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부터 이어진 도로·철도 등 대형 SOC(사회기반시설 등) 사업 발주 감소로 건설업계가 '가을 공백기'에 직면했다. GTX-B 노선과 광역도로망 사업 지연, 조달청 발주 급감으로 일감 가뭄이 깊어지자 대형 건설사들은 민간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위주로 버텨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26조원+α 규모의 SOC 예산 조기 집행과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공백기 해소에 나섰다. 특히 10월부터 시작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국 대규모 아파트·공공주택 발주에 업계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GTX-A 시운전 전철이 SRT수서역에서 동탄역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사진=연합)

14일 조달청과 LH 등에 따르면, 올 상반기부터 3분기 초까지 도로·철도 부문 예산 감축과 GTX-B 노선, 광역도로망 등 대형 인프라 사업 발주 지연으로 공공 발주 물량이 크게 줄었다. 지난 4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시설공사 발주가 단 1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과 중견건설사뿐 아니라 대형사들도 SOC 분야 일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 정부 '26조원+α' SOC 투자 신속 집행 추진

이처럼 발주 공백 속에서 정부는 14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지방중심 건설투자 보강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SOC 예산 약 26조원을 연내 조기 투입하고 내년 사업 중 약 4000억원 규모를 앞당겨 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대책에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대상 총사업비 기준금액을 26년 만에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됐다. 예타 평가 시 지역 균형발전 비중 확대와 공사비 현실화(물가변동·시장단가 신속 반영), 100억원 미만 중소공사 낙찰률 상향 등도 담겼다.

장기계속공사 지연 시 현장 유지비용 보상이나 숙련 외국인력 전용 비자(E-7-3)도 신설됐다. 건설자재 수급 안정화를 위한 AI 모니터링과 첨단 국가산단 조기 착공 지원 등 인력·자재·기술 전방위 지원책이 담겼다.

건설단체들은 환영했다. 대한건설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지역경제 회복과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종합적이고 시기적절한 대책"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다만 다주택자 규제 완화와 장기계속공사 계약 효력 보완 등 추가 제도 개선도 건의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예타 기준금액 상향은 지자체 등 공공부문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는 긍정적 조치"라며 "단가 재정비와 물가 반영 개선, 낙찰하한율 상향도 사업환경 변화를 반영한 의미 있는 보완책"이라고 평가했다.

■ 10월 LH 대규모 아파트 발주, 공공발주 공백 해소 분수령

9월은 공공 발주 공백이지만, 10월은 회복 기대를 걸고 있다. 10월 중순부터 LH의 대규모 공사 발주가 예정됐기 때문. LH는 올해 약 19조원 규모의 공사·용역 발주 계획을 세우고 3기 신도시를 포함한 공공주택 6만호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월 약 6528억원, 11월 1769억원 규모의 발주가 예정됐다.

구체적으로 LH의 10월 발주 계획을 보면 ▲경기 의왕월암 A-3BL 아파트(공분·행복주택 642호) ▲강원 횡성·우천2 공공임대주택 ▲서울 중랑구 묵동1구역, 강서구 화곡6구역, 광진구 자양3구역, 동작구 흑석8구역, 금천구 시흥동, 구로구 고척동 공공재개발 아파트 등이 있다. 또한 ▲천안 원성2구역 재개발 아파트 ▲서울 서대문구 연희2구역 리모델링(1090세대) ▲송파구 가락2동 제5단지 재건축 등, 전국 다수 지역의 신규 공급 사업이 포함돼 있다.

다만 업계는 정부의 SOC 예산 신속 집행과 LH 발주가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LH 10월 공공 발주 목록 (자료=LH, 표=손기호)

■ 건설사들, 민간 정비사업으로 버텨…그간 과열 속 수익성 우려

상반기와 3분기 초까지의 공공 발주 공백 동안 대형 건설사들은 도시정비사업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올 상반기 10대 대형사의 누적 수주액은 약 27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배 늘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 수익성 악화 얘기가 나온다.

주요 실적을 보면, 삼성물산이 한남4구역 재개발(1조5696억원), 장위8구역(1조1945억원), 신반포4차 재건축(1조310억원) 등을, 현대건설이 구리 수택동 재개발(2조8069억원), 압구정2구역 재건축(총공사비 2조7488억원) 등을, 포스코이앤씨가 성남 은행주공 재건축(1조2972억원), 이수 극동·우성 리모델링(1조9796억원) 등을 수주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사업성이 괜찮은 단지들이 시공사 선정에 나서면서 정비사업에 뛰어들었다"며 “그동안 물가 상승으로 공사비 인상 갈등을 빚었던 사업장이 꽤 있었지만 공사비 기준점이 마련되고 안정화되면서 정비사업 수주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정비사업은 대체적으로 서울 강남·한남·압구정·잠실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경쟁이 과열되고 있었다. 일부 건설사들은 수주 경쟁에서 비방전을 벌이는 등 과도한 경쟁을 벌이는 일도 나타나기도 했다. SOC 예산 편성을 건설업계가 환영한 이유다. 공공 발주가 늘어나면 과도한 경쟁이나 수익성 악화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