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 2015년 3월의 어느 날, 당신은 사무실 창가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은 차갑다. 경제 뉴스에서는 그동안 흐지부지했던 금 가격과 원자재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가 지루할 만큼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두 회사 모두 아연과 연(납) 생산판매를 주로 하는 그룹 내 계열사다. 그들이 해온 일은 비슷하지만 미래 전략은 확연히 다르다. 도전이냐 안정이냐, 당신은 고민에 빠졌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모든 것은 흔들리고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이 더 끌리는가?
도전에 끌렸다면 당신은 고려아연을 선택했다.
2015년, 이제중 고려아연 사장은 제4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제2비철단지 신설 등 계획을 밝히며 '제2 창업의 해'를 선언했다. 오너 3세인 최윤범 회장(당시 부사장)은 주식 자산을 늘리며 경영에 본격 참여하고 있었다. 호주 법인에서 온 최 회장은 신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고려아연의 실적은 좋지 않았다. 2015년 매출은 4조7714억원으로 전년 대비 1647억원 감소했다. 호주 퀸즐랜드주 타운스빌에 위치한 호주 제련공장은 2013년까지 당기순손실 70억원을 냈다. 그러나 회사는 과감한 투자를 선택했다. 일부에서는 생산량 과잉으로 인한 손해를 우려하기도 했다.
고려아연이 구축한 제2비철단지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증설이었다. 울주군 온산읍 원산리에 조성된 이 단지는 총 1만6370㎡ 규모로, 3899억8540만원(자기자본 대비 9.78%)이 투입됐다. 이를 통해 고려아연의 연간 연 생산량은 30만 톤에서 43만 톤으로 40% 증가했다. 그 결과, 고려아연은 중국 위광제련소를 제치고 세계 최대 연 제련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강점은 단순한 생산량 확대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정광에서 아연과 연뿐만 아니라 금, 은, 인듐 등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10여 종의 금속을 생산하고, 세계 최초로 '연-아연-동 통합 공정'을 구축해 생산성과 원가 절감을 동시에 실현했다.
도전의 결과는 압도적인 실적으로 나타났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기 전인 2024년 2분기 고려아연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3조581억원, 268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23.8%, 영업이익은 72.6% 증가했다. 2000년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100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나타냈다.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12조828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고려아연의 신사업은 지금도 꾸준히 추진중이다. 앞으로 태양광 발전소,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짓고, 2차전지용 전해동박사업에 진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차전지와 신재생에너지 등 중장기 신사업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호주에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확대중이다. 호주 제련소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2030년까지 80%, 2040년까지 100%로 높여 ‘그린 아연’을 생산하는 세계 최초의 제련소 중 하나로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