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연말 연시를 맞아 미국서 역대급 '기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컴퓨터 제조사 '델 테크놀로지'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 부부가 62억 500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한 것인데요. 그 쓰임새가 흥미롭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트럼프 계좌' 사업에 투입돼 미국 아동 2500만명의 '주식 시드 머니'가 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사회적 실험'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2025년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라면 앞으로 1000달러의 시드 머니가 담긴 트럼프 계좌를 갖게 됩니다. 이 돈은 S&P 500 인덱스 펀드 등에 투자되고, 아이가 18세가 되면 인출 권한이 생깁니다. 한마디로 '강제 장기 복리 수익'이 쌓이는 셈입니다.
살아있는 투자의 신 워렌 버핏은 자신의 행운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 한 바 있는데요.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태어난 것, 성인이 되었을 때 시드 자금 1000만원 정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등을 행운의 요소로 꼽았습니다. 투자를 아주 일찍 시작한 것도 '복리의 마법사'에게는 결정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트럼프 계좌'로 인해 앞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적어도 워렌 버핏만큼의 행운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특히 놀라운 부분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극적인 보편적 복지를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계좌는 미국 주식 시장의 장기 부흥책인 동시에 미국의 자산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사회환원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모순적인 조건들이 만나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하나 봅니다.
'트럼프 계좌'를 보면서 불현듯 봉암사 주지 스님께서 설해주신 '무소유 정신'이 떠올랐습니다.
"산속에 산다고 해서 무소유를 실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데도 소유에 무심할 때 진짜 무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돈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돈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주는 일을 한다면 그것이 무소유의 삶입니다."
마이클 델 부부의 진의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그들의 결단에는 '무소유'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소유한 것들이 사실은 오롯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근원적인 성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9조원에 가까운 돈을 쾌척하고도 여전히 그들은 더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