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연합뉴스 “자녀가 전 과목 만점을 받길 원하세요? 아니면 한 과목만 눈에 띄게 잘하길 원하세요?” 예전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 교육전문가가 던진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고 동양권의 부모들은 대부분 전 과목 만점을 받길 선호한다고 합니다. 반면, 서양권의 부모들은 한 과목만 두드러지게 잘하길 원한다고 하네요. 아이의 개성과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 부모들의 특성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한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이를 ‘영재(穎才)’라고 칭합니다. 한자로 이삭 영(穎)을 쓰니 후천적 노력보다는 선천적 재능에 조금 더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과목 만점을 받는 아이에게는 영재라는 표현보다는 ‘수재(秀才)’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빼어날 수(秀)를 써서 ‘흠 잡을 데 없다’는 점을 좀 더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뛰어난 인재’로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지만 영재와 수재의 삶은 현실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영재는 부모들이 선호하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기 때문에 전 과목 만점 수준을 받아야 진로가 허락되는 직업군은 아무래도 넘보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재능을 알아보는 어른을 만나지 못하면 영재는커녕 둔재로 전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 금융지주, 전 과목 만점을 받아라 요즘 국내 금융지주사들을 보면 부모로부터 수재가 되길 강요받는 수험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행업을 영위하는 금융지주는 기본적으로 필수 세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야 합니다. 자산 건전성, 자본 적정성, 수익성 세 과목이죠. 특히 자산의 건전성과 자본의 적정성은 금융당국이 제시하는 비율보다 월등히 높은 역량을 보여줘야 합니다. 다행히 2022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금융지주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필수과목에서 만점 수준의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문제는 국영수 만점만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것이죠. 상생금융, 주주환원, 지배구조 등 다양한 선택과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길 금융당국으로부터 요구받고 있습니다. 당국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에서도 행동주의 펀드 등으로부터 구체적인 숫자를 비교당하며 경영간섭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압박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 12일 금감원은 은행 부문 업무설명회에서 확고한 금융안정, 따뜻한 금융환경 조성, 미래성장기반 구축 세 가지를 감독의 기본방향으로 제시했습니다. 금융안정을 강조하는 것은 납득이 됩니다만 따뜻한 금융환경 조성과 미래 성장기반 구축이 과연 은행 감독업무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미래 성장기반 구축은 은행들 스스로 찾고 개척해야 하는 부분이고 그것에 성공했을 때 따뜻한 금융을 실천할 밑천이 마련된다는 생각이 상식 아닐까요. ■ 은행이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 상식적이든, 비상식적이든 은행들이 소화해야 할 과목들이 점점 늘어나고 난이도도 올라가면서 은행 경영의 방정식은 점차 고차방정식으로 변모해 가는 것 같습니다. 우선 연체율 상승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금리 상승 영향으로 이자수익 급증이란 혜택을 누렸지만 반대급부로 연체율 상승이라는 부작용도 시차를 두고 진행 중입니다. 2022년 6월 0.20%였던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1월 0.46%로 2배 넘게 뛰었습니다. 분기 말마다 적극적으로 연체채권을 정리하고 있음에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죠. 신규연체율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0.5%를 뚫고 올라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비이자수익 강화 차원에서 많이 팔았던 홍콩 H지수 기반 ELS에서도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익이 많이 나서 충분히 흡수 가능한 수준의 손실이라고는 하나 악재 중의 악재임을 부인할 순 없어 보입니다. 배상 과정이 깔끔하게 처리될 리 만무하고 송사가 남발될 경우 올해에 그치지 않고 내년 이후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당분간 비이자 수익 창출에 제동이 걸리는 건 덤이구요. 해외 부동산 쪽 기류도 심상치 않습니다. 국내 5대 금융지주의 투자액만 20조원이 넘는데 이미 지난해 1조원 이상을 손실 처리했습니다. 올해는 손실 규모가 더 커질 전망입니다. 부동산의 경우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워 만성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립니다. 결국 대체투자 영업도 위축될 공산이 큽니다. 비이자 수익 쪽이 어렵다면 전통 수익원인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쪽을 강화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이미 대출액이 넘칠 만큼 가득 찬 상황에서 인터넷은행과 시중은행의 신규 진출 소식이 들립니다. 대환대출플랫폼 등 여러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경쟁은 점차 심화되고 있죠. 금융지주들은 영업비용 측면에서 아무래도 인터넷은행들보다는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벌어들이는 수익은 줄어들고 손실 처리해야 할 비용은 늘어나는데 새로운 수익 창출은 신통치 않은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수익 배분 요구와 사회공헌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상생금융 명목으로 조 단위 이자수익을 토해낸 데 이어 올해에도 어느 정도의 '성의 표시'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고금리로 고통받는 약자들이 여전히 넘쳐나고 있으니까요.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 1월부터 금융지주들에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특정 수준 이상 도달하면 전액 주주환원에 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위험가중자산(RWA) 성장을 연 2~5%로 제한할 것도 요구하고 있죠. 지배구조 개선과 평가기준 개편 캠페인도 벌이고 있습니다. 주주환원 이슈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선택옵션에서 기본옵션으로 점차 전환되어 가는 분위기입니다. ■ '전 과목 만점'의 뚜렷한 한계 만점 스트레스를 잘 견뎌낸 수재들은 이른바 명문대 진학이 가능하겠죠. 조금 더 노력한다면 행정고시, 의사고시도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앞서 언급한 교육전문가는 수재들의 경우 한계가 뚜렷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합니다. 알을 깨고 부화하듯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높은 레벨로 올라서기 어렵다는 것이죠. 왜일까요? 수재들은 ‘흠 잡을 데 없이’ 골고루 잘해야 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을 억눌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곤충에 관심이 생겼으면 호기심이 해소될 때까지 파고드는 게 정상인데 부모는 이를 잘 허용하지 않겠지요. 세상에는 곤충 말고도 배워야 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요. 교과 과목에 비유하면 수학에서 100점을 달성하면 120점, 200점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눈을 돌려 70점, 80점인 다른 과목을 100점으로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사나 변호사를 양성하기에 적절한 교육법일 지 몰라도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인재를 길러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교육법이겠죠. 과거 선진국 따라잡기가 지상과제였던 시대에 ‘전 과목 만점’ 교육은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특출난 인재보다는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된 인재가 대거 배출돼 사회 각 영역의 수준을 골고루 향상시켰죠. 하지만 개발도상국을 지나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현재 ‘전 과목 만점’ 교육은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정답을 잘 찾는 인재는 별로 쓸모가 없기 때문이죠. 세상에 없던 질문을 만들어 내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런 인재는 ‘전 과목 만점’ 교육에선 나올 가능성이 낮습니다. ■ 4대 금융지주의 타고난 DNA는? 국내 4대 금융지주가 골고루 잘하는 수재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골고루 잘한다는 말은 특색이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여러분들은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의 특색이 보이시나요? 저는 간판과 광고모델 말고는 도대체 뭐가 다른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취급하는 상품, 추구하는 전략, 고객 서비스 모두 대동소이합니다. 과거에는 저마다 특색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금융지주 회장님들 인터뷰를 보면 오래 전부터 차별화된 전략, 월등한 경쟁력을 강조합니다. 타고난 DNA를 극대화시켜 범접할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월드클래스로 올라서자고 독려해 왔더군요. 하지만 그런 의지가 실현될 수 있을 만큼 경영 환경이 우호적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규제산업의 숙명이겠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금감원 은행 검사매뉴얼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은행 경영에 자율성은 존재하는 걸까 의심이 듭니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분명 영재의 DNA를 갖고 태어났을텐데 수재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영향으로 가진 능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한 과목만 두드러지게 잘하길 원한다는 서양 부모들의 은행은 어떨지 궁금해져 한국금융연구원 홈페이지를 뒤져봤지만 딱 들어맞는 연구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JP모건 등 미국의 5대 상업은행 소속 금융그룹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다양하게 분포한 점은 확인했습니다. 이는 경영전략을 짤 때 운신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금감원은 올해 은행의 미래성장 기반을 지원하겠다며 디지털 취약부문 상시감시, 내부통제 평가 강화, 대체투자 모범규준 마련, 사회공헌 거버넌스 점검 등을 세부 내용으로 제시했습니다. 입시에 새로운 과목이 등장한 것인데요. 새로운 족집게 강사를 찾는 열성 학부모를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포르코의 뷰] '전과목 만점' 강요받는 은행들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3.19 10:46 | 최종 수정 2024.03.20 09:21 의견 0
자료=연합뉴스


“자녀가 전 과목 만점을 받길 원하세요? 아니면 한 과목만 눈에 띄게 잘하길 원하세요?”

예전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 교육전문가가 던진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고 동양권의 부모들은 대부분 전 과목 만점을 받길 선호한다고 합니다. 반면, 서양권의 부모들은 한 과목만 두드러지게 잘하길 원한다고 하네요. 아이의 개성과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 부모들의 특성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한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이를 ‘영재(穎才)’라고 칭합니다. 한자로 이삭 영(穎)을 쓰니 후천적 노력보다는 선천적 재능에 조금 더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 과목 만점을 받는 아이에게는 영재라는 표현보다는 ‘수재(秀才)’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빼어날 수(秀)를 써서 ‘흠 잡을 데 없다’는 점을 좀 더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뛰어난 인재’로 사전적 의미는 비슷하지만 영재와 수재의 삶은 현실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영재는 부모들이 선호하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기 때문에 전 과목 만점 수준을 받아야 진로가 허락되는 직업군은 아무래도 넘보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재능을 알아보는 어른을 만나지 못하면 영재는커녕 둔재로 전락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 금융지주, 전 과목 만점을 받아라

요즘 국내 금융지주사들을 보면 부모로부터 수재가 되길 강요받는 수험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행업을 영위하는 금융지주는 기본적으로 필수 세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야 합니다. 자산 건전성, 자본 적정성, 수익성 세 과목이죠. 특히 자산의 건전성과 자본의 적정성은 금융당국이 제시하는 비율보다 월등히 높은 역량을 보여줘야 합니다.

다행히 2022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금융지주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필수과목에서 만점 수준의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문제는 국영수 만점만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것이죠. 상생금융, 주주환원, 지배구조 등 다양한 선택과목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길 금융당국으로부터 요구받고 있습니다. 당국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에서도 행동주의 펀드 등으로부터 구체적인 숫자를 비교당하며 경영간섭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압박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 12일 금감원은 은행 부문 업무설명회에서 확고한 금융안정, 따뜻한 금융환경 조성, 미래성장기반 구축 세 가지를 감독의 기본방향으로 제시했습니다. 금융안정을 강조하는 것은 납득이 됩니다만 따뜻한 금융환경 조성과 미래 성장기반 구축이 과연 은행 감독업무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미래 성장기반 구축은 은행들 스스로 찾고 개척해야 하는 부분이고 그것에 성공했을 때 따뜻한 금융을 실천할 밑천이 마련된다는 생각이 상식 아닐까요.

■ 은행이 풀어야 할 고차방정식

상식적이든, 비상식적이든 은행들이 소화해야 할 과목들이 점점 늘어나고 난이도도 올라가면서 은행 경영의 방정식은 점차 고차방정식으로 변모해 가는 것 같습니다.

우선 연체율 상승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금리 상승 영향으로 이자수익 급증이란 혜택을 누렸지만 반대급부로 연체율 상승이라는 부작용도 시차를 두고 진행 중입니다. 2022년 6월 0.20%였던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1월 0.46%로 2배 넘게 뛰었습니다. 분기 말마다 적극적으로 연체채권을 정리하고 있음에도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죠. 신규연체율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0.5%를 뚫고 올라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비이자수익 강화 차원에서 많이 팔았던 홍콩 H지수 기반 ELS에서도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익이 많이 나서 충분히 흡수 가능한 수준의 손실이라고는 하나 악재 중의 악재임을 부인할 순 없어 보입니다. 배상 과정이 깔끔하게 처리될 리 만무하고 송사가 남발될 경우 올해에 그치지 않고 내년 이후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당분간 비이자 수익 창출에 제동이 걸리는 건 덤이구요.

해외 부동산 쪽 기류도 심상치 않습니다. 국내 5대 금융지주의 투자액만 20조원이 넘는데 이미 지난해 1조원 이상을 손실 처리했습니다. 올해는 손실 규모가 더 커질 전망입니다. 부동산의 경우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워 만성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립니다. 결국 대체투자 영업도 위축될 공산이 큽니다.

비이자 수익 쪽이 어렵다면 전통 수익원인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쪽을 강화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이미 대출액이 넘칠 만큼 가득 찬 상황에서 인터넷은행과 시중은행의 신규 진출 소식이 들립니다. 대환대출플랫폼 등 여러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경쟁은 점차 심화되고 있죠. 금융지주들은 영업비용 측면에서 아무래도 인터넷은행들보다는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벌어들이는 수익은 줄어들고 손실 처리해야 할 비용은 늘어나는데 새로운 수익 창출은 신통치 않은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수익 배분 요구와 사회공헌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상생금융 명목으로 조 단위 이자수익을 토해낸 데 이어 올해에도 어느 정도의 '성의 표시'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고금리로 고통받는 약자들이 여전히 넘쳐나고 있으니까요.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 1월부터 금융지주들에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특정 수준 이상 도달하면 전액 주주환원에 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위험가중자산(RWA) 성장을 연 2~5%로 제한할 것도 요구하고 있죠. 지배구조 개선과 평가기준 개편 캠페인도 벌이고 있습니다. 주주환원 이슈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선택옵션에서 기본옵션으로 점차 전환되어 가는 분위기입니다.

■ '전 과목 만점'의 뚜렷한 한계

만점 스트레스를 잘 견뎌낸 수재들은 이른바 명문대 진학이 가능하겠죠. 조금 더 노력한다면 행정고시, 의사고시도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앞서 언급한 교육전문가는 수재들의 경우 한계가 뚜렷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합니다. 알을 깨고 부화하듯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높은 레벨로 올라서기 어렵다는 것이죠. 왜일까요?

수재들은 ‘흠 잡을 데 없이’ 골고루 잘해야 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을 억눌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곤충에 관심이 생겼으면 호기심이 해소될 때까지 파고드는 게 정상인데 부모는 이를 잘 허용하지 않겠지요. 세상에는 곤충 말고도 배워야 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요. 교과 과목에 비유하면 수학에서 100점을 달성하면 120점, 200점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눈을 돌려 70점, 80점인 다른 과목을 100점으로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사나 변호사를 양성하기에 적절한 교육법일 지 몰라도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탁월한 인재를 길러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교육법이겠죠.

과거 선진국 따라잡기가 지상과제였던 시대에 ‘전 과목 만점’ 교육은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특출난 인재보다는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된 인재가 대거 배출돼 사회 각 영역의 수준을 골고루 향상시켰죠. 하지만 개발도상국을 지나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현재 ‘전 과목 만점’ 교육은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정답을 잘 찾는 인재는 별로 쓸모가 없기 때문이죠. 세상에 없던 질문을 만들어 내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런 인재는 ‘전 과목 만점’ 교육에선 나올 가능성이 낮습니다.

■ 4대 금융지주의 타고난 DNA는?

국내 4대 금융지주가 골고루 잘하는 수재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골고루 잘한다는 말은 특색이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여러분들은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의 특색이 보이시나요? 저는 간판과 광고모델 말고는 도대체 뭐가 다른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취급하는 상품, 추구하는 전략, 고객 서비스 모두 대동소이합니다. 과거에는 저마다 특색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금융지주 회장님들 인터뷰를 보면 오래 전부터 차별화된 전략, 월등한 경쟁력을 강조합니다. 타고난 DNA를 극대화시켜 범접할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월드클래스로 올라서자고 독려해 왔더군요. 하지만 그런 의지가 실현될 수 있을 만큼 경영 환경이 우호적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규제산업의 숙명이겠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금감원 은행 검사매뉴얼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은행 경영에 자율성은 존재하는 걸까 의심이 듭니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분명 영재의 DNA를 갖고 태어났을텐데 수재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영향으로 가진 능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한 과목만 두드러지게 잘하길 원한다는 서양 부모들의 은행은 어떨지 궁금해져 한국금융연구원 홈페이지를 뒤져봤지만 딱 들어맞는 연구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JP모건 등 미국의 5대 상업은행 소속 금융그룹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다양하게 분포한 점은 확인했습니다. 이는 경영전략을 짤 때 운신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금감원은 올해 은행의 미래성장 기반을 지원하겠다며 디지털 취약부문 상시감시, 내부통제 평가 강화, 대체투자 모범규준 마련, 사회공헌 거버넌스 점검 등을 세부 내용으로 제시했습니다. 입시에 새로운 과목이 등장한 것인데요. 새로운 족집게 강사를 찾는 열성 학부모를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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