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 이복현 금감원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23.11.9(자료=연합뉴스) 기자 초년병 시절, 단독 기사에 혈안이 돼 있는 저에게 선배가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다 좋은데, 네 기사로 누가 혜택을 보는 거야?” 순간, 둔기에 맞은 것처럼 머리에 충격이 왔습니다. 당시 제 머릿 속엔 단독이냐, 아니냐만 들어 있었지, 내가 쓴 기사가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이로워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선배는 그런 저에게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기사는 안 쓰느니만 못하다’는 깨우침을 줬습니다. 물론 당장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미래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선 선배의 판단이 반드시 옳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이익보다 기자의 이익을 더 중시해서는 안 된다는 당시 가르침은 이후 기사를 쓰거나 기획을 준비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지난 2년 넘도록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니, 한 사람의 우군도 더 필요한 마당에 왜 자꾸 내 편을 내치는 거지?’. 윤 대통령은 당선에 큰 도움을 받았던 안철수 인수위원장을 헌신짝처럼 버렸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친윤 세력을 동원해 내쳤습니다. 이후 당대표 선거 때도 자기 사람을 당선시키려 나경원 후보를 강제로 주저앉혔습니다. 지금은 구원투수로 불러들여 큰 도움을 받았던 한동훈 대표가 못마땅해 미칠 지경이라고 합니다. 대충 주요 인물만 정리해도 이 정도입니다. ‘덧셈의 정치’를 해도 모자랄 판에 ‘뺄셈’도 이런 ‘뺄셈’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회사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을 보면서 오랜 의문의 실마리가 조금 풀리는 느낌입니다. 검사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잡아내 현재에 대가를 치르게 하는 직업입니다. 미래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미래는 원고든 피고든 타인의 몫일 뿐, 검사가 크게 신경 쓰거나 관여할 부분이 아닙니다. 적어도 법리로만 보면 그렇습니다. 현재 이복현 원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과 그에 대한 현재의 대가(징계)인 것 같습니다. 금융권 전반의 미래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금융당국자라면 공정한 금융시장 환경 조성과 더불어 금융산업의 미래도 고려해야 하건만 그런 취지의 발언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울의 무게추가 과거와 현재에만 심하게 치우친 것 아닌가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 또한 미래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현재의 기분대로 일을 처리하면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지 예견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듯합니다. 이준석 대표를 내치고 난 뒤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독한 야당 탄생’이라는 부메랑을 맞아 봤으면 깨달은 바가 있을 법도 한데 다시 한동훈 대표와 각을 세우지 못해 안달입니다. 이 정도면 아집도 아닌, 아둔함으로 볼 도리밖에 없습니다. 검사는 모든 이를 적으로 돌려도 삶에 큰 지장이 없습니다. 월급은 세금에서 나오고 승진은 상사가 시켜줍니다. 모시는 상사에게만 인정받으면 탄탄대로에 큰 걸림돌은 없습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살아온 윤 대통령은 동지를 적으로 돌리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복현 원장 또한 금융권 전체의 원망을 살만한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일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윤 대통령은 아내를 포함해 소수 측근에게만 인정받으면 그만이고, 이복현 원장 역시 대통령에게만 인정받으면 그만인 듯한 행보를 보입니다. 어차피 월급은 세금에서 나오고 승진은 더 이상 올라갈 데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요. 기자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첫 검사 출신 대통령의 탄생에 큰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사회가 더 공정해지고 삶이 더 편안해질 것이란 기대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현재, 적어도 기자의 기대감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뺄셈의 정치’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특정 직업인으로 오래 살다 보면 가랑비에 속옷 젖듯 부지불식간 몸에 직업의 특성이 배기 마련입니다. 교사는 매사에 가르치려 들고, 과학자는 항시 분석하려 듭니다. 같은 맥락으로 검사는 매사에 벌을 주려 드는 사람들 같습니다. 유권자들이 벌을 받으려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건 아닐 텐데 말이죠. 기자가 단독기사 못지않게 독자의 혜택을 고려해야 하듯 정치인은 과거와 현재 못지않게 미래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법의 논리도 있지만 시장의 논리, 정치의 논리도 존재합니다. 법이 항상 상식을 앞설 순 없습니다. 급변의 시대, 리더의 직관력(intuition)과 통찰력(insight)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 세상을 더 높은 곳에서, 더 넓게 바라보며, 안목과 통찰력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PS. 같은 검사 출신이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결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월급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자이고, 승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속칭 ‘독고다이(무리에 어울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해 홀로 일을 처리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입니다. 그래서 걱정스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포르코의 뷰] 검사의 정치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9.11 13:00 | 최종 수정 2024.09.21 19:18 의견 0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 이복현 금감원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23.11.9(자료=연합뉴스)


기자 초년병 시절, 단독 기사에 혈안이 돼 있는 저에게 선배가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다 좋은데, 네 기사로 누가 혜택을 보는 거야?”

순간, 둔기에 맞은 것처럼 머리에 충격이 왔습니다. 당시 제 머릿 속엔 단독이냐, 아니냐만 들어 있었지, 내가 쓴 기사가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이로워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선배는 그런 저에게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기사는 안 쓰느니만 못하다’는 깨우침을 줬습니다.

물론 당장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미래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선 선배의 판단이 반드시 옳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이익보다 기자의 이익을 더 중시해서는 안 된다는 당시 가르침은 이후 기사를 쓰거나 기획을 준비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지난 2년 넘도록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니, 한 사람의 우군도 더 필요한 마당에 왜 자꾸 내 편을 내치는 거지?’.

윤 대통령은 당선에 큰 도움을 받았던 안철수 인수위원장을 헌신짝처럼 버렸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친윤 세력을 동원해 내쳤습니다. 이후 당대표 선거 때도 자기 사람을 당선시키려 나경원 후보를 강제로 주저앉혔습니다. 지금은 구원투수로 불러들여 큰 도움을 받았던 한동훈 대표가 못마땅해 미칠 지경이라고 합니다. 대충 주요 인물만 정리해도 이 정도입니다. ‘덧셈의 정치’를 해도 모자랄 판에 ‘뺄셈’도 이런 ‘뺄셈’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회사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을 보면서 오랜 의문의 실마리가 조금 풀리는 느낌입니다.

검사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잡아내 현재에 대가를 치르게 하는 직업입니다. 미래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미래는 원고든 피고든 타인의 몫일 뿐, 검사가 크게 신경 쓰거나 관여할 부분이 아닙니다. 적어도 법리로만 보면 그렇습니다.

현재 이복현 원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과 그에 대한 현재의 대가(징계)인 것 같습니다. 금융권 전반의 미래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금융당국자라면 공정한 금융시장 환경 조성과 더불어 금융산업의 미래도 고려해야 하건만 그런 취지의 발언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울의 무게추가 과거와 현재에만 심하게 치우친 것 아닌가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 또한 미래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현재의 기분대로 일을 처리하면 미래에 어떤 일이 닥칠지 예견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듯합니다. 이준석 대표를 내치고 난 뒤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독한 야당 탄생’이라는 부메랑을 맞아 봤으면 깨달은 바가 있을 법도 한데 다시 한동훈 대표와 각을 세우지 못해 안달입니다. 이 정도면 아집도 아닌, 아둔함으로 볼 도리밖에 없습니다.

검사는 모든 이를 적으로 돌려도 삶에 큰 지장이 없습니다. 월급은 세금에서 나오고 승진은 상사가 시켜줍니다. 모시는 상사에게만 인정받으면 탄탄대로에 큰 걸림돌은 없습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살아온 윤 대통령은 동지를 적으로 돌리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복현 원장 또한 금융권 전체의 원망을 살만한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일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윤 대통령은 아내를 포함해 소수 측근에게만 인정받으면 그만이고, 이복현 원장 역시 대통령에게만 인정받으면 그만인 듯한 행보를 보입니다. 어차피 월급은 세금에서 나오고 승진은 더 이상 올라갈 데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요.

기자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첫 검사 출신 대통령의 탄생에 큰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사회가 더 공정해지고 삶이 더 편안해질 것이란 기대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현재, 적어도 기자의 기대감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뺄셈의 정치’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특정 직업인으로 오래 살다 보면 가랑비에 속옷 젖듯 부지불식간 몸에 직업의 특성이 배기 마련입니다. 교사는 매사에 가르치려 들고, 과학자는 항시 분석하려 듭니다. 같은 맥락으로 검사는 매사에 벌을 주려 드는 사람들 같습니다. 유권자들이 벌을 받으려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건 아닐 텐데 말이죠.

기자가 단독기사 못지않게 독자의 혜택을 고려해야 하듯 정치인은 과거와 현재 못지않게 미래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법의 논리도 있지만 시장의 논리, 정치의 논리도 존재합니다. 법이 항상 상식을 앞설 순 없습니다.

급변의 시대, 리더의 직관력(intuition)과 통찰력(insight)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 세상을 더 높은 곳에서, 더 넓게 바라보며, 안목과 통찰력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PS. 같은 검사 출신이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결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월급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자이고, 승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속칭 ‘독고다이(무리에 어울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해 홀로 일을 처리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입니다. 그래서 걱정스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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