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랑의 달팽이 제공)
[뷰어스=곽민구 기자] 13시간 3분.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김하선 양이 시험을 치른 시간이다. 전국에서 가장 늦은 기록. 그러나 대중은 김하선 양의 끈기에 박수를 보냈다. 김하선 양은 전맹(시력을 조금도 갖지 않은 장애)과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시청각 복합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하선 양은 13시간 3분 동안 점자 수능 문제지를 손가락 끝 감각으로 풀었다. 오전 8시 40분 시험을 시작해 마친 시간은 오후 9시 43분이었다. 배움에 대한 김하선양의 열정은 많은 이에게 큰 울림을 줬다.
그 열정이 통했던 것일까. 김하선 양은 연세대 교육학과 수시전형 합격이라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은 잠시였다. 김하선 양이 합격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는 새로운 교육 환경에 있었다. 비슷한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모인 맹학교에서의 교육과 일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대학에서의 교육은 큰 차이가 날 것이라는 부담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기대와 부담이 교차하던 시기. 김하선 양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취약계층 청각장애인에 인공달팽이관 수술 등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사랑의달팽이에서 김하선 양에게 기존 사용하는 외부장치보다 음질과 성능이 뛰어난 인공달팽이관 외부장치의 지원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도움으로 인해 “장애 학생을 위한 더 나은 교육제도를 고민하고 싶다”는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전진하게 된 김하선 양이 새 인공달팽이관 외부장치를 통해 ‘듣고 싶은 소리’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사진=사랑의 달팽이 제공)
▲ 언제부터 외부장치를 통해 소리를 듣는데 도움을 받았나요?
“고1 때 처음 외부장치를 착용했어요. 그때는 머리에 자석으로 붙는 일체형이었죠. 외부장치에는 수신기가 있고 그게 머리 옆쪽에 부착돼 있어요. 전 시각으로도 사물 확인이 어렵기에 상대적으로 청력 의존도가 높은 편이에요. 방향을 찾을 때도 그렇고요. 그래서 외부장치에 큰 도움을 받았죠. 하지만 그러다 보니 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상대가 앞에서 말을 하면 저도 모르게 자꾸 머리를 돌려 귀 위에 부착된 인공달팽이관 외부장치를 상대방 얼굴 정면에 가져다 대는 행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 인공달팽이관 기기는 실제 귀만큼 소리의 방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하선 양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 방향감각이 어려운 편이므로 외부장치 수신기가 있는 쪽을 상대방쪽으로 둬야 소리가 잘 들린다)
▲ 수능을 준비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당시 어떤 말이 가장 큰 힘이 됐나요?
“고3이라는 자리 그리고 고1 때 수술 후 다르게 들리는 소리에 대한 적응으로 인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같은 경험을 한 친구가 없어 혼자 헤쳐나가는 과정이 힘들었고요. 고3 전에는 이제 고3이 되니까 ‘그러면 안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막상 고3이 되니 ‘힘내라’는 응원의 말과 ‘참 열심히 한다’는 칭찬의 말이 힘이 많이 됐어요”
▲ 힘든 순간 특별히 힘이 되준 분이 있었나요?
“국어영역이 굉장히 어려워 유일하게 딱 한 군데 학원을 다녔어요. 그때 시각장애를 가진 원장 선생님을 만났는데 내게 멘토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수업뿐 아니라 살아가는데 여러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직접 혼내진 않았지만 엄격하게 가르치셔서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장애에 대해 공감하며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의지도 많이 됐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맹인학교에서는 시각장애 외에 청각장애에 대해 공감을 가지고 이야기할 만한 친구가 없어서 그 부분이 매우 힘들었는데 그분은 어른으로서 사회경험이 많으셔서 위로도 얻고 도전도 됐어요”
▲ 새로운 형태의 인공달팽이기기에 대해서는 언제 접해보게 됐나요?
“대학교 입학해서 청각장애 선배들을 만나 ‘귀걸이형 인공달팽이관’도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됐어요. 그래서 최재영 교수님(신촌세브란스 병원, 이비인후과)을 통해 메델 소넷모델(귀걸이형)을 빌려 2~3주간 테스트를 해보기도 했어요. 음질도 좋고, 보청기 착용시에는 특히 영어수업시간에 ‘T’로 시작되는 ‘Two, Tee’와 같은 단어의 발음이 고주파 영역이라 듣지 못했는데 확실히 지금은 그런 발음들이 선명하게 들리더라고요. 이제 신촌세브란스 병원과 사랑의달팽이에서 지원받은 인공달팽이관 외부장치를 통해 FM마이크(마이크에 입력된 소리가 거리나 소음에 상관없이 바로 외부장치로 수신되게 하는 장치)를 사용하면 좀 더 편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겠네요”
▲ 새로운 형태의 인공달팽이관을 테스트해본 후 적응이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고주파가 들려 좋기는 했지만, 기존에는 제가 절대음감이 있어 음의 높낮이가 머리에서 그려졌는데 인공달팽이관을 한 이후에는 소리가 국어책 읽듯이 들리고 음이 아름답게 들리지 않아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한쪽은 보청기로 듣고 한쪽은 인공달팽이관으로 듣기 때문에 적응이 어렵더라고요. 최재영 교수님이 ‘소리는 뇌에서 오른쪽 기계음과 왼쪽 자연 음이 합쳐져 보정되어 인지되는 것이기에 단기간에 적응되지 않고 3~5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요. 이 부분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저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적응했고 앞으로 더 적응이 필요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생활을 중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특수학교에 다녀서 제한된 사람들과 제한된 활동만 할 수 있어서 그게 아쉬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더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관심 있었던 과에 진학해서 ‘교육’이라는 분야에 깊이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어서 기대되네요”
▲ 아직은 짧은 대학생활이지만, 어떤 점이 가장 다른 것 같나요?
“인식의 차이 같아요. 맹학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시각장애가 있어도 전혀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어 좋아요. 대게 시각장애인들은 눈에 의존할 수 없어 청력을 쓰다 보니 청력이 되게 좋아요. 그 부분은 함께 있는 비장애인들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죠. 반면 저는 청각장애도 있다 보니 시각장애에만 최적화된 시스템과 사람들이 가진 기본인식으로 인해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그 때문에 고 속에서 소외감 아닌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었죠. 하지만 대학교는 시·청각을 균형 있게 고려해 지원해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사진=사랑의 달팽이 제공)
▲ 어떤 부분에서 시·청각을 균형 있게 고려해 지원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나요?
“장애 학생 지원실이 있는데 그곳은 여러 장애인에 대해 지원을 하니, 시각과 청각 각 부분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있어요. 또 서로 맞춰가는 부분도 있고요. 적절한 지원이 있으니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변에서 워낙 지원을 잘 해주시니 같이 맞춰나간다는 느낌 때문에 좋고 힘이 많이 되고 있어요”
“장애 학생 지원실에서 먼저 여러 장애 분야 경험을 토대로 지원해주셨어요. 시각장애의 경우 이동 편의성 및 대필 도우미만 지원이 필요한 데 반해 하선이는 청각이 어려우니 속기사의 실시간 문자통역으로 그 정보가 점자단말기에 들어가 점자로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대필 도우미 지원, 이렇게 동시에 2명의 도우미를 장애 학생 지원실에서 복합장애인 것을 먼저 알고 지원해주셨습니다. 또 어떤 교수님은 미리 점자단말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PPT나 PDF로 된 강의안을 한글로 변환해 주시기도 하셨어요. 정말 감사한 부분이죠 (김하선 양 부친)”
▲ 대학교에서 굉장히 섬세하게 지원을 해주는군요?
“저 역시 내게 어떤 게 필요한지는 실제 그 상황에 맞닥뜨려봐야지 아는 것인데 그런 과정을 같이 풀어가는 분들이 주위에 있으니 정말 감사해요. 이런 지원 덕분에 환경이 많아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 균형 있는 지원을 받아보며, 장애 학생의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저와 다르게 지원 없이 어려움을 겪는 청각장애인도 있어요. 특히 어린이들은 또래와의 관계에서 실패를 경험하면 그냥 스스로 차단해버리고 집에서 홀로 지내며 공부만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들에게 힘이 되는 말이나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그 어려움을 아니까요. 하지만 시청각 장애인에 대한 조언은 정말 어려워요. 장애 정도에 따라 어떤 어려움이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가 다 다르거든요. 대인관계 부분은 특히 조언해도 바로 적용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어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 대학 생활을 중 시청각장애가 있는 학생을 위해 개선됐으면 했던 부분이 있다면요?
“식당에 가보니 주문 시스템이 다 터치스크린이더라고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이용할 수가 없어요. 읽어주거나 점자로 나오거나 이런 장치가 없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얘가 누군가 도움이 없으면 혼자 밥 먹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하선이가 ‘걱정하지 말라, 밥 못 먹겠냐’고 오히려 날 안심시켰어요.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다 도와준다고요 (김하선 양 부친)”
▲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 역시 도움받는 입장에서 자존심 상할 때도 있고 ‘내가 이것도 못 하나’ 생각하며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한테 놀림도 많이 당했고, 같은 시각장애인 사이에서도 나는 청각장애인이었기에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런 것들을 이겨낸다는 것이 쉽지 않아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서로 다름을 포용으로 이겨낸다는 것이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쉽지 않아요. 서로 시간이 필요하고 먼저 용기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용기를 내다보면 상처도 받고 포기하는 부분도 생길 텐데, 그 아픔에만 빠져있는 것보다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함을 알고 안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장애인들 스스로 수용하면 더 나아질 것 같아요”
▲ 비장애인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장애인의 장애에 대해서만 집중하지 말고 또 너무 섣불리 장애인에게 ‘스스로 해봐라’라고 이야기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그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자기 상황을 공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섣부른 조언이 되는 것이죠. 그런 조언보다는 서로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과 공감, 그런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비장애인이나 장애인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고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서로 기다려준다는 믿음이 있으면 거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저도 엄청 많은 것을 겪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경험하면서 ‘더 단단해진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애도 많다고 생각해요. 대학교에서 짧은 기간 비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했지만, 그들도 가정환경 등등 여러 문제로 나름대로 상처가 다 있더라고요. 문제는 다르지만 난 나름대로 어려움을 잘 극복해 왔기에 그 경험을 통해 힘들어하는 친구들과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사회생활에서 다름을 포용하는 좋은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그 과정이 쉽지 않았고,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 깊이 빠지기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하고, 옆에서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향점을 가지고 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