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뷰어스=문다영, 이소희 기자] 국내 연예계에서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며 전설적인 존재로 자리잡고 있따. 2005년 서태지 컴퍼니가 발간한 DVD북 ‘낙엽지는 새’는 도서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 책은 ‘최단기간 최다금액 예약’이란 기록을 세우며 침체된 도서시장을 들뜨게 만들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다빈치코드’까지 눌렀다. 당시 교보문고를 비롯한 주요 인터넷 도서 사이트에서는 사전 예약 판매만으로 일주일간 1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인터넷 도서 사이트 개설 이래 최대 실적이었다. 출판 마케터들 사이에서 서태지의 존재는 그야말로로 ‘사건’이었다.
13년을 뛰어넘은 2018년, 출판계에는 방탄소년단(BTS) 바람이 불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신보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판미동 펴냄)는 출간 2년 만에 6월 1주 알라딘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역주행 신화를 써냈다. 멤버들이 마술가게에 트라우마가 담긴 물건을 다른 물건으로 바꾸는 모습을 담은 티저 영상 공개 후 이 책 판매량이 전 주에 비해 510배나 증가하기도 했다. 그들이나 소속사가 직접 쓴 책은 아니지만 방탄소년단 효과임은 분명하다.
이 책은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200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티어(LOVE YOURSELF 轉 ‘Tear’)’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앨범 발매 후 책 판매량만 3만 부에 달했다. 저자는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상을 받은 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줘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사진=출판사 제공)
■ BST 열풍에 출판업계도 ‘활발'
비단 이 책 뿐 아니다. 방탄소년단은 2016년 정규 2집 ‘윙스(WINGS)’에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콘셉트를 가져오면서 앨범과 책의 내용이 맞물리도록 했고 팬들의 ‘데미안’ 읽기 열풍을 이끌었다. 지난해 ‘봄날’의 뮤직비디오에도 SF 판타지 작가인 어슐러 K르 귄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콘셉트를 차용하면서 ‘문학돌’이란 별명을 얻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담긴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시공사)은 2014년 나온 개정판이 2쇄에서 멈춰 있다가 지난해 6쇄(1만 5000부)를 돌파했다. 방탄소년단이 읽고 영감을 얻은 책들은 각 앨범 발매 후 여러 차례 중쇄를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탄소년단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요시모토 바나나,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쥘 베른, 필립 체스터필드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언급하며 팬들과 함께 지적 성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특히 팬들은 해당 책들을 찾아서 읽은 뒤 노래 가사, 트레일러 영상과 뮤직비디오에 쓰인 상징을 연결시킨다. 세계관 스토리를 분석해 SNS에 공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방탄소년단과 관련된 책들은 이른바 ‘방탄 권장 도서’로 언급되며 파급력 높은 아이돌의 바람직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각 출판사 제공)
방탄소년단의 문화 영향력과 관련, 출판업계 한 관계자는 “문학적 상상력이 담긴 책과 뮤지션의 음악, 영상이 만날 때 그 의미가 확장된다. 파급력 높은 아이돌이기에 팬들이 저마다 새로운 버전의 스토리를 재생산해 내는 새로운 형태의 독서 열풍이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연예가 쪽에서는 방탄소년단의 남다른 스토리텔링 능력이 다른 아이돌과의 차별화는 물론 폭넓은 연령층의 팬을 확보하는 데 일조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한편 방탄소년단이 앨범 작업을 하며 영감을 받은 책의 인기는 물론이고 방탄소년단의 성공신화를 분석한 책들도 속속 발간되고 있다. 지난해 대중문화 연구자인 차민주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니체, 하이데거 등 철학자들의 이론으로 해석하는 ‘BTS를 철학하다’(비밀신서)를 펴냈다. 올해는 철학박사 이지영의 ‘BTS 예술혁명’(파레시아), 방송작가 출신 구자형의 ‘BTS 어서와 방탄은 처음이지’(빛기둥엔터테인먼트), 기자출신 김성철의 ‘This Is 방탄 DNA : 방탄소년단 콘텐츠와 소셜 파워의 비밀’(독서광), 연예기자 홍기자의 ‘BTS 음악 : 그들의 음악 & 에피소드’(찜커뮤니케이션) 등은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정치 사회 인문 등 다양한 분야 도서로 분석되는 것, 이는 소년들의 성공이 단순히 연예계의 쾌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가치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RM이 올린 방 사진(사진=방탄소년단 SNS)
■ BTS를 둘러싼 문화,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 법
방탄소년단이 음악시장에서 더 나아가 다른 영역에도 영향력을 끼치는 현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역으로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에 영향을 받고, 이를 다시 음악으로 풀어내 또 다른 힘을 발휘한다. 한 마디로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문화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방탄소년단이 2016년 여성비하 가사로 논란을 겪었을 당시 보였던 태도를 들 수 있다. 당시 방탄소년단은 앨범 수록곡 ‘호르몬 전쟁’과 RM의 믹스테이프 ‘농담’의 가사 중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있다는 논란을 겪었다.
이에 소속사는 “2015년 말부터 방탄소년단 가사 내 여성 혐오 논란이 있음을 인지하고 검토했다. 내용 중 일부가 창작 의도와는 관계없이 여성 비하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많은 분에게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입장을 내놨다.
여성의 인권 문제는 지금 와서야 뜨겁게 대두되는 문제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뿌리 깊게 박혀 온 논쟁이다. 고착되어 온 문화이기 때문에 정답을 내리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방탄소년단은 이를 인정했다. 그리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해당 가사들을 수정해 불렀다. 더 나아가 RM은 가사 논란 이후 여성학 교수에게 가사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는 등 행보를 보였다. 실제로 RM이 방탄소년단 공식 SNS 계정에 올린 방 사진에는 ‘맨박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이라는 책이 눈에 띄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돌은 대중의 인식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아이돌이 문화를 양산해내는 인물인 만큼, 이들이 지닌 생각과 가치관이 더욱 올바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현명한 음악이 나오고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이미 한 번 쓰인 가사는 대중의 인식에서 지워질 수도, 옹호될 수도 없다. 하지만 무작정 자신들의 세계관을 어필하기 위해서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눈과 귀를 열고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현상임은 분명하다.
이후 방탄소년단은 같은 논란에 휩싸인 적이 없다. 잘못을 반성하고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한 덕분이다. 이렇게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껍데기만 남는 음악이 아닌 알맹이가 들어찬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음악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넓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