의약품'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까지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주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자리매김했다.
◆유럽시장 삼키고 세계 최대 시장 미국까지 점령
하지만 램시마의 탄생 '물음표' 그 자체에서 시작됐다. 한국 제약산업 역사가 90여년이나 됐음에도 제너릭(합성의약품 복제약)가 주를 이뤄 '바이오시밀러'란 단어조차 생소했기 때문이다. 2002년 설립 초기부터 수익성 높은 계약생산으로 매출을 올렸던 셀트리온은 2009년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CMO사업을 아예 중단하고 항체 바이오시밀러 개발로 사업을 전환한 것이다. '남의 것을 대신 생산하는 비즈니스'의 한계를 알고 있던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007년부터 램시마 개발에 돌입했었고, 3년간 개발에 온힘을 쏟아부었다.
램시마 개발이 완료된 것은 2009년 12월. 이듬해부터 19개 국가에서 956명을 대상으로 2년간 글로벌 임상에 돌입했고, 2012년 마침내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1세대 고가 항체의약품과 비교해 효능은 등등하면서도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램시마의 등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빛을 봤다. 정부와 환자에게 혜택을 줄 것이란 기대에 힘입어 특히 유럽에서 램시마 진출을 환영하며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실제 램시마는 유럽 판매가 시작된지 단 9개월만에 한국 제약산업 역사상 최초의 '3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고, 2016년 2분기 기준 유럽 자가면역질환 처방 환자수 10만5000명을 넘어서며 유럽 오리지널 의약품 시장 점유율 40%를 돌파하는 진기록을 세운다. 유럽시장을 집어삼키던 램시마는 세계 최대 바이오시장인 미국의 높은 허들마저 넘는다. 미국은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 절반을 차지하는 지역으로, 램시마는 그 시장에 진출한 최초의 항체 바이오 시밀러였다. 2016년 4월 미국 판매 허가를 받고 11월부터 북미권 파트너사인 화이자와 협력해 판매를 개시한 램시마는 본격적으로 '고속 성장 로켓'에 올라탄다.
◆새로운 영역 개척한 '퍼스트무버'…韓 제약바이오산업, 새 지평 열다
오늘날 램시마는 '바이오시밀러'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퍼스트무버(First Mover) 의약품으로써 한국 제약바이오시장의 발전을 이끈 선구자로 평가되지만, 출시가 본격화되던 산업 초기만해도 시장반응은 냉담했다.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시장의 인식 부족으로 처방 확대에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의 첫 등장에 대한 (보수성이 짙은) 제약시장의 시선은 반신반의하거나 냉소적이었다"면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2017년까지 지속됐지만, 국내외를 넘나들며 성과를 올리고 매출까지 성장하자 2018년부터 바뀌었고 시장 재평가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램시마는 바이오시밀러가 큰 축으로 자리 잡은 글로벌 항체의약품 시장에서 중대한 시발점을 마련한다. 실제 램시마 등장 이후 유수의 글로벌 빅파마에서 특허 만료를 앞둔 오리지널 의약품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나섰다. 또 뛰어난 치료 효능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바이오시밀러 출현을 가속화하며 세계 전역에서 환자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비용을 이유로 '합성의약품 복제약'에 머물던 국내 토종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방아쇠도 당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램시마가 대한민국 첫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에 등극하며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역사에 새로운 족적을 남겼다”며 “램시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램시마SC를 비롯한 후속 바이오시밀러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더 나아가 ADC, 다중항체 등 신약 개발도 성공적으로 추진해 제2, 제3의 램시마 탄생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