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사진=KB금융)
KB금융그룹 양종희 회장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태풍을 대비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먹구름은 이른바 ‘금융의 대전환’ 흐름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 차례 지적한 ‘손쉬운 이자 장사’ 비판에서 KB금융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부동산담보대출 규모가 국내 5대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200조원을 넘습니다. 올해 6월말 기준 원화대출에서 부동산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57.2%로, 신한은행(56.3%), 하나은행(60.9%), 우리은행(55.1%), 농협은행(54.6%) 등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자산 규모가 1등이다 보니 절대적 금액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주택청약통장을 독점한 한국주택은행이 그룹 뿌리의 한 축이다보니 태생적으로 부동산담보대출에 특화된 영향도 있습니다.
뿌리와 배경이야 어찌 됐든 매 분기 조 단위 수익을 거두는 핵심 경쟁력이 부동산담보대출에서 기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생산적 분야로 돌릴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는데, 부동산대출에 강점이 있는 KB금융으로선 그룹의 체질을 바꿔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과징금 이슈입니다. 금융감독원은 홍콩 ELS(주가연계증권)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지난달 판매 은행 5곳에 약 2조원의 과징금을 사전 통보했습니다. 이 가운데 KB국민은행 몫만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태 발생 당시 금융당국 주문에 따라 은행들이 자율배상에 적극 나섰던 만큼 내년 상반기 최종 과징금 규모는 통보된 금액에서 상당히 감경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렇더라도 수 천억원대 규모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LTV(담보인정비율) 담합 관련 과징금도 대기 중입니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금융기관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어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사실 홍콩 ELS 판매 책임을 양종희 회장에 묻기는 어렵습니다. 해당 상품은 2020년 하반기부터 2023년까지 집중적으로 판매됐는데 당시는 윤종규 전 회장이 최고책임자였습니다. KB국민은행으로 책임을 좁혀도 허인·이재근 전 행장이 당사자입니다. 양종희 회장은 당시만 해도 그룹에서 변방 취급을 받던 보험 부문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2023년 11월에 은행장 경력 없이 그룹 회장에 올랐으니 홍콩 ELS와는 연관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금융당국이 이런 저런 사정 다 살펴주는 살가운 곳이 아니니 기관장 눈치를 살펴 일벌백계의 본보기를 삼겠다고 덤빈다면 현임 CEO가 책임을 지는 도리밖엔 없습니다.
세 번째는 금감원의 ‘지배구조 개선 TF’입니다. 이찬진 원장은 “CEO 경영승계의 요건과 절차는 보다 명확하고, 투명해야 하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외이사의 추천경로 다양화와 임기 차등화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특히 추천경로 다양화와 관련해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 즉 국민연금의 은행지주 경영 참여를 시사해 이사회 구성의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IT 보안 및 금융소비자 분야의 대표성 있는 사외이사 1인 이상도 포함해야 합니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내년에 CEO 경영승계가 예정된 곳은 KB금융이 유일합니다. 양종희 회장의 임기가 11월 20일까지여서 늦어도 8월부터는 관련 절차가 진행돼야 합니다. 현재 7인의 사외이사 중 5인의 임기가 내년 3월에 끝나는데 정관상 최대 임기(5년)를 채운 이는 없어 부분 연임이 가능합니다. KB금융은 이 5명의 임기를 활용해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추천경로 다양화, 임기 차등화, IT 보안 전문가, 금융소비자 전문가 등 4가지 퍼즐 조합을 완성해야 합니다. 다만 퍼즐을 맞추기도 쉽지 않고, 어렵게 맞췄다고 해서 현 회장의 연임에 우호적일 것이란 보장 역시 없습니다.
KB금융 이사회 선임 정보(자료=KB금융 홈페이지)
멀리 보이긴 하나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는 가운데 양종희 회장이 하나하나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우선 현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과 관련, 조직개편 및 경영진 인사를 통해 적극 대응했습니다. CIB마켓부문을 신설하고 올드 보이 김성현 전 KB증권 대표를 부문장으로 앉혔습니다. 부회장 직위인 부문장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 ‘생산적 금융’의 콘트롤 타워로 삼은 것입니다. CIB는 일반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을 융합한 개념인데, 여기에 마켓(자본시장)까지 엮어 대출-투자-운용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겠다는 복안입니다.
이찬진 원장이 강조하는 ‘소비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그룹 정보보호부를 기존 IT 부문에서 준법감시인 산하로 이동시키고 본부장급 전문가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응책을 마련했습니다. 정보보호 조직의 위상을 높이고, 정보보호를 단순한 IT 기술 이슈가 아닌 그룹 차원의 컴플라이언스 과제로 다룬다는 방침입니다. 특히 핵심 자회사인 KB국민은행의 경우 소비자보호그룹 산하에 ‘금융사기예방 유닛(Unit)’을 신설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선제적·체계적으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발표된 조직개편 및 경영진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지주와 은행 모두 ‘소비자 보호’를 ‘생산적 금융’보다 더 앞세우고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홍콩 ELS 사태와 같은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읽힙니다.
이제 내년 2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신임 이사, 중임 이사 퍼즐만 잘 맞추면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큰 피해는 입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일이 꼬여서 금융당국의 과징금 감경이 기대만큼 진행되지 않고, 이것이 RWA(위험가중자산)와 실적에 영향을 끼쳐 밸류업 정책과 주가에 타격을 가한다면 가능성은 낮지만 먹구름이 태풍급으로 발전할 여지도 있습니다. 소비자 보호와 관련해 새로운 빅 트러블 이슈가 발생하거나 지배구조 변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잡음이 발생해도 하반기 연임 전선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겠지요.
진인사 대천명이라 했던가요.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데 이어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도 사실상 연임에 성공한 상황에서 양종희 회장은 과연 드리워진 난관을 뚫고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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