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과 세금 제도가 복잡해지면서 금융 소비자들에게 주택담보대출 선택은 점점 고차방정식이 되어 가고 있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만으로 대출을 받는 것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자료=금융감독원) “브라질은 1년에 세금 관련 법이 800번 바뀝니다. 어떨 때는 하루에 3~4번 바뀝니다. 그래서 (똑 부러진) 세금 관리 변호사가 26명밖에 없어요.” 최근 모 방송 프로그램에선 3살 때 아버지를 따라 브라질로 이민 간 아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스토리를 다뤘다. 브라질에서 세금 전문 변호사였던 그는 많을 때는 한 해 2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매일 법이 바뀌는 탓에 제대로 일 처리를 할 수 있는 변호사가 거의 없다보니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시스템을 어떻게 갖추었길래 하루에 법을 3~4번 바꿀 수 있는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실제 살다 온 사람이 공영방송에서 한 얘기이니 과장이 좀 있을지언정 거짓은 아닐 것이다. 브라질의 치안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법과 제도가 ‘조변석개’ 한다는 것은 이번에 새롭게 알았다. 브라질이 광활한 국토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못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렷다. 타산지석 삼아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본다. 과연 브라질과 많이 다를까. 적어도 교육과 부동산 부문에 있어서 만큼은 크게 다르다고 하기 힘들 것 같다. 대표적으로 2002년 도입된 LTV(담보인정비율)만 하더라도 60%로 시작해 40%, 50%, 70% 등 정권 입맛대로 주물러댔다. 그때그때 수도권과 지방,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과 경기, 서울 중에서도 강남과 강북에 차등을 두더니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급기야 0%를 선언했다. 지역뿐만 아니라 주택 가격에도 차등 적용해 가뜩이나 복잡한 제도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DTI(총부채상환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까지 도입하니 경우의 수는 급격히 늘었다. 대출뿐만 아니라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 등 세금 쪽 경우의 수도 만만치 않게 복잡해졌다. 부동산 거래의 필수 두 요소인 대출과 세금 두 영역을 오버랩시키면 고려해야 할 숫자들이 거의 난수표에 가까워진다. 정권과 결탁한 관료들의 숫자놀음에 서민들은 이제 순수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공인중개사에게 물어봐도 자신 있게 답을 못 내린다. 거래하는 세무사에게 물어본 뒤 답을 주겠다고 한다. 세무사는 방송에 나와 법적 다툼이 있는 사안이라며 법원 판결 운운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법과 제도의 조변석개 사정은 매한가지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의 필수 요소가 된 주택담보대출은 만기가 기본 30년이다. 한 번 신청하면 30년 동안 갚아야 한다. 아파서 잠시 일을 쉬고 싶어도, 번아웃으로 심신에 재충전이 필요해도 빚 갚을 걱정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내 인생의 향후 30년을 좌우하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선택한 대출이 공정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허탈감을 넘어 큰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시장의 금리가 올라 원리금이 올라가는 것은 힘들지언정 억울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잦은 제도 변경으로 유·불리가 갈리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어느 날 갑자기 LTV 0%가 돼 현금 없인 집을 살 수 없게 됐다면? 주택가격, 소득, 금리 등등 꼼꼼히 따져 대출을 받았는데 다음 달 갑자기 훨씬 좋은 조건의 특례 상품이 나온다면? 은행 대출에 문제가 없다는 중개사의 말을 믿고 계약까지 마쳤는데 규제 강화로 갑자기 대출이 안 나온다면? 이건 힘든 일이 아니라 억울한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수요자들은 부동산 시장을 ‘정상적 시장’이 아닌 ‘복불복 시장’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도박판’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는 ‘스트레스 DSR’ 도입을 발표했다. 공청회 등 국민 공감대 형성 과정을 생략한 일방적 발표에 가까웠다. 나라에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테니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었다. 미래 금리변동 위험을 줄여준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금융 이용자들에게는 ‘대출한도 축소’로 받아들여졌다. 집 사기 점점 힘들어지니 기회 있을 때 잘 잡으라는 신호였다.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대책이 주택 수요 자극 대책으로 변질된 것이다. 지난 5~6월 서울 아파트 거래 급증은 시장금리 하락 영향도 있었지만 ‘스트레스 DSR’도 크게 한몫했다. 게다가 금융위는 7월 시행을 앞두고 1주일 전 갑자기 9월 시행으로 바꿨으니 ‘막차타기’ 열풍은 7~8월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제도가 자주 바뀌기로는 교육 분야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대학입시 제도의 잦은 변경으로 수험생들은 과거 큰 혼란에 빠졌다. 고육지책으로 도입된 것이 ‘대입 사전예고제’다. 바뀐 제도의 적용은 고등학생이 아닌 중학교 3학년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사전예고제 도입 전에는 고교 재학 기간 내내 입시제도 변경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제도 변경에 따른 유·불리를 따지다 본업인 학업이 소홀해질 지경이었다. 대학입시가 공평하다고 느끼는 수험생과 학부모는 극히 드물었다. 운 좋으면 합격하고, 운 나쁘면 떨어지는 ‘복불복’ 입시였다. 교육 분야에서 ‘사전예고제’는 이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장관이 아무리 의욕이 앞서도 ‘사전예고제’는 잘 건드리지 않는다. 설사 문제가 많은 제도일지언정 ‘조변석개’ 리스크는 크게 줄어들었다. 부동산 분야에도 사전예고제와 비슷한 그 무언가가 필요해 보인다. LTV, DTI, DSR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당국자들은 ‘시시각각 급변하는 시장상황’을 이유로 부정적인 이유를 한가득 댈 것이다. 하지만 정권과(에) 결탁(굴복)한 당국자들의 ‘숫자놀음’에 시장은 이미 공정성을 잃었다. 교육이나 부동산이나 서민들에게는 ‘복불복’의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당국자들은 시장을 움직이며 희열을 느낀다. 시장을 움직이려면 무기가 필요하다. 규제는 당국자들의 무기다. 바뀌는 정권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려면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무기가 자주 바뀌고 많이 쓰일수록 시장은 망가진다. 극단적인 예가 브라질이다. 부동산 영역에서는 한국도 오십보 백보다. 선진국들은 무기가 많지만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다. 무기를 다루는 솜씨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른다. 수익과 손실이 발생하는 게 시장이다. 아쉬움은 있어도 억울함이 있어선 안 된다. 불공정한 시장에서는 억울한 이들 천지다. 억울함이 쌓이면 분노가 된다. 분노는 선거 결과를 바꾼다. 이번 정부에서도 분노 지수가 치솟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포르코의 뷰] 1년에 세법 800번 바뀐다는 브라질, 한국은 다를까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7.22 09:57 의견 0
대출과 세금 제도가 복잡해지면서 금융 소비자들에게 주택담보대출 선택은 점점 고차방정식이 되어 가고 있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만으로 대출을 받는 것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자료=금융감독원)


“브라질은 1년에 세금 관련 법이 800번 바뀝니다. 어떨 때는 하루에 3~4번 바뀝니다. 그래서 (똑 부러진) 세금 관리 변호사가 26명밖에 없어요.”

최근 모 방송 프로그램에선 3살 때 아버지를 따라 브라질로 이민 간 아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스토리를 다뤘다. 브라질에서 세금 전문 변호사였던 그는 많을 때는 한 해 2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매일 법이 바뀌는 탓에 제대로 일 처리를 할 수 있는 변호사가 거의 없다보니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시스템을 어떻게 갖추었길래 하루에 법을 3~4번 바꿀 수 있는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실제 살다 온 사람이 공영방송에서 한 얘기이니 과장이 좀 있을지언정 거짓은 아닐 것이다. 브라질의 치안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법과 제도가 ‘조변석개’ 한다는 것은 이번에 새롭게 알았다. 브라질이 광활한 국토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못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렷다.

타산지석 삼아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본다. 과연 브라질과 많이 다를까. 적어도 교육과 부동산 부문에 있어서 만큼은 크게 다르다고 하기 힘들 것 같다.

대표적으로 2002년 도입된 LTV(담보인정비율)만 하더라도 60%로 시작해 40%, 50%, 70% 등 정권 입맛대로 주물러댔다. 그때그때 수도권과 지방,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과 경기, 서울 중에서도 강남과 강북에 차등을 두더니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급기야 0%를 선언했다. 지역뿐만 아니라 주택 가격에도 차등 적용해 가뜩이나 복잡한 제도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DTI(총부채상환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까지 도입하니 경우의 수는 급격히 늘었다. 대출뿐만 아니라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 등 세금 쪽 경우의 수도 만만치 않게 복잡해졌다.

부동산 거래의 필수 두 요소인 대출과 세금 두 영역을 오버랩시키면 고려해야 할 숫자들이 거의 난수표에 가까워진다. 정권과 결탁한 관료들의 숫자놀음에 서민들은 이제 순수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공인중개사에게 물어봐도 자신 있게 답을 못 내린다. 거래하는 세무사에게 물어본 뒤 답을 주겠다고 한다. 세무사는 방송에 나와 법적 다툼이 있는 사안이라며 법원 판결 운운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브라질이나 한국이나 법과 제도의 조변석개 사정은 매한가지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의 필수 요소가 된 주택담보대출은 만기가 기본 30년이다. 한 번 신청하면 30년 동안 갚아야 한다. 아파서 잠시 일을 쉬고 싶어도, 번아웃으로 심신에 재충전이 필요해도 빚 갚을 걱정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내 인생의 향후 30년을 좌우하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선택한 대출이 공정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허탈감을 넘어 큰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시장의 금리가 올라 원리금이 올라가는 것은 힘들지언정 억울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잦은 제도 변경으로 유·불리가 갈리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어느 날 갑자기 LTV 0%가 돼 현금 없인 집을 살 수 없게 됐다면? 주택가격, 소득, 금리 등등 꼼꼼히 따져 대출을 받았는데 다음 달 갑자기 훨씬 좋은 조건의 특례 상품이 나온다면? 은행 대출에 문제가 없다는 중개사의 말을 믿고 계약까지 마쳤는데 규제 강화로 갑자기 대출이 안 나온다면?

이건 힘든 일이 아니라 억울한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수요자들은 부동산 시장을 ‘정상적 시장’이 아닌 ‘복불복 시장’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도박판’이 되는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는 ‘스트레스 DSR’ 도입을 발표했다. 공청회 등 국민 공감대 형성 과정을 생략한 일방적 발표에 가까웠다. 나라에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테니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었다. 미래 금리변동 위험을 줄여준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금융 이용자들에게는 ‘대출한도 축소’로 받아들여졌다. 집 사기 점점 힘들어지니 기회 있을 때 잘 잡으라는 신호였다.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대책이 주택 수요 자극 대책으로 변질된 것이다. 지난 5~6월 서울 아파트 거래 급증은 시장금리 하락 영향도 있었지만 ‘스트레스 DSR’도 크게 한몫했다. 게다가 금융위는 7월 시행을 앞두고 1주일 전 갑자기 9월 시행으로 바꿨으니 ‘막차타기’ 열풍은 7~8월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제도가 자주 바뀌기로는 교육 분야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대학입시 제도의 잦은 변경으로 수험생들은 과거 큰 혼란에 빠졌다. 고육지책으로 도입된 것이 ‘대입 사전예고제’다. 바뀐 제도의 적용은 고등학생이 아닌 중학교 3학년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사전예고제 도입 전에는 고교 재학 기간 내내 입시제도 변경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제도 변경에 따른 유·불리를 따지다 본업인 학업이 소홀해질 지경이었다. 대학입시가 공평하다고 느끼는 수험생과 학부모는 극히 드물었다. 운 좋으면 합격하고, 운 나쁘면 떨어지는 ‘복불복’ 입시였다.

교육 분야에서 ‘사전예고제’는 이제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장관이 아무리 의욕이 앞서도 ‘사전예고제’는 잘 건드리지 않는다. 설사 문제가 많은 제도일지언정 ‘조변석개’ 리스크는 크게 줄어들었다. 부동산 분야에도 사전예고제와 비슷한 그 무언가가 필요해 보인다. LTV, DTI, DSR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당국자들은 ‘시시각각 급변하는 시장상황’을 이유로 부정적인 이유를 한가득 댈 것이다. 하지만 정권과(에) 결탁(굴복)한 당국자들의 ‘숫자놀음’에 시장은 이미 공정성을 잃었다. 교육이나 부동산이나 서민들에게는 ‘복불복’의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당국자들은 시장을 움직이며 희열을 느낀다. 시장을 움직이려면 무기가 필요하다. 규제는 당국자들의 무기다. 바뀌는 정권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려면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무기가 자주 바뀌고 많이 쓰일수록 시장은 망가진다. 극단적인 예가 브라질이다. 부동산 영역에서는 한국도 오십보 백보다. 선진국들은 무기가 많지만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다. 무기를 다루는 솜씨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른다.

수익과 손실이 발생하는 게 시장이다. 아쉬움은 있어도 억울함이 있어선 안 된다. 불공정한 시장에서는 억울한 이들 천지다. 억울함이 쌓이면 분노가 된다. 분노는 선거 결과를 바꾼다. 이번 정부에서도 분노 지수가 치솟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992년 내놓은 ‘붉은돼지(紅豚)’에서 주인공 포르코 로소(Porco Rosso)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포르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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