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활성화와 정보보안의 과제 자료집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관련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국회로 공이 넘어왔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TF는 은행 중심 설계를 고수하는 한국은행에 각을 세우고는 있지만, 사실상 한국은행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동안 업계는 이미 은행과 제휴에 나서는 등 안전한 관계망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민주당 디지털자산TF는 오는 22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관련 내용 등이 담긴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TF측은 지난 10일까지 금융위와 한은의 입장을 정리한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끝내 정부안은 하나로 수렴되지 못했고, 법안 처리는 해를 넘기게 됐다.

디지털자산TF 측은 더는 정부안을 기다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는 22일 관련 법안을 논의하는 시점까지 정부안이 제출되지 않을 경우, TF 차원에서 의원 입법을 통해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서 정부안을 패싱하려는 듯한 강경책을 내놓은 이유는 비단 업계의 요구 때문만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내년 상반기 치러질 지방선거 등 '정치 일정'으로 인해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지 않을 경우, 모든 성과를 다음 타자에 넘겨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내년 5월 14일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개시부터 6월 3일 투표일까지 약 3주간은 '정치의 블랙아웃(Blackout) 기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회의 공식 휴업은 아니지만, 여야가 모두 선거운동에 매달리고 언론은 선거 보도로 도배되는 만큼 기존의 정책 이슈는 모두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내년에도 3월과 4월 임시국회를 열고 법안을 다룰 예정이지만, 정당 차원에선 민생 입법 성과를 내세울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인 만큼, 2월 본회의에선 주요 법안들이 통과될 필요가 있는 셈이다.

특히 지방 선거 이후 여야 지도부가 교체되고, 일부 당선자들이 국회를 빠져나가는 등 상임위원들이 교체되면서 상임위에서 진행된 기존 논의가 완전히 리셋될 수 있는 우려도 있다.

현재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한은의 '신중론'이다. 한은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연이어 우려를 나타내며, 은행 중심의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한은은 시중은행 지분이 51% 이상인 컨소시엄에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부여하는 일명 '은행 51%룰'을 주장하는 한편, '은행 컨소시엄' 규제가 명문화되지 않을 경우, 인가 및 규제와 관련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한은 등이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반면 금융위와 국회는 업계 활성화를 위해 비은행권의 발행 또한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

법안이 지연되는 사이, 업계에선 '은행을 포함한 안전한 관계망 구축'으로 전략을 변경하고 있다. 은행과 핀테크, 블록체인 기업 등이 두루 연합을 결성함으로써 법안 결과에 상관없이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얼개를 짜놓는 셈이다. 디지털자산거래소인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지난 3일 하나금융그룹과 블록체인 기반 금융서비스를 공동 개발하기로 한 것이 한 대표적인 예이다.

가상자산 업계에선 이미 가상자산거래소 주도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어려울 것으로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선 국회 버전, 금융위 버전 모두 가상자산거래소가 발행 주체가 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며 "세계 주요 국가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지금 시점에선 유통 활성화 측면이나 사용처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