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GM 미국 테네시주 배터리 공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

올해 국내 배터리 산업은 전기차 수요 둔화와 트럼프 발 관세·보조금에 직격탄을 맞았지만,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앞세워 반등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생산 라인 재편과 기술 개발로 중장기적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전기차 캐즘은 올해 내내 배터리 업계의 가장 큰 악재였다. 특히 미국에서 전기차 세액공제가 조기 폐지 수순을 밟고,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충전 인프라 지원 축소와 함께 배터리·소재 관세 부과를 검토하면서 전 세계 배터리 기업들의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도 이 같은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고, 그간 NCM(니켈·코발트·망간) 등 삼원계 배터리에 주력해왔던 국내 기업들은 타격이 한층 더 컸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공격적인 확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CATL·BYD 등 중국 업체들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은 55%로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16%) 보다 3배 이상 많다.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 역시 전년 대비 3.5%p 하락하며 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

ESS(에너지저장장치)가 반등의 활로로 떠올랐다. AI가 전 세계 산업의 키워드로 부상하며 AI 데이터센터가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았고, 해당 시설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담는 저장장치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친환경 재생에너지 확산 기조가 이어지며 ESS가 전기차 배터리를 대체할 먹거리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이다.

하반기 배터리 3사의 실적은 ESS 생산 역량이 갈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3분기 기준 ESS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입한 LG에너지솔루션은 안정적인 실적을 거뒀고, 반면 삼성SDI와 SK온은 전기차 수요 둔화에 직격타를 받으며 적자를 거뒀다.

LFP 배터리를 탑재한 ESS 제품 'SBB 2.0'. (사진=삼성SDI)

이에 3사는 ESS 생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에서 전기차 배터리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고 장기 공급 계약을 확대하며 수주 기반을 넓히는 중이다. SK온도 미국 테네시 공장 등에서 ESS 전용 생산 비중을 키우며 현지화를 가속하고 있다. 삼성SDI 역시 ESS 완제품 'SBB' 시리즈를 중심으로 글로벌 전력·에너지 기업들과의 ESS 협력을 강화하며 전기차 편중 구조를 완화하려는 전략을 내놨다.

기술·제품 포트폴리오 전환도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배터리 3사의 R&D 투자는 2조3206억원으로 전년 대비 16.5% 증가했다.

그동안 NCM(삼원계)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을 공략해온 국내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과 안전성이 강점인 LFP 기반 ESS 배터리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중이다. 글로벌 기준이 LFP, 각형 배터리로 표준화되고 있는 만큼 양산 체제를 발빠르게 갖춘다는 목표다.

특히 LFP 배터리의 단점으로 꼽히던 무게, 낮은 에너지밀도는 ESS 분야에서는 핵심 고려 요소가 아니다. LFP는 제자리에서 구동되는 만큼 가볍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되려 NCM보다 높은 수명으로 안정성 측면에서 장점을 지녔다.

블루오벌 SK 테네시 공장 전경. (사진=SK온)

동시에 차세대 먹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며 중장기적 성장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 기술은 연구를 거쳐 파일럿 가동과 핵심 소재 검증 단계에 진입했고, 에너지 밀도 및 안전성에서 기존 배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다음 과제로 꼽힌다. 3사는 기술 초격차를 바탕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외에도 ESS, 휴머노이드 등 배터리 제품들의 활용처가 늘어날 것"이라며 "ESS 생산라인 전환,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 북미 현지화 등이 미래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