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선배와 여행을 했다. 선배의 차를 번갈아 가면서 운전하며,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보자며 시작했다. 계획은 딱히 없었다. 지도를 펴고 둘이 그나마 이야기를 나눈 것은 속초로 가서 7번 국도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와 경상권을 본 후에, 남해 쪽으로 빠져 전라권을 구경한 후 시작점인 수원으로 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기권을 벗어난 후 행보는 좌충우돌이었다. 미리 말한 방향으로 잘 가다가 선배가 “저기 한번 가보자”라면 핸들을 꺾었다. 풍경도 좋았고, 맛난 식당도 있었지만 당시 그런 움직임이면 몇 달이 걸려도 계획(?)대로 여행하지 못할 거 같았다. 그래도 그 이후 행보는 똑같았다. 갑자기 “저기 가볼까”라고 말하면 표지판만 보고 달렸다. 그러다보니 개장 1년 밖에 안 된 정선 카지노도 우연찮게 들려, 분위기를 맛보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여행 다녔다. 간혹 생각나는 이 여행이 즐거웠던 이유가 ‘의외성’과 ‘아날로그’ 감성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당시, 자동차 여행에서 믿을 것은 종이로 된 지도와 도로 표지판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이 말해주는 정보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칫 오래된 지도를 가지고 가다가, 새로운 도로를 만나면 ‘멘붕’에 빠지곤 했다. 동행이 있으면 옆좌석에서 지보를 보며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기도 했지만, 홀로 갈 경우에는 도로변에 차 세워놓고 확인하면서 가야했다. 그래서 1시간 거리가 2시간 걸려서 가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의외성’이 주는 즐거움이 발생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가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의외성은 ‘깜짝 풍경’ ‘깜짝 맛집’ ‘깜짝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간혹 ‘깜짝 호의’로 무료 숙박을 했다. 한 어르신이 길을 잘못 알려줘서, 어둑해진 길을 되돌아가는데, 길에서 기다렸다가 “미안하다”며 재워준 호의도 받았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지도 어플은 막히는 길까지 알려주고, 도착 시간 및 인근 맛집, 숙소까지 알려준다. 새로 도로가 뚫리면 바로바로 업데이트해서 운전자가 당황하지 않게 한다. 과속 카메라와 과속 방지턱은 물론 사고로 인한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친절하게 말해준다. 처음 가는 길이라도 목적지를 찾는데 어렵지 않다. 이는 자동차뿐 아니라, 도보 여행이나 자전거 여행 때도 똑같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다. 국내외 다양한 내비게이션, 지도 어플은 어마어마한 편리함을 안긴다.  그러나 ‘의외성’이 사라졌다. 잘못 들어간 한적한 읍내에서 발견한 맛집, 지도를 보지 않고 걷다보니 나오는 조그마한 상점, 그리고 사람들. 내비게이션 어플이나 지도 어플이 ‘목적성’을 가진 이동에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여행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새로움’을 보러 가면서, 동시에 ‘새로운 뭔가’ 나오면 당황한다. 그러다보니 그 ‘새로운 것’은 사실 내가 인터넷에서, 방송에서 많이 봐왔던 ‘익숙한’ 것들이다. 그 ‘익숙한 것’들을 봤다는 인증을 하러 가고 있던 셈이다. 근래에 내비게이션을 켜놓지 않고 오랜만에 여행을 했다. 잘못 들어선 길에 한두 번 돌아왔지만, 그러면서 또 새로운 곳을 몇 곳 찾아냈다. SNS에 올리지도 않았다. ‘의외성’이 준 공간은 또다른 이에게도 ‘의외의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번 유턴을 하면서.

[여행 한담] 내비게이션 없이 길 떠나기

유명준 기자 승인 2019.11.26 09:00 | 최종 수정 2019.12.13 10:26 의견 0
 


2001년 선배와 여행을 했다. 선배의 차를 번갈아 가면서 운전하며,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보자며 시작했다. 계획은 딱히 없었다. 지도를 펴고 둘이 그나마 이야기를 나눈 것은 속초로 가서 7번 국도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와 경상권을 본 후에, 남해 쪽으로 빠져 전라권을 구경한 후 시작점인 수원으로 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기권을 벗어난 후 행보는 좌충우돌이었다. 미리 말한 방향으로 잘 가다가 선배가 “저기 한번 가보자”라면 핸들을 꺾었다. 풍경도 좋았고, 맛난 식당도 있었지만 당시 그런 움직임이면 몇 달이 걸려도 계획(?)대로 여행하지 못할 거 같았다. 그래도 그 이후 행보는 똑같았다. 갑자기 “저기 가볼까”라고 말하면 표지판만 보고 달렸다. 그러다보니 개장 1년 밖에 안 된 정선 카지노도 우연찮게 들려, 분위기를 맛보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여행 다녔다.

간혹 생각나는 이 여행이 즐거웠던 이유가 ‘의외성’과 ‘아날로그’ 감성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당시, 자동차 여행에서 믿을 것은 종이로 된 지도와 도로 표지판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이 말해주는 정보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칫 오래된 지도를 가지고 가다가, 새로운 도로를 만나면 ‘멘붕’에 빠지곤 했다. 동행이 있으면 옆좌석에서 지보를 보며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기도 했지만, 홀로 갈 경우에는 도로변에 차 세워놓고 확인하면서 가야했다. 그래서 1시간 거리가 2시간 걸려서 가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의외성’이 주는 즐거움이 발생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가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의외성은 ‘깜짝 풍경’ ‘깜짝 맛집’ ‘깜짝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간혹 ‘깜짝 호의’로 무료 숙박을 했다. 한 어르신이 길을 잘못 알려줘서, 어둑해진 길을 되돌아가는데, 길에서 기다렸다가 “미안하다”며 재워준 호의도 받았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지도 어플은 막히는 길까지 알려주고, 도착 시간 및 인근 맛집, 숙소까지 알려준다. 새로 도로가 뚫리면 바로바로 업데이트해서 운전자가 당황하지 않게 한다. 과속 카메라와 과속 방지턱은 물론 사고로 인한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친절하게 말해준다. 처음 가는 길이라도 목적지를 찾는데 어렵지 않다. 이는 자동차뿐 아니라, 도보 여행이나 자전거 여행 때도 똑같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다. 국내외 다양한 내비게이션, 지도 어플은 어마어마한 편리함을 안긴다. 

그러나 ‘의외성’이 사라졌다. 잘못 들어간 한적한 읍내에서 발견한 맛집, 지도를 보지 않고 걷다보니 나오는 조그마한 상점, 그리고 사람들. 내비게이션 어플이나 지도 어플이 ‘목적성’을 가진 이동에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여행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새로움’을 보러 가면서, 동시에 ‘새로운 뭔가’ 나오면 당황한다. 그러다보니 그 ‘새로운 것’은 사실 내가 인터넷에서, 방송에서 많이 봐왔던 ‘익숙한’ 것들이다. 그 ‘익숙한 것’들을 봤다는 인증을 하러 가고 있던 셈이다.

근래에 내비게이션을 켜놓지 않고 오랜만에 여행을 했다. 잘못 들어선 길에 한두 번 돌아왔지만, 그러면서 또 새로운 곳을 몇 곳 찾아냈다. SNS에 올리지도 않았다. ‘의외성’이 준 공간은 또다른 이에게도 ‘의외의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번 유턴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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