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이미지 더블클릭) "한 장의 영수증에는 한 인간의 소우주가 담겨있다." 백영옥은 소설 '아주 보통의 연애'에서 영수증 안에 우리가 토해낸 일상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이를 범박하게 해석하자면 예컨대 무심코 주머니 속에서 나온 영수증에 술집이 찍혀있다면 무엇을 얼만큼 먹었는지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식이다. 몇 개의 숫자와 몇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영수증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축약하고 압축할 수 있다. 과정이나 그런 골치 아픈 건 생략하고 숫자의 나열만으로 일을 평가하는 기이한 미니멀리즘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할까. 대형 건설사들이 올해 많이 내세우는 홍보 중 하나는 '창사 이래 최초 도시정비수주 신기록'이다. 숱한 건설사들이 올해 창사 이래 최고 도시정비수주액을 기록했다고 자랑하고 나섰다. 많은 정비사업지를 수주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사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건설사의 경쟁력이 얼마나 많은 사업지에서 얼마나 큰 액수의 일감을 따냈다는 영수증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썩 괜찮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영수증이 있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건설사들이 받아든 올해 건설 사고 사망자 수치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국내 100대 대형 건설사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46명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발생한 42명의 사망자 수를 이미 넘어섰다. 건설사가 조 단위 사업을 수주하고 있을 때 노동자의 목숨 값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 아닌지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사업 많이하고 잘 지으면 어쨌든 기술력은 인정받고 잘 하고 있는 것이냐고 반문한다면 그것도 좀 아니올시다다. 사회적 논란이 된 라돈과 석면 문제를 차치하고 아파트 하자 건수만 보더라도 잘 짓는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수치들이 있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장경태 의원(더불어민주당, 동대문구을)이 공개한 '2010~2021년 하자접수 상위 10개 건설사의 유형별 누적건수'에 따르면 균열·결로 등 총 25개의 하자 유형에서 접수된 누적 신고 건수는 4만7885건에 달했다. 이를 연 평균으로 환산하면 3990건에 이른다. 여기에는 대우건설과 포스코건설·GS건설·HDC현대산업개발·호반건설·롯데건설·DL건설 등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이 포함됐다. 대형건설사는 정비사업지가 많으므로 사건과 사고도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무리하게 사업지를 늘린 건설사의 책임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양보다 질'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늘어나는 사업지만큼 질적인 측면에 영수증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따지고보면 홍보성 가득한 영수증 들이밀기가 건설사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일부 기자들에게도 그런 영수증 들고다니기를 강요하는 시대다. 씁쓸하다.

[정지수의 랜드마크] 기이한 영수증 세계…그래도 ‘양보다 질’

정지수 기자 승인 2021.11.08 11:19 의견 0
편집(이미지 더블클릭)


"한 장의 영수증에는 한 인간의 소우주가 담겨있다."

백영옥은 소설 '아주 보통의 연애'에서 영수증 안에 우리가 토해낸 일상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이를 범박하게 해석하자면 예컨대 무심코 주머니 속에서 나온 영수증에 술집이 찍혀있다면 무엇을 얼만큼 먹었는지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식이다. 몇 개의 숫자와 몇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영수증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축약하고 압축할 수 있다. 과정이나 그런 골치 아픈 건 생략하고 숫자의 나열만으로 일을 평가하는 기이한 미니멀리즘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할까.

대형 건설사들이 올해 많이 내세우는 홍보 중 하나는 '창사 이래 최초 도시정비수주 신기록'이다. 숱한 건설사들이 올해 창사 이래 최고 도시정비수주액을 기록했다고 자랑하고 나섰다.

많은 정비사업지를 수주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사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건설사의 경쟁력이 얼마나 많은 사업지에서 얼마나 큰 액수의 일감을 따냈다는 영수증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썩 괜찮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영수증이 있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건설사들이 받아든 올해 건설 사고 사망자 수치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국내 100대 대형 건설사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46명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발생한 42명의 사망자 수를 이미 넘어섰다.

건설사가 조 단위 사업을 수주하고 있을 때 노동자의 목숨 값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 아닌지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사업 많이하고 잘 지으면 어쨌든 기술력은 인정받고 잘 하고 있는 것이냐고 반문한다면 그것도 좀 아니올시다다.

사회적 논란이 된 라돈과 석면 문제를 차치하고 아파트 하자 건수만 보더라도 잘 짓는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수치들이 있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장경태 의원(더불어민주당, 동대문구을)이 공개한 '2010~2021년 하자접수 상위 10개 건설사의 유형별 누적건수'에 따르면 균열·결로 등 총 25개의 하자 유형에서 접수된 누적 신고 건수는 4만7885건에 달했다.

이를 연 평균으로 환산하면 3990건에 이른다. 여기에는 대우건설과 포스코건설·GS건설·HDC현대산업개발·호반건설·롯데건설·DL건설 등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이 포함됐다.

대형건설사는 정비사업지가 많으므로 사건과 사고도 많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무리하게 사업지를 늘린 건설사의 책임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양보다 질'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늘어나는 사업지만큼 질적인 측면에 영수증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따지고보면 홍보성 가득한 영수증 들이밀기가 건설사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일부 기자들에게도 그런 영수증 들고다니기를 강요하는 시대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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