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질문이 뻔해요. 준비도 제대로 안하는 거 같아요.” 술자리에서 한 배우 소속사 관계자가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뻔한 질문이 나온 전후 상황을 파악하지는 못한 ‘맞는 말’이다. 그 상황은 라운드 인터뷰라는 형식이 만들었다. 라운드 인터뷰는 배우 혹은 가수가 드라마, 영화, 앨범 등을 홍보하기 위해 진행된다. 한 배우가 3~4일 정도 홍보 인터뷰를 하면, 하루에 4~5타임을 나눠 많게는 10여개 적게는 3~4명의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라운드 인터뷰는 효율 면에서는 뛰어나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홍보성 기사’가 나온다. 제작사나 홍보사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좋은 시스템은 없다. 찍어내듯이 하루에 수백 개의 기사가 나오니 말이다. 인터뷰 준비를 안한 기자 입장에서도 편하다. 누군가 질문을 해줄테고,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 사실 필자도 아직 이런 마음 편한(?) 분위기 때문에 어리숙한 막내 기자들의 ‘연습용 현장’으로 종종 보내긴 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대중문화 영역에서 어떤 논란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인터뷰는 대화이고 공감이다. 인터뷰어는 어떤 글을 쓰겠다고 구상해 놓고 인터뷰이를 만난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넘게 하나의 흐름으로 대화를 끌고 나간다. 거기서 이야기가 나오고, 인터뷰이의 생각이 보인다. 배우의 경우 몇 편의 작품을 통해 몇 번의 인터뷰를 하게 되면 연기의 변화와 인생까지 논한다.
라운드 인터뷰는 많은 기자들이 앉아서 진행하기에 이런 흐름을 만들 수 없다. 더구나 열심히 준비해 온 기자들의 대화 내용에 대한 인터뷰이의 생각을 다른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쓰기’ 한다. 누가 과연 진지하게 준비할까. 여기에 한술 더 떠 어느 인터뷰어들은 인터뷰 중간에 부지런히 포털 사이트에 송고(?)한다. 대화를 해야하는데, 이를 거부한 채 공장처럼 ‘찍어내고’만 있는 것이다.
요즘은 인터뷰이의 사진까지 제공된다. 인터뷰이들의 풍부한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똑같은 사진에 똑같은 내용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인터뷰’(?) 내용을 쭉 검색하면 보도자료와 별 다를 바 없다. 라운드 인터뷰 현장에 안 나가도 사무실에서 대충 조합해 기사를 써도 될 분위기다. 어차피 인터뷰이들도 수십개 매체를 모두 기억 못할 것이고, 홍보사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나가면 좋은 상황에 걸맞으니, 날씨 안 좋은 날은 가끔 이런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연예인 소속사나 제작사, 홍보사도 할 말은 있다. 매체가 너무 많으니 일대일 인터뷰를 진행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그 없는 시간 쪼개서 ‘라운드 인터뷰’라도 한다는 것이다. 오래 걸리더라도 생산적인 시간이 되는 인터뷰 보다는, 의미가 없더라도 짧게 소비성 시간이 되는 인터뷰를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한 배우가 말했다. “라운드 인터뷰를 하면 기자들이 편해요? 전 오히려 진솔하게 이야기 못해서 불편하던데”
나도 궁금하다. 라운드 인터뷰는 누가 편한 걸까. 누군가의 편안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라운드 인터뷰도, 기자들의 뻔한 질문도, 보도자료 같은 인터뷰 기사도 계속 나올 듯 싶다. 다음 주 라운드 인터뷰 일정이나 체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