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KBS
어머니의 기억.
새색시는 시집을 오자마자 기가 막혔다. 제사를 위해 준비하던 탕국을 보고 나서였다. 가마솥 안에서 끓고 있는 탕국 안에는 육지,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었다. 제사를 어깨 넘어 배워왔던 충청도 처자는 심히 궁금해졌다. ‘이 집안은 과연 제사를 옳게 지내는 양반 집안이 맞는지’.
시집올 때 9남매의 장남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리고 시집와서 직접 눈으로 보게 된 것은 시골에서 봤던 동네 집들보다 가난해 보이는 집의 비루함. 그러나 가난보다 더 심하게 새색시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일력지를 뜯어 뒷간에서 사용하던 집에서, 끼니를 매일 걱정하던 그 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갈급함은 연간 열 한번 지내는 제사, 그것이었다.
제사가 끝나고 병풍을 거두고 제사상을 치우고 식사를 하게 되면 새벽 두 시가 넘는 것은 다반사였다. 제사에 대한 기억은 오전부터 벌어지는 술자리. 오후쯤 생기는 집안 대소사에 대한 불화, 선산을 어떻게 하느니, 축대를 쌓아야 한다느니. 그러나 결국 선산은 장손도 모르게 누군가가 팔아버렸다.
평생 시어머니의 저주 어린 독설을 받아가며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는 그 지긋지긋한 제사가 원망스럽지도 않으신지 제사를 지내지 않는 2019년 명절에도 친히 제사음식을 만드신다. 물론 제를 올리기 위함이 아닌 가족이 나누어 먹던 그 시절을 기리기 위함이다. 조상을 기리기 위함이 아니다.
안동의 음식은 딱히 자랑할 것이 없다. 그나마 이름을 알리고 있는 것은 헛제삿밥이다. 잘못 알고 있던 이름이다.
‘바다에 나갈 때 그곳에서 죽은 망자들을 달래기 위해 올리는 밥’ 정도로 알고 있었다. 원뜻은 ‘제사가 아닐 때 도 제사밥을 먹기 위해 만든 밥’ 이라고 한다. 그래서 앞에 ‘헛’ 자를 붙이는 듯하다. 가짜 제삿밥. 유생들이 모여 살던 양반의 고향이다. 양반의 상보다 더 격식을 차린 음식. 자세히 보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음식들은 특성이 있다. 음식의 맛보다는 격식을 위해 만드는 음식들이 많다. 좋은 소고기를 가져와 기껏 한다는 것이 간장에 졸여 네모난 모양으로 켜켜이 올린다. 가끔은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옥춘이라고 불리는 사탕도 마찬가지이다. 귀신을 멀리하려는 색을 품고 있을 뿐이지. 그 사탕채로 맛이 있다고 생각해 본적 없었다.
안동에는 간잽이라고 불리는 염장 명인이 있다. 명인이 만드는 것은 고등어에 소금간을 적절히 해서 보관을 길게 하고 맛을 응축시킨 간고등어라는 음식이다. 간고등어의 유래는 해안가에서 잡힌 고등어를 손에 들고 산맥을 넘어 내륙으로 올 때, 장기간 보관하기 어려운 생선을 보관하기 위해 소금에 절인 모양새가 그 유래다. 음식의 보존을 유지하기 위해 소금에 절여서 들고 온 서민의 음식 , 간고등어.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헛제삿밥, 양반의 가계를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 가례에 따라 상을 만들어 온 양반의 음식. 둘 다 안동의 음식이다. 양반의 밥상과 서민의 찬이 한상에 오르는 날이 왔다.
양반은 지배구조의 특성상 양반의 수가 피지배층의 그것보다 적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래되어오는 음식의 문화는 음식향유계층이 두터울수록 후대로 전해지는 내용이 풍성한 법이다. 그러나 지금 전해지고 있는 헛제사밥은 양반만이 먹어온 음식이나. 양반제가 겉으로는 없어진 지금도 양반의 밥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많은 음식총서들이 백성의 삶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을 한다. 백성들은 과연 무엇을 먹고 살아왔는가.
물음이 생겼다.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양반’ 이라고 불리는 지배계층의 역사는 사관이 옳게 기록한 역사인가. 아니면 어딘가에서 그 순혈성을 상실하고 이어져 온 역사인가.
며칠 전 TV에서 본 태국의 음식이 기억났다. 자스민 물에 안남미를 말아서 우리나라의 짠지와 비슷한 반찬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화면으로 본 그 음식에 대한 소회는 ‘맛을 포기하고 제례를 기리는 음식이다. 쌀 씻기를 반복하여 쌀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은 전부 씻겨나가고 남은 것은 쌀의 모양뿐이다. 그렇게 남은 탄수화물 덩어리를 향이 나는 물에 담가 정중하게 음복하는 과정의 음식이다. 우리의 헛제사밥이다. 자스민의 향을 먹는 것도 아니고 안남미를 씹는 것도 아니다. 제사장의 이름을 먹는 것이다.
제사를 기리는 우리는 사실 가짜를 모시고 사는지도 모른다. 권위, 정통성, 역사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혼돈의 시대에 가짜 마운트에 몸을 묶어 배제의 공포라는 파도에서 버티기 위함이다.
사진=안동국시
소호정, 안동국시 집이다. 여의도에 있고 대치동은 고즈넉하다. 본점은 대치동이다. 근거리에 두 곳을 운영할 정도로 명성이 있는 집이다. 식사시간에 닿아 자리를 찾으면 가족단위 , 혹은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국시 하나, 생선전, 문어숙회 등을 놓고 막걸리 한잔을 즐기고 계신다. 우연은 아닌 듯 하고 메뉴구성에서 안동 제사상을 느낄 수 있다.
저잣거리에서 도는 음식이야기를 올려본다. 국수라는 음식은 공들여서 만들 음식이 아니다. 양반이 점잖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후루룩 마셔야 하는 음식이다. 양반의 권위가 곁들여진 밀가루 음식이라. 왠지 모르겠지만 정갈한 칼국수집에서 모순의 역사가 느껴진다. 꾸미역시 마찬가지다. 입에 넣으면 살살 녹듯이 정성을 다했다. 공들여 삶은 고기에서 안동 양반가 음식의 정갈함을 느낀다. 도축장에서 막 끊어온 듯한 거친 매력을 보여주던 함평의 국밥과는 다른 매력이다. 밀가루 음식이 양반의 도포를 입고 섬세해졌다. 역사가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밀가루 음식이 유명해진 것은 잉여농산물원조법이 적용되어 밀가루가 서민들의 식자재로 자리 잡은 70년대 이후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의 안동국시집이 역사를 팔고 있다. 남의 역사를 가져다 팔다보니 아름다운 권위만 남았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음식의 서사. 양반에게서 배반의 역사를 가져다 밥을 짓고 , 상놈이 부지런히 먹어야 할 국수와 장국 한 그릇을 양반의 도시의 이름으로 땅값마저 비싼 곳에서 판다.
어차피 이 땅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고 땅을 위하고 후손을 다독이는 제사장이 실존했는지도 의문이다. 역사와 전통이 없는 것들이 남의 역사에 자기를 숨긴다. 언제쯤 제사상에서 음식을 내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