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세력을 다퉜던 삼국시대는 사실 100년 안팎의 짧은 역사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이들 세나라가 한반도 내 각 지역을 기반으로 철저한 특이점을 보인 시기였기 때문일 겁니다. 진취적 기백으로 대표되는 고구려,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의 백제, 그리고 끝내 이들 두 나라를 평정했던 신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삼국이 이어간 치열한 힘겨루기와 경쟁의 스토리는 그래서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흥미롭습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토스뱅크가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세개 축을 구축했을 때 ‘삼국시대’를 이룰 것이라던 시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을 겁니다. 3개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새로운 영역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만들어갈 새로운 영토 확장에 대한 기대감이랄까요.
3개사 가운데 가장 넓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단연 카카오뱅크입니다. 사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라는 비교 불가한 비옥한 영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태생부터 남다른 왕족일지 모릅니다. 실제 지난 2017년 출범한 카카오뱅크는 현재 2000만명의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며 절대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런 카카오뱅크가 최근 글로벌 무대 진출을 공식화했습니다. 다만 국내서 카카오 효과와 함께 자라난 카카오뱅크가 글로벌 무대 진출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를 두고선 여전히 안팎에서 의아한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거대 시중은행들조차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곳이니만큼 카카오뱅크의 도전과 성공을 ‘상상하기’ 쉽지 않은 탓일 겁니다.
반면 카카오뱅크가 ‘시즌2의 씨앗’을 뿌리는 텃밭으로 동남아 진출을 선택한 것은 인터넷전문은행이 하면 다르다는 것을 보일 수 있는 기회일 지 모릅니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의 표현대로 ‘기술은행’인 카카오뱅크가 청년층의 인구 비중이 높은 동남아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오기만 한다면 충격이자 새로운 기회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금융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가장 다양한 이슈를 장악하는 곳은 토스뱅크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복리이자 개념을 적용해 금융업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던 토스뱅크는 지난달 ‘선이자 예금’을 내놓으면서 다시 한번 확실한 이슈 메이킹을 합니다. 우리가 돈을 맡기는 순간부터 은행은 그 자금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정작 고객은 만기까지 기다려야 이자를 받는 구조가 합리적인가에 대한 고민이 새로운 변화로 이어진 것입니다. 토스뱅크는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을 외칩니다. 이 같은 사고의 전환은 때아닌 ‘위기설’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토스뱅크가 기존 금융과 얼마나 다른지 그 영향을 확인한 기분 좋은 증거일 수 있습니다.
실제 출범 1년 반만에 600만명의 고객을 끌어모은 토스뱅크의 성장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입니다. 올해 토스뱅크가 자신하듯 흑자전환까지 이뤄낸다면 ‘막내’인 토스뱅크의 기세좋은 반격은 생각보다 흥미로워질지도 모릅니다.
반면 또 하나의 축을 이뤄야 할 케이뱅크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빈약합니다. 출범 시기만 놓고 보면 명실상부한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이지만 그 어떤 수혜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물론 출범 이후 자금난과 이로 인한 대출 중단, KT에 대한 적격성 심사 중단 등 우여곡절을 겪은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은행으로서 케이뱅크의 입지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올해 출범 6주년을 맞은 현재 케이뱅크의 자산은 16조원 수준. 지난 2021년 4월 10조원을 넘어선 이후 2년간 6조원 가량 늘어난 셈이죠.
케이뱅크는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파킹통장 금리를 적극적으로 인상, 수신잔고 확대 효과를 누렸습니다.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죠. 하지만 오를 때만큼 빠른 예금 금리 인하 흐름이 짙어지면서 이로 인한 자금 유입 효과도 더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와 함께 케이뱅크의 딜레마는 바로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 대한 의존성 부분입니다. 지난 2020년 이후 케이뱅크는 이른 바 업비트 효과로 대규모의 저원가성예금을 확보하며 수백억원대 비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도한 의존성으로 굳어지면서 업비트 연계 계좌를 보유한 차주들의 높은 신용대출 비중에 따른 건전성 문제가 발목을 잡는 형국입니다. 여기에 업비트와 재계약까지 실패한다면 수신 잔고 감소 등 케이뱅크로서는 충격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케이뱅크를 바라보는 시장의 기대감은 여전히 큽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각기 다른 전성기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듯 어쩌면 케이뱅크의 전성기는 조금 늦게 올지도 모릅니다. 때론 기존 서비스에 편리성만 확대한 수준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더라도 쉬지 않고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의 이유는 충분합니다. 케이뱅크가 자신만의 특색을 구축해 인터넷전문은행 3사가 진정한 금융사의 삼국시대를 만들어갈 날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