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 구축함 KDDX 조감도 (사진=HD현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또다시 멈춰섰다. KDDX는 국내 기술로 선체와 전투체계를 모두 설계·제작하는 첫 국산 이지스 구축함으로 사업비만 약 7조80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원래는 지난해 중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에 착수할 계획이었지만, 양대 조선사의 입장 차이와 방위사업청(방사청)의 판단 유예로 약 1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 27일 열기로 했던 사업분과위원회를 취소하면서 사업 지연은 불가피해졌다.
사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정부의 관심에 비해 잘 큰 '개천에서 난 용'이다. 무관심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란 이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그러다보니 꼭 지켜야 할 기본적인 룰도 종종 무시됐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을 중재해야 할 방사청은 '이기는 편 우리 편'이라는 태도로 방관하거나 오히려 부추겼다. 아이를 방임하는 부모와 같다.
금쪽이가 된 두 회사는 결국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 커닝을 하고, 실수를 해도 자신이 한 일이 아닌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방사청은 이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이기는 쪽에게만 가치를 부여하며 이들을 더욱 엇나가게 했다. 이제 상황은 통제 불능에 가깝다. 끊임없이 도발하고 싸움을 거는 권력 투쟁의 단계를 지나, 문제아의 탄생 단계에 이르렀다. 힘을 과시하고, 짜증을 내고, 폭발하는 동안 방사청은 그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한화오션은 군 기밀 유출 논란 등을 들어 HD현대가 사업자로 부적절하다며 입찰 경쟁을 통한 사업자 선정을 주장한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배를 만드는 건 결국 우리"라며 자신들의 경험을 강조한다.
한화오션이 "미래 해군 전력화를 위해서는 우리 기술이 필수"라고 하면, HD현대중공업은 "수십 년간 해군 함정을 설계하고 만든 우리가 더 적합하다"고 맞선다. 한쪽에서 상대방의 영입 인사에 대해 논란을 만들면, 반대쪽 역시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며 맞받아친다. 본래 경쟁이란 치열한 법이지만, 이번에는 기술력 논쟁을 넘어 서로를 깎아내리는 해묵은 감정싸움도 들먹인다.
이번 KDDX 사업은 단순한 수주 경쟁을 넘어 국내 조선 방산 산업의 재편 구도 속 상징적인 대결로도 해석된다. 방산 부문 통합을 마무리한 한화는 함정 건조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도약을 모색하고 있고, HD현대는 기존 이지스함 설계 경험과 독자 기술을 앞세워 방산 주도권 수성에 나서고 있다.
싸움의 원인은 결국 방사청에 있다. 신중한 태도로 포장한 방관에 양 사는 불확실성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 정국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겹치며 방사청의 판단은 더욱 미뤄지고 있다.
부모가 방임하면 문제아가 생기는 법이다. 이 지연이 지속된다면, 한국 해군의 전력 강화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제 부모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방사청은 정치적 계산을 멈추고 산업 논리에 따라 KDDX 사업의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역시 감정싸움을 멈추고, 보다 성숙한 경쟁을 통해 한국 해군과 방산업계 전체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싸움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