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홍원학 삼성생명 사장(자료=연합뉴스)


오는 12일 삼성생명이 상반기 경영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회계기준원(KAI)이 보름 전 개최한 이른바 ‘삼성생명 포럼(생명보험사의 관계사 주식 회계처리)’에서 이한상 KAI 원장은 “대한민국의 투자자와 공익을 위해 삼성생명의 ‘내 맘대로 회계’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관련 기사 : 삼성 민낯 ①~③) 이번 실적 발표에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삼성생명이 반기 보고서에 유배당 계약자를 위한 배당 계획을 보험부채로 반영하도록 강제하겠다고 KAI는 밝혔습니다. 자회사로 편입한 삼성화재 지분 회계처리 논란과 관련해서도 ‘지분법 적용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은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습니다. 유배당 결손이 1조원에 달해 계약자 배당은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는 걸로 봤을 때 KAI 권고를 따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외부의 문제 제기로 회사 회계가 바뀌는 것은 독립성 침해라며 회사 재무팀이 강력 반발 중이라는 전언도 들립니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유배당 결손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상식 밖 논리입니다.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의 막대한 평가이익은 배제한 채 실현이익만을 근거로 결손을 주장하는 것은 회계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과거 IFRS4 체제에선 이런 주장이 먹힐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시가평가를 기본으로 하는 IFRS17 시대. 모든 보험사들이 확보에 혈안이 된 CSM(보험계약마진)만 보더라도 실현이익이 아니라 정교한 예측을 바탕으로 한 평가이익입니다. 삼성생명이 유독 배당 영역에서만 실현이익을 고집하는 것은 CSM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삼성생명이 결손 운운할 수 있는 것은 금융감독 규정 탓입니다. 현행 보험업감독규정에서는 유배당 배당가능이익을 산정할 때 실현이익만을 배당 재원으로 삼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 IFRS17 체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보험사가 실질적으로는 어마어마한 미실현이익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배당 재원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현실 왜곡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바람직하고 좋은 회계는 회사의 실재에 가장 근접한 회계 아닐까요. 그래서 장부와 실재 간 괴리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회계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한다면 미실현 이익도 일정 요건 하에 배당 재원으로 삼을 수 있도록 감독규정이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평가이익을 근거로 배당을 실시했는데 추후 삼성전자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요. 이는 규칙을 정하면 될 일입니다. 지금까지 삼성생명이 공시해 온 ‘계약자지분조정’ 평가액(작년 말 기준 7조2466억원)은 기분 따라 즉흥적으로 산출된 금액이 아닙니다. 감독규정에 근거해 복잡한 산출식을 거쳐 나왔습니다. 이는 평가 시점의 최대 배당 가능 금액을 보여줍니다. 삼성전자 주가 흐름에 따라 매년 평가액이 다르고 들쑥날쑥할 수 있으니 7조2466억원을 특정 시점에 한꺼번에 배당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계획을 세워 매년 일부를 나눠 배당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KAI에서 권고하는 것도 한꺼번에 배당하라는 것이 아닌, 보험부채로 시가평가해 소화 가능한 선에서 배당계획을 공시해 달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보험계약자에게 약속을 지키겠다는 회사의 의지입니다. 삼성생명은 1970년대에 유배당 보험상품을 판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뒤 지금까지 40년 넘도록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배당을 받아야 할 인원이 몇 명인지조차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박용진 전 의원이 2022년 공개한 인원(138만1401명)에서 몇 명이 더 사망했는지는 삼성생명만이 알고 있습니다. 공시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30대에 보험에 가입했다면 지금은 80대의 고령입니다. 모르긴 해도 앞으로 10년만 더 버티면 삼성생명의 계약자지분조정 평가액은 절반 이하로 확 줄어들 겁니다. 계약자가 사망하면 보험사의 배당 이행 의무도 사라지니까요. 138만명의 유배당 계약자가 모두 사망할 때까지 버티겠다는 것이 삼성생명, 더 나아가 삼성그룹의 의지이자 계획인 것인지 KAI는 묻고 있습니다.

물론, KAI는 금융당국이 아닙니다. 민간의 공적 기구에 불과합니다. 삼성생명이 KAI의 권고를 따를 의무도 사실 없습니다. 결국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금융당국이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감독원장 자리는 공석이지요. 금융감독기구 개편과 맞물려 임명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해체 가능성이 있는 금융위원회가 나서기도 애매합니다.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버티기 좋은 환경이겠지요. 현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인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 직전 삼성생명 사외이사였던 점도 삼성으로선 유리한 지점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향후 임명될 금융당국의 새 수장이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삼성생명이 지금까지 유배당 계약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2011년 상장 이후는 물론, 상장 전에도 계약자지분조정으로 유배당 계약자의 권익을 회계에 반영해 왔습니다. 2022년 새 회계제도 시행을 앞두고 관련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금감원은 그해 12월 28일 삼성생명의 계약자지분조정 질의에 “보험부채 평가에 반영해 회계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원칙을 분명히 제시했습니다. 보험부채 반영이 원칙이지만 회사 사정이 딱하니 어쩔 수 없이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아무리 삼성생명에 우호적인 금융당국 수장이 취임한다 한들 지난 50년 동안 상식으로 여겨져 온 원칙을 뒤집기는 불가합니다. 배당을 하는 게 원칙이라면 ‘언제, 어떻게’가 다음 논의 과제입니다. 배당을 하느냐 마느냐, 보험부채로 잡느냐 마느냐는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삼성생명 입장에서 가장 ‘최선의’ 방안은 계약자지분조정을 계속 유지하며 버티는 것이었지만 올 초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일탈회계의 전제를 스스로 무너뜨렸습니다. 실수든 뭐든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억지로 다시 주워 담으려 했다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국민주권정부 고위공직자 워크숍’ 특강에서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반대 방향으로 뛰면 소용이 없다”며 “공직자 인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맞는 방향으로 열심히 뛰다가 넘어지고, 실수하는 것은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장려하겠다며 신상필벌의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삼성생명에 묻습니다. 삼성생명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뛰고 있나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나아가는 방향과 홍원학 삼성생명 사장이 뛰는 방향은 과연 같을까요.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은 어느 방향으로 뛰는 걸까요.

KAI는 삼성생명이 법과 원칙, 상식의 방향이 아닌 정반대의 방향으로 뛰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재용 회장이 홍원학 사장에게 반대 방향으로 뛰라고 지시한 게 아니라면, 응당한 신상필벌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은 삼성이 잘못된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5.6.13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