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항공업계가 위기를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의 ‘마이웨이’ 행보가 도마 위에 올랐다. 대한항공은 정부의 지원으로 경영 위기를 모면하는 모양새지만 정작 고객들이 불공정거래로 지적한 마일리지 개편안에 대해서는 ‘변경 없음’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항공기 이용이 급감한 가운데 소멸되는 마일리지를 둘러싸고 ‘개편안 강행’ 행보에 여론의 싸늘한 시선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 "소비자들에게 불리" 마일리지 개편안, 공정위 의견 무시
코로나19로 고사 위기에 직면한 항공사들은 저가 항공권이나 선불 항공권, 포인트 추가 적립 등 대대적인 이벤트에 돌입하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대한항공 역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선불 항공권 이벤트를 실시하는 등 고객 확보를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불공정논란이 됐던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제도 개편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 의견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29일 정부와 항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지난해 말 소비자에 불리하다는 의견이 있어 재검토 하라는 대한항공 마일리지 제도 개편안과 관련해 공정위 요청 자료를 자사 원안 그대로 제출했다. 기존안을 고수한 셈이다.
대한항공은 작년 12월 13일 대한항공은 현금과 마일리지를 섞어 항공권을 살 수 있는 이른바 '마일리지 복합결제'를 포함한 스카이패스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마일리지 적립률과 공제율 변경을 두고 소비자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개편안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항공 운임, 운항 거리에 따라 마일리지 적립률·공제율을 합리적으로 세분화한다고 밝혔지만 고객 대다수가 이용하는 일반석의 마일리지 적립률이 크게 낮아지고, 장거리 노선을 이용할 때 마일리지를 상대적으로 많이 공제한다고 반발했다. 마일리지 개편안이 소비자보다 공급자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마일리지 적립률을 바꿔 일등석과 프레스티지석은 적립률을 최대 300%까지로 대폭 높이고 일반석 가운데 여행사 프로모션 등으로 할인이 적용되는 등급의 적립률은 최하 25%까지로 낮춘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컸다.
특히 보너스 항공권과 좌석 승급 마일리지 공제 기준을 '지역'에서 '운항 거리'로 바꾸면서 고객 혜택을 증대한 개편이라고 설명했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선 마일리지 '부익부 빈익빈'만 커졌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대한항공은 "2002년 이후 19년 만의 조치로 대외 마일리지 적립 환경과 해외 항공사 트렌드 등 오랜 기간 누적된 변화에 대해 부분적으로 현실화한 결과"라며 "특가·프로모션 운임에 해당하는 일반석 예약등급은 항공사가 주력하는 운임이 아니므로 다수의 일반석 구매 소비자가 여기에 속한다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29일 공정위가 지난해 말 소비자에 불리하다는 의견이 있어 재검토 하라는 대한항공 마일리지 제도 개편안과 관련해 공정위 요청 자료를 자사 원안 그대로 제출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 개편안이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이 이오졌고 결국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개편안이 불공정 거래 행위에 해당한다며 소비자단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개편안에 따르면 항공권을 살 때 필요한 마일리지는 더 늘어나고 탑승 후 쌓이는 마일리지는 크게 줄어든다"면서 개편안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불공정 거래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마일리지는 소비자가 다양한 경제 활동을 통해 적립한 재산권이므로 대한항공에는 소비자가 자유롭게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사용하게 할 채무자의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금·카드 결제와 함께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복합결제 방식도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침해해 공정한 거래를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되자 대한항공은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새로워지는 스카이패스의 진실 혹은 오해'라는 팝업창을 띄우고 '팩트 체크'에 나서는 등 진화에 나섰다.
특히 소비자 불만이 집중된 보너스 항공권 구입에 관해서 이용률이 높은 일반석의 변경을 최소화해 공제 마일리지가 인하·동결된 노선이 인상된 노선보다 많다고 강조했다. 운항거리 증가에 따른 운임 증가보다 보너스 공제 마일리지 증가폭이 낮다는 점을 들어 개편 후에도 장거리 보너스 이용은 여전히 유상 구매 대비 유리하다는 점도 부각했다.
대한항공은 고객의 혜택을 증대하는 합리적인 개편이라는 주장이지만 소비자들은 불만을 제기했고 결국 법무법인 태림은 소비자 1817명과 공동으로 지난 1월 공정위에 대한항공의 불공정약관 심사를 청구했다.
태림 측은 "대한항공 고객의 대다수가 이용하는 일반석의 마일리지 적립이 현저히 줄었고 마일리지 공제 기준의 변경으로 장거리 노선의 마일리지 공제율이 증가했다"며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해 공정성을 잃은 경우에는 약관 조항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도 성명을 내고 "대한항공의 마일리지 대책은 소비자들의 권리보장이 아닌 면피용 대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공정위는 소비자 편익을 고려한 수정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대한항공 측에 전달하면서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대한항공이 개편안을 수정할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대한항공은 제출 자료를 통해 개선 의지가 없음을 밝혔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불공정약관 심사 작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도 ‘부익부 빈익빈’ 형평성 논란
코로나19 타격으로 인한 정부의 대대적인 금융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은 국책은행으로부터 1조2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과 함께 정부가 조성한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급)을 통한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한숨 돌리게 됐지만 일각에서는 대형항공사에 지원 자금이 쏠리는 것을 두고 ‘부익부 빈익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28일 기안기금 출범식을 갖고 기금운용심의회를 구성해 기업들의 자금지원 신청 접수와 실제 지원을 시작할 방침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대상은 총 차입금 5000억원 이상 국민경제 영향이 큰 기업과 근로자수 300인 이상 고용안정 영향이 큰 기업이다.
문제는 ‘자금지원 대상 요건’에 해당되는 기업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밖에 없다는 점이다. 다만 기재부장관·금융위원회가 기금지원이 필요하다고 이정하는 경우를 예외로 남겨뒀지만 일단 대한항공의 지원은 확보된 상황으로, 대기업만 살리는 기금이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전날인 28일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를 비롯한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혈세 40조원, 기간산업안정기금은 고용안정의 토대가 돼야 한다”며 “차별을 두지 말고 지원하라”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정부가 40조원에 달하는 기안기금을 조성해 항공산업 등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간산업에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을 때 희망적이었다”며 “그러나 막상 기금의 운용 방안을 보니 빚 많은 대기업만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었다”고 비판했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자 정부 및 채권단에 지원요청과 함께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매각 등 자구안을 마련하며 경영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전히 안갯속 하늘길이지만 다음 달부터는 13개 노선의 운항을 추가 재개해 총 110개 국제선 노선 중 25개 노선(주간 운항 횟수 115회) 운항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업계는 아직 여객 심리 회복을 논하기에는 이른 단계라고 입을 모은다. 항공업계의 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마일리지 개편안’ 강행은 결코 득이 될 수 없다. 지금은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