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소형 SAR위성 이미지 (사진=한화시스템)
■ 실적으로 증명한 M&A…‘외면’을 기회로 바꾼 새 판 짜기
한화그룹의 인수합병(M&A)은 덩치를 키운게 게 아니라 판을 키웠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한화오션 등 핵심 계열사는 단순한 몸집 불리기를 넘어, 국가 전략산업의 키를 쥐고 글로벌로 판을 넓히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조선업 위기에 빠진 대우조선해양, 굳이 인수할 필요가 있었을까?’, ‘재생에너지, 특히 변덕스러운 태양광은 언제 돈이 될지 모른다’는 비판도 따랐다. 그러나 한화오션은 10조원 매출은 기본으로 고부가가치 LNG선에 더해 방산 함정 수주까지 확보하며 조선업 재편의 승자로 떠올랐다. 한화솔루션은 ‘전방위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하며 이재명 대통령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 수혜주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의 확장은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산업 전장으로 뻗어가고 있다. 단순 수출을 넘어서 공급망·현지 생산·정책 수혜까지 고려한 ‘지정학적 확장’이 특징이다. 방산 부문에서 폴란드, 호주, 루마니아 등과의 수조 원 규모 계약을 체결해 단순한 무기 수출이 아니라 자주포·장갑차·전투함정 등 ‘육해공 통합 전투 패키지’ 수출이 가능해졌다.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한화큐셀의 태양광 모듈 생산기지는 IRA 세제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 태양광 설치, ESS 저장, 금융 패키지까지 아우르며 ‘에너지 풀세트 수출’ 모델을 구축 중이다. 한화오션은 고부가 LNG 운반선과 차세대 해군 함정의 주력 생산기지로 재정비되고 있다.
■ ‘리스크’ 사서 ‘미래’를 얻다···이제 전장은 글로벌·AI로
글로벌 산업 질서가 재편되는 이 시기, 한화는 사이버·전파전 등 비대칭 전장에 대응하는 AI 기반 방산 기술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국방과학연구소와 2000억 원 규모의 ‘L-SAM-II 유도탄’ 체계종합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이 시스템은 기존 L-SAM보다 3~4배 넓은 고고도에서 탄도탄을 요격하는 차세대 다층 방공체계로, 성층권을 넘는 고도에서도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특히 직격 요격(Hit-to-Kill)을 가능케 하는 위치자세제어장치(DACS)와 THAAD급 추진기관 기술력은 미국 등 일부 국가만 보유한 핵심 역량이다. 이 기술은 AI 기반 전장 인식과 실시간 추적 제어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한화의 AI 전자전 기술 확보 및 수출형 K-방공망 구축 전략의 교두보로 평가된다.
한화시스템은 미국 오버에어와 손잡고 eVTOL(전기 수직이착륙 항공기) 버터플라이를 개발 중이다. 상용화 목표는 2028년, UAM 상용 생태계 선점을 노린다. 전력 생산보다 더 중요한 ‘저장과 분산’ 그리고 지역 단위 에너지 자립망이 주목받는 가운데, 한화는 ESS 기술과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
김동관 부회장이 MADEX(국제해양방위산업전)에서 한화 방산계열사 사장들과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한화그룹)
■ 김동관이 움직이는 판…전략의 일부된 ‘승계’
과거 대우조선을 인수했을 때, 태양광에 승부를 걸었을 때처럼 ‘비주류일 때 투자하는 습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거리 전략의 중심에는 김승연 회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화는 그 철학을 조직 전체의 전략 체질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전략적 DNA는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중심으로 다음 세대에 자연스럽게 이양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한화솔루션과 방산·우주사업 등 핵심 성장축을 주도하며, 그룹 전반의 기술 기반 산업 확장과 글로벌 전략에 깊이 관여해왔다. 대우조선은 한화오션으로 다시 태어났고, 태양광 사업은 미국 시장을 장악한 에너지 자산이 됐으며, 방산은 단품 수출에서 종합 전투체계 기업으로 진화했다. 산업의 빈틈이 생기는 순간, 한화는 다시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