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고려아연 CI·영풍 CI

■ 예고된 주총 파행···길어진 경영권 분쟁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는 위임장 경쟁과 법적 공방으로 또 한 번 파행이 예상된다. 이는 단순한 기업 내부의 경영권 다툼을 넘어, 한국 비철금속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과 국가 전략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갈등의 중심에는 영풍그룹과 고려아연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경영진의 대립이 있으며, MBK파트너스의 개입으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 분쟁이 지속될 경우, 영풍그룹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28일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가 위임장 경쟁, 의결권 행사 가처분 등의 이유로 지난 임시 주총과 마찬가지로 파행이 예상된다. 주총 결과가 나온다하더라도 법원의 판단이 남아있어 경영권 분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분쟁이 길어지면서 고려아연과 영풍 모두 재무적 타격을 입고 있다. 기업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신뢰도 낮아지고 있다. 또한, 내부 갈등에 집중하느라 정작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 수립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비철금속 기업이 내부 싸움으로 인해 도태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 재무적 타격 동시에 국가 핵심 기술 지정 난항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연결 기준 영풍의 2024년 실적은 매출 2조7857억원, 영업적자 1622억원, 당기순손실 263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해 매출은 약 26% 줄고, 당기순손실 규모는 3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12조828억원의 매출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지만 당기순이익은 2155억원으로 전년 대비 59.6% 감소하며 반 토막 났다. 신용 등급 전망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떨어졌다. 고려아연이 15년 만에 회사채 발행에 나선 것도 분쟁 과정에서 늘어난 부채 탓이다. 그동안 고수해 온 무차입 경영도 사실상 멈췄다.

지난 1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사진=공동취재단)

고려아연은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방위 산업과 반도체 및 재생 에너지 분야에필수적인 핵심 광물을 생산한다. 최근 중국의 수출 통제 강화와 글로벌 무역 전쟁 속에서,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중국 자본에 넘어갈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고려아연의 ‘안티모니’ 제조기술에 대한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영풍과 MBK 측은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국가핵심기술 지정 여부는 난항을 겪고 있다.

■ 내부 갈등 속 변화 대응 어려워···영풍그룹의 운명은?

현재 전 세계는 친환경 기술과 배터리 소재 산업의 급격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해외 기업들은 M&A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아연은 내부 갈등에 집중하면서 이러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회사는 신사업 진출과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글로벌 경쟁자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본시장은 안정성을 기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며, 지속적인 내부 분쟁을 겪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고려아연 역시 최근 몇 년간 주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의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그룹 내 핵심 자산인 고려아연 마저 내부 혼란에 흔들리면서 영풍그룹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현실이 됐다. 빠른 내부 갈등의 봉합과 미래 경쟁 전략의 수립이 없다면 10년 후에는 ‘영풍그룹’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