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한유정 기자] 여느 평범한 날을 특별하게 해줄 현실 같은 판타지 ‘어느날’이 찾아왔다.
아내가 죽은 후 삶의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보험회사 직원 강수(김남길)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시각장애인 미소(천우희)의 사건을 맡는다. 미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찾은 병원에서 강수는 미소의 영혼과 마주하게 되면서 ‘어느날’은 시작된다.
갑자기 한 영혼을 보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어느날’은 판타지 설정이 그대로 노출된 영화다. 하지만 상처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은 상처의 크기, 종류와 상관없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현실적 감정이라 더욱 큰 공감을 선사한다.
극 초반, 혼수상태가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세상을 보게 된 미소와 홀로 영혼을 마주하게 된 강수의 모습은 그림같은 풍광, 음악과 만나면서 아름다운 판타지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어느날’이 담고 있는 가장 큰 축은 누구에게나 있는 상처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판타지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설정일 뿐이다. 아내가 떠나고 남겨진 강수와 엄마에게 버림받은 미소는 교감은 서로의 상처를 끄집어내고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한다.
‘어느날’은 고정적 선입견을 빗겨나가기도 한다. 남녀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어느날’은 로맨스물로 오해를 받았지만 강수와 미소는 의식의 동반자일 뿐이다. 오랜 병마와 싸우는 환자, 그리고 그를 지켜봐야 하는 환자 가족의 모습도 관습적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남겨진 사람과 버려진 사람으로 묘사된 강수와 미소 역의 김남길과 천우희는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연기로 더 현실감 있는 감정을 끌어올린다.
인물의 심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어느날’은 아름다운 풍경과 음악으로 감정을 극대화 시킨다. ‘멋진 하루’ ‘남과여’ 등의 작품을 통해서도 현실적이면서도 빼어난 영상미를 보여준 이윤기 감독은 ‘어느날’에서도 그 장점을 고스란히 살렸다. 강수가 미소를 영혼으로 본격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빗방울신, 두 사람이 함께 벚꽃을 맞는 모습, 해질녘 노을을 담아낸 병원 옥상신 등 허투루 넘길 장면이 없다.
최근 극장가에 넘쳐나는 거친 남성 중심의 영화에 지친 관객들에게 ‘어느날’은 휴식과 잔잔한 여운을 전해줄 작품이다. 더불어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오는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