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21일은 세계 평화의 날이다. 이 날은 국내 학자가 건의해 만든 날이기도 해 우리나라 역시 의미가 깊은 날이다. 경희대 설립자이자 세계대학총장회의(IAUP) 의장을 지낸 고(故) 조영식 박사는 1981년 IAUP 제6차 총회에서 세계 평화의 날을 만들자 제안했고 이후 유엔에 의해 기념일로 제정됐다. 유엔은 이 날을 ‘총성 없는 날’로 부르기도 한다. 때문에 9월이 되면 세계 도처에서 현재의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평화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분쟁국가와 전쟁의 종식, 경제 평화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 모든 범국가적 평화가 결코 개인의 평화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라가 평화로울 때 국민이 평화롭다는 대전제가 깔린 세상, 그러나 반대로 국민이 불행하다면 그 나라는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세계가 거창한 평화를 말하는 때에 반대로 아주 작은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보통 평화라는 단어에 세계를 붙이거나 인류를 붙인다. 이미 우리 인식 속에 평화는 개인이 아닌 모두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평화의 쓰임새도 전쟁이나 분쟁 등 갈등이 없는 상태로 더 널리 쓰이기도 하고 전세계적으로도 평화의 중대한 의의는 국가와 국가, 세력과 세력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화두다. 때문에 요즘 평화의 의미는 평화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았을 때 두 번째로 명시된 ‘지역이나 국가가 싸우지 않는 상태’에 박제된 모양새다. 그러나 평화의 첫 의미를 보자면 그렇지 않다. 평화란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를 뜻한다. 평화의 첫 의미,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평화로운 걸까? 등줄기를 타고 진땀이 흐르는 상황,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게 만드는 개인적 분노, 좀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숨가쁜 일정의 연속…. 우리의 작은 평화를 저해하는 요소는 비단 전쟁과 같은 국가의 위기가 아니더라도 차고 넘친다. 현재의 사회 안에서 우리는 좀처럼 평화를 찾을 수 없다. 가장 먼저 생계와 긴밀하게 연결된 취업이라는 화두는 정부의 숙제가 된지 오래다. 각박하고 팍팍한 삶에 결혼부터 집마련까지 기성세대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포기하는 N포세대가 등장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세금을 쏟아 부어 만들어낸 일자리는 생계를 이어갈 만한 수익형이나 경제의 허리로 불리는 20~40대 일자리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비난에 직면한 상태다. 사진=픽사베이 그렇다고 해서 일자리를 마련한 이가 미취업자나 실업자에 비해 평화롭다고도 할 수 없다. 취업자들에게도 평화란 파랑새를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취업을 한 이들 중 직장 내 괴롭힘, 위장도급과 같은 비정상적이고 차별적인 처우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근로시간이나 임금문제는 취업자들의 최대 투쟁 안건이다. 그런가 하면 창업을 한 이도 각종 갑질에 고통 받다 거리로 나서기 일쑤다. 평화는 마음에서 찾는 것이라지만 이처럼 사회구조와 관행, 경제 악화 등이 사람들을 평화롭지 못하게 만든다. 개인의 삶을 들여다봐도 작은 평화를 위한 노력은 필요한 상황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고 1인 가구가 늘며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 비혼 가구나 1인 가구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로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584만 가구로 전체 가구 중 29.3%를 차지했다. 2000년과 비교하면 20년새 2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따라 무연고자 사망자 수 및 고독사 비율도 크게 늘었다. 지난 5년 사이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나 무연고자 사망자나 고독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외로운 죽음은 무연고자 사망이나 고독사 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자살자 역시 좀처럼 줄어들지 못하는 모양새다. 2017년에만 1만 2643명이 자살로 이 생을 떠났다. 하루 평균 43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 것이다. 이는 교통사고로 황망히 세상을 떠난 사망자보다 세배 많은 수치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또 어떤가. 미사일과 최첨단 무기만이 공포는 아니다. 숱한 사망자를 양산하는 폭염,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 환경오염이 부른 기후 변화로 잦아지는 자연재해의 습격, 언제 인간을 덮칠지 모르는 쓰레기의 산적 등도 일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공포다. 물론 이처럼 부정적인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2019년 한국 사회의 화두들이고 모두 평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매년 평화의 날에 지구촌의 평화를 부르짖지만, 지구촌의 평화는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어쩌면 정작 우리 주변의 평화는 등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상의 평화를 지키는 일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내실있는 국가, 복지가 탄탄한 기업, 서로의 고통을 들여다볼 줄 아는 인간관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환경보호 노력 등은 365일 중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사실 이것도 거창한 평화일지 모른다. 세계 평화의 날, 세계 평화를 걱정하고 주목하는 동시에 한번쯤 ‘내가 살아가는 곳’에 대한 평화를 곱씹어보는 것은 어떨까.

[문다영의 세태공감] 우리의 작은 평화는 지켜지고 있나요?

문다영 기자 승인 2019.09.20 10:19 | 최종 수정 2019.09.27 14:28 의견 0
사진=픽사베이


21일은 세계 평화의 날이다. 이 날은 국내 학자가 건의해 만든 날이기도 해 우리나라 역시 의미가 깊은 날이다. 경희대 설립자이자 세계대학총장회의(IAUP) 의장을 지낸 고(故) 조영식 박사는 1981년 IAUP 제6차 총회에서 세계 평화의 날을 만들자 제안했고 이후 유엔에 의해 기념일로 제정됐다. 유엔은 이 날을 ‘총성 없는 날’로 부르기도 한다. 때문에 9월이 되면 세계 도처에서 현재의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평화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분쟁국가와 전쟁의 종식, 경제 평화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 모든 범국가적 평화가 결코 개인의 평화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라가 평화로울 때 국민이 평화롭다는 대전제가 깔린 세상, 그러나 반대로 국민이 불행하다면 그 나라는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세계가 거창한 평화를 말하는 때에 반대로 아주 작은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보통 평화라는 단어에 세계를 붙이거나 인류를 붙인다. 이미 우리 인식 속에 평화는 개인이 아닌 모두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평화의 쓰임새도 전쟁이나 분쟁 등 갈등이 없는 상태로 더 널리 쓰이기도 하고 전세계적으로도 평화의 중대한 의의는 국가와 국가, 세력과 세력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화두다. 때문에 요즘 평화의 의미는 평화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았을 때 두 번째로 명시된 ‘지역이나 국가가 싸우지 않는 상태’에 박제된 모양새다. 그러나 평화의 첫 의미를 보자면 그렇지 않다. 평화란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를 뜻한다.

평화의 첫 의미,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평화로운 걸까? 등줄기를 타고 진땀이 흐르는 상황,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게 만드는 개인적 분노, 좀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숨가쁜 일정의 연속…. 우리의 작은 평화를 저해하는 요소는 비단 전쟁과 같은 국가의 위기가 아니더라도 차고 넘친다.

현재의 사회 안에서 우리는 좀처럼 평화를 찾을 수 없다. 가장 먼저 생계와 긴밀하게 연결된 취업이라는 화두는 정부의 숙제가 된지 오래다. 각박하고 팍팍한 삶에 결혼부터 집마련까지 기성세대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포기하는 N포세대가 등장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세금을 쏟아 부어 만들어낸 일자리는 생계를 이어갈 만한 수익형이나 경제의 허리로 불리는 20~40대 일자리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비난에 직면한 상태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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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일자리를 마련한 이가 미취업자나 실업자에 비해 평화롭다고도 할 수 없다. 취업자들에게도 평화란 파랑새를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취업을 한 이들 중 직장 내 괴롭힘, 위장도급과 같은 비정상적이고 차별적인 처우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근로시간이나 임금문제는 취업자들의 최대 투쟁 안건이다. 그런가 하면 창업을 한 이도 각종 갑질에 고통 받다 거리로 나서기 일쑤다. 평화는 마음에서 찾는 것이라지만 이처럼 사회구조와 관행, 경제 악화 등이 사람들을 평화롭지 못하게 만든다.

개인의 삶을 들여다봐도 작은 평화를 위한 노력은 필요한 상황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고 1인 가구가 늘며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 비혼 가구나 1인 가구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로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584만 가구로 전체 가구 중 29.3%를 차지했다. 2000년과 비교하면 20년새 2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따라 무연고자 사망자 수 및 고독사 비율도 크게 늘었다. 지난 5년 사이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나 무연고자 사망자나 고독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외로운 죽음은 무연고자 사망이나 고독사 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자살자 역시 좀처럼 줄어들지 못하는 모양새다. 2017년에만 1만 2643명이 자살로 이 생을 떠났다. 하루 평균 43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 것이다. 이는 교통사고로 황망히 세상을 떠난 사망자보다 세배 많은 수치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또 어떤가. 미사일과 최첨단 무기만이 공포는 아니다. 숱한 사망자를 양산하는 폭염,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 환경오염이 부른 기후 변화로 잦아지는 자연재해의 습격, 언제 인간을 덮칠지 모르는 쓰레기의 산적 등도 일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공포다.

물론 이처럼 부정적인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2019년 한국 사회의 화두들이고 모두 평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매년 평화의 날에 지구촌의 평화를 부르짖지만, 지구촌의 평화는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어쩌면 정작 우리 주변의 평화는 등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상의 평화를 지키는 일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내실있는 국가, 복지가 탄탄한 기업, 서로의 고통을 들여다볼 줄 아는 인간관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환경보호 노력 등은 365일 중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 사실 이것도 거창한 평화일지 모른다. 세계 평화의 날, 세계 평화를 걱정하고 주목하는 동시에 한번쯤 ‘내가 살아가는 곳’에 대한 평화를 곱씹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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