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 뷰어스=김재범 기자] 카메오 출연, 우정 출연, 특별출연 등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타이틀이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카메오는 관객들의 흥미를 끌만한 일종의 ‘쉼표’ 혹은 ‘재미’를 위한 장치쯤으로 여겨진다.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깜짝 놀랄 만한 인물의 등장은 작품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과는 또 다른 무언가를 전달한다. 하지만 반대로 ‘주객이 전도’되는 약점도 안고 있다. 자칫 잘못할 경우 작품 전체가 전달할 의미가 퇴색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존재감은 최근 흥행 영화의 분명한 한 지점을 담당하고 있다.
영화 '아가씨' 속 문소리
◆ 단 4장면의 위력…문소리의 존재감
현재 극장가 최고 화제작은 단연코 ‘아가씨’의 몫이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란 프리미엄은 둘째 치고, 김민희와 신예 김태리의 강도 높은 ‘동성애 베드신’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작품성과 완성도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란 타이틀이 대신해 주니 굳이 설명조차 필요치 않을 듯하다.
하지만 이 영화 속 또 다른 흥미 포인트를 찾자면 분명하게 문소리의 몫이 존재할 듯하다. 144분의 러닝타임 중 그가 출연한 분량은 단 4장면. 시간상으로도 채 10여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압도적인 연기력과 존재감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극중 남편인 코우즈키(조진웅)의 완벽한 통제 하에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을 연기한다. 히데코(김민희)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열쇠이자 향후 스토리 전개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결정적인 캐릭터다. 문소리는 극중 단 4장면에 불과한 분량을 위해 일본어 연습으로만 무려 2개월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의 ‘아가씨’ 특별출연 합류는 박찬욱 감독의 삼고초려로 이뤄졌단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단편 ‘파란만장’에서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동생 박찬경 감독이 연출한 ‘만신’에서 문소리의 연기에 다시 한 번 반한 박 감독은 이후 러브콜을 보내 결국 함께 하게 됐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문소리와의 작업은 오랫동안 바래왔던 소망이었다. ‘만신’ 속 그의 연기에 소름이 돋았고 존경심을 갖게 됐다. 언젠가 꼭 한번 모시고 싶었다”고 문소리에 남다른 애정을 밝혔다.
영화 '베테랑' 속 마동석
◆ 특별출연, 진짜 특별했던 존재감 ‘甲’
문소리의 이번 ‘아가씨’ 속 존재감은 영화의 흥행과 함께 더욱 입소문을 타고 있다. 물론 그에 앞서 여러 흥행작 속 혹은 화제작 속에서도 ‘특별출연’ 형태의 배우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며 색다른 재미를 관객들에게 안겨왔다.
‘특별출연’ 분야를 논할 때 무조건 가장 먼저 거론되는 배우가 있다. 지난 해 1000만 흥행 대열에 합류하며 대박을 터트린 ‘베테랑’이 그 주인공이다. 황정민의 흥행 보증 수표 입증, 유아인의 압도적인 악역 연기가 화제였다. 하지만 단 10초의 출연 분량으로 이 두 배우를 압도한 존재감이 있었다. 바로 배우 마동석이다. 그는 영화 거의 말미에 등장해 “나 아트박스 사장인데”란 대사를 치고 빠진다. 이후 이 대사는 각종 패러디를 양산하며 신드롬 열풍을 일으켰다.
‘아가씨’에 앞서 올해 개봉한 영화 속 ‘특별출연’의 존재감도 역시 특별했다. 흥행 여부를 떠나 관객들은 즐거워하며 박수를 쳤다. 배우 심은경이 목소리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로봇, 소리’는 탄탄한 완성도 속에서도 흥행에선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영화 속 한 배우의 존재감에는 다들 탄성을 자아냈다. ‘응답하라 1988’로 단숨에 대세 배우의 자리에 오른 류준열이 등장한 것이다. 당시 류준열은 ‘응답하라 1988’로 뜨기 전 오디션을 통해 합류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드라마의 흥행 뒤 뒤늦게 주목을 받은 케이스다.
국민 시인 고 윤동주의 생애를 그린 영화 ‘동주’의 선전도 올해 극장가의 화제 중 하나였다. 이준익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 강하늘 박정민 두 젊은 배우들의 캐릭터 해석은 탁월함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그리고 영화 속 스토리와 묘한 인연을 맺은 한 대배우가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시 ‘향수’의 저자 정지영 시인으로 출연한 배우 문성근이다. 문성근의 아버지 고 문익환 목사는 고 윤동주 시인의 실제 죽마고우로 유명하다.
‘1000만 요정’으로 불린 오달수의 데뷔 첫 단독 주연작 ‘대배우’에선 예상치 못한 배우의 ‘특별출연’이 웃음을 자아냈다. 오달수와 함께 ‘조선명탐정’이란 히트 시리즈를 만들어 낸 김명민이 등장한 것이다. 김명민은 충무로에서 ‘특별출연’ 안하기로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이번 등장은 오로지 오달수와의 의리로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김명민은 최근 인터뷰에서 “너무 즐거웠던 경험이다”고 웃음으로 당시 경험을 추억했다.
이밖에 여러 개봉 대기 중인 영화나 과거 흥행작 속에서 ‘특별한’ 재미를 전달했던 배우들의 특별출연 케이스가 현재까지도 입소문으로 퍼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궁금증 하나. 특별출연은 온전히 출연 배우 혹은 감독이나 스태프와의 친분으로 이뤄지는 일종의 ‘품앗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출연료는 어떻게 될까.
800만 흥행작 ‘과속스캔들’에 등장했던 가수 홍경민은 출연료로 주연 배우이자 절친 차태현에게 게임기를 선물 받은 것으로 대신했다. ‘부당거래’에 출연했던 연기하는 감독 이준익 감독의 출연료는 일종의 답례였다고. 그의 전작 ‘평양성’에 출연한 류승완 감독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단다. 글로벌 프로젝트 ‘옥자’를 촬영 중인 봉준호 감독은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중 ‘멋진 신세계’편에 재미있는 캐릭터로 출연했다. 출연료는 당시 입었던 개량 한복이었다. 그의 당시 출연은 자신이 연출한 전작 ‘괴물’에 등장했던 임필성 감독에 대한 답례이기도 했다.
참고로 국내 ‘특별출연’ 케이스 가운데 최고 출연료는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에서 ‘명성황후’로 출연했던 강수연일 것이란 얘기가 무게를 얻고 있다. 물론 정확한 출연료는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