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영풍 석포제련소 (사진=영풍)

2# 2015년 3월의 어느 날, 당신은 사무실 창가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은 차갑다. 경제 뉴스에서는 그동안 흐지부지했던 금 가격과 원자재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가 지루할 만큼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두 회사 모두 아연과 연(납) 생산판매를 주로 하는 그룹 내 계열사다. 그들이 해온 일은 비슷하지만 미래 전략은 확연히 다르다. 도전이냐 안정이냐, 당신은 고민에 빠졌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모든 것은 흔들리고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이 더 끌리는가?

안정에 끌렸다면 당신의 선택은 영풍이다.

2015년, 영풍에는 사장이 없었다. 제64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의장을 맡은 부사장은 “4년 연속 매출액 1조원을 달성했지만 경영 성과가 전년대비 부진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비용절감과 수익성 제고를 통한 경영 상황 호전을 목표로 정했다.

불확실한 시장에서 공격적인 투자는 위험하다고 판단한 영풍은 기존 경영 방식을 지키려고 했다. 장형진 회장 등 창업 2세대(부모 세대)의 주식 가치가 증가해 오히려 자녀 세대 승계율이 낮아졌다. 그렇다고 안정을 택한 영풍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1주당 100만원에 가까운 황제주로써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영풍이 경북 봉화군에서 운영하는 석포제련소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납을 제련할 수 없다. 납 제련을 하지 않는다는 점은 수익성의 후퇴를 가져왔다. 금과 은 같은 고부가가치 부산물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최근 금과 은의 가격 상승과 환율 효과로 인해 비철금속 업계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금이 7% 이상, 은이 2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영풍의 2024년 2분기 매출은 7520억원으로 전년 대비 20.4%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8338만원에 그쳤다. 영풍이 지키려 했던 안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약점으로 변했다.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이 제한되었고, 신사업 진출이 더뎠다. ESG 경영에서도 적극적인 대응이 부족해 환경 문제와 근로자 안전사고가 잇따랐다.

지난해 8월까지 8개월간 총 세 차례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로 영풍의 석포제련소 가동률은 50% 후반대로 떨어졌다(고려아연은 100%). 이는 생산량과 판매량 감소로도 이어져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주가는 10년새 6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2015년 7월 최고 156만원까지 올랐던 주식은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지난해 8월 20만원대로 떨어졌다.

양 사 직원들은 급여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영풍의 총 근로자는 667명(기간제 근로자 6명 포함)으로 1인 평균 급여액은 4748만원으로 나타났다. 고려아연의 총 직원 수는 1417명(기간제 근로자 57명 포함)으로 1인 평균 급여액은 8269만원으로 영풍이 3521만원 낮다.

두 회사는 같은 산업에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사례는 기업의 선택이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다시 묻겠다.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모든 것은 흔들리고 있다. 당신은 도전과 안정 중 어느 쪽이 더 끌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