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굿피플)
[뷰어스=손예지 기자] 사랑스럽다. 배우 김선아와의 만남 이후 느낀 소감이다. 작품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이다가도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을 칭찬할 때는 밝게 짓던 웃음. 드라마를 촬영하는 동안 느낀 감정들을 상시 기록한다면서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등에서 김선아가 작품을, 캐릭터를, 그리고 연기라는 행위 자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 중 최근까지 김선아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작품은 지난 16일 종영한 MBC ‘붉은 달 푸른 해’였다. 아동학대 문제를 고발한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서 김선아는 사건의 중심에 선 아동상담가 차우경 역을 맡아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고난도 감정 연기를 섬세하게 펼쳐낸 덕분에 전작 SBS ‘키스 먼저 할까요’(2018)에 이어 또 한 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는 호평을 들은 김선아다. 이런 가운데 이제 마음에 짙게 밴 인물의 여운을 비워내고 새 작품과 캐릭터를 사랑할 준비에 돌입했다는 김선아를 만났다.
▲ 끝난 지 꽤 되었는데도 ‘붉은 달 푸른 해’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전작들은 캐릭터가 오래오래 남았던 데 반해 ‘붉은 달 푸른 해’는 작품이 준 울림이 오래 갈 것 같아요. 너무 좋은 작품이었던 덕분이죠”
▲ 여전히 생각하면 울컥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마지막회 벽난로 장면이요. 그간의 배우 인생 중 가장 슬픈 장면이었어요. 유골이 있고, 크기가 이 정도 됐거든요(김선아는 직접 손을 들어 어린 아이 키 정도를 나타냈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촬영하면서 그걸 끌어안기도 했어요. 몇 시간을 촬영했는데 내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죠(결국 김선아는 눈물을 보였다)”
▲ 배우로서 연기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을 텐데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작년 여름 해외 일정 중에 제안받은 작품이에요. 휴대폰으로 대본을 받아봤죠. 원래 작은 화면으로 대본 읽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붉은 달 푸른 해’는 한번에 다 읽었어요. 도현정 작가님의 팬이었어요. 전작 SBS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2015)도 처음부터 끝가지 다 봤을 정도죠. 얼른 ‘붉은 달 푸른 해’ 제작진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궁금한 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배우로서 대본을 다시 읽으니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더군요. 너무 어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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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인지 제작진에게 정말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캐릭터의 콘셉트를 잡을 때 최정규 PD님에게 ‘우경이는 어른 아이 같다’고 했어요. 1~4회에서 우경은 마음이 많이 자라지 못한 느낌이 났거든요. 그래서 이것과 관련해 조금 여쭤보고… 거기서부터 시작됐죠. 대본의 뒷 이야기를 안 해주시니까 너무 답답하고 궁금한 거예요(웃음)”
▲ 극 중 우경은 어린 시절 아동학대로 동생을 잃고, 커서는 남편의 불륜 때문에 유산까지 겪습니다. 극한의 감정을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참고할 수 있는 건 대본뿐이었죠. 대본의 지문과 쉼표, 물음표, 느낌표, 마침표를 모두 신경썼어요. 우경이 처한 상황을 상상만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작가님이 왜 이렇게 쓰셨을까 대본을 읽고 또 읽었어요. ‘붉은 달 푸른 해’ 대본은 아주 친절한 대본은 아니지만 굉장히 친절한 대본이기도 했거든요. 꼼꼼하고 치밀하게 짜인 대본이어서, 이를 테면 어떤 시(詩)가 나오면 누구의 작품인지부터 관련 정보가 다 대본에 적혔어요. 시놉시스부터 드라마의 구성이 전부 다 이루어져 있었고요. 그 안에서 PD님의 현장 디렉팅도 아주 정확했죠. 심지어 PD님은 내게 늘 우경이 톤으로 이야기하셨어요. 이미 6개월 이상 대본을 보셨던 분이기에 PD님의 디렉팅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죠. 덕분에 끝까지 의지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 연기하면서 심리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드라마 통틀어 우경이 웃는 장면이 첫 회 초반 2~3개 뿐이었어요. 극 중 우경이 교통사고를 낸 뒤에는 우는 장면이 대다수였죠. 감정 조절을 잘 해야하는데 쉽지 않았어요. 특히 우경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이의 엄마(문예원)를 만나는 6회 대본은 손이 안 가더라고요. 죽은 아이를 돈 벌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엄마잖아요. 너무 재수 없어서 PD님에게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을 정도죠”
▲ 함께 호흡한 이이경(지헌 역)은 ‘김선아 선배 덕분에 작품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고 하던데요?
“이이경 씨가 처음에 ‘과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위축되어 있더라고요. 나는 이이경 씨의 출연작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2018)부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연기자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냐. 이 좋은 작품을 같이 하게 됐으니 우리 함께 가는 거다’라고 했었죠. 무엇보다 내가 우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이경 씨가 스윽 나타나서 이상한 말로 자꾸 웃겨주는 게 고마웠어요. 정말로 감각이 뛰어난 친구예요. 종방연 때 PD님과 작가님도 ‘갈수록 진짜 형사 같았다’고 하셨어요. 노력도 많이 하고 뭐가 뭔지를 잘 아는 친구라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또 남규리(수영 역) 씨도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에 놀랐어요. 연구하고 또 연구하더라고요. 차학연(은호 역) 씨나 우경이 남편을 연기한 김영재 씨도 마찬가지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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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 중 아동학대 피해자를 연기한 어린이 배우들은 어땠나요?
“요즘 아역들은 천재같아요. PD님이 아역 캐스팅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해요. 너무 중요한 배역들을 맡았으니까요. 보통 리허설을 3~4번 하면 아역들과는 6~7번 하는데요. 몇 번을 해도 해도 필요한 시점에 척척 우는 것은 물론, 카메라도 잘 알더라고요. 어떻게 아기들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깜짝 놀랐죠. 지금 생각해보면 순수한 덕분인 것 같아요. 나도 순수함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심지어 아역들과 연기할 때 감정이 주체가 안 돼 촬영을 중단한 적도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이모 왜 울어?’ 물었죠(웃음) 특히 시완(김강훈)이와의 마지막 장면이나, 희수(서이수)가 오빠의 그림을 쓰다듬으면서 ‘오빠?’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한참을 울었어요. 그런 한편 아역 배우들을 대하는 스태프들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PD님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이야기했고, 스크립터는 아이들의 기분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줬어요. 그런 노력이 아이들이 연기하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겁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성장이 진짜 빠르더군요. 극 중 우리 딸(주예림)은 어느 날 앞니 두 개가 빠져서 온 거 있죠? 하하. 또 ‘녹색소녀’로 나온 (채)유리는 항상 ‘김선아 언니, 안녕하세요’ 이러면서 배꼽인사를 했거든요. 그 모습을 보면 귀여운데 촬영할 때는 짠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어요. 아마 어머니들이 잘 케어해주셨겠지만 혹시라도 (드라마 상황이) 기억에 남지 않도록 상담을 잘 받았으면 좋겠어요”
▲ ‘붉은 달 푸른 해’로 하여금 아동학대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연기자로서는 어떤가요?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가 운전면허를 따잖아요. 부모도 그런 자격증이 있으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극 중 아동학대 가해자) 석우 엄마나 우경의 엄마(나명희)가 ‘나도 잘 몰라서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차라리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시험이 있으면 어떨지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나는 부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라는 고민도 했고요. 또 혹시 마음에 상처가 있는 이들에게는 ‘붉은 달 푸른 해’가 치유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사실 (극 중 아동학대 가해자를 대상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붉은 울음을 응원하기도 했어요. 편집된 장면 중에 우경이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붉은 울음이 죽인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동정 가는 사람이 있어요? 솔직히 말할게요. 나는 붉은 울음이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의 마음이 이와 같았을 거예요. 드라마에서 하나(이해온)가 (학대 가해자였던 아빠를 죽인) 붉은울음의 얼굴을 ‘착한 사람’이라고 표현해요. 아이들 눈에는 자기를 괴롭힌 사람을 처단해준 존재가 착하게 보였던 거죠. (작품에 대해) 메모를 많이 해 놨는데 좀 봐도 될까요?”
▲ 어떤 걸 기록해 놓았나요?
“내가 혼자 좋아서 적어놓은 게 많아요. (휴대폰 메모장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문제의식이 뚜렷한 드라마라 너무 좋았다’거나 드라마 속 시에 관한 것도 적고, ‘우리 아이들 연기가 너무 좋다’ ‘노래도 너무 좋다’!”
▲ 인터뷰를 대비해 준비한 건가요?
“작품마다 촬영하면서 느낀 점을 입력해두고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오래 전부터 했어요. 아직 JTBC ‘품위있는 그녀’(2016) 때 메모도 남아있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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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들에 대한 애정이 정말 깊어 보입니다
“그래서 ‘붉은 달 푸른 해’의 시즌2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해 연말 시상식에 갔는데 MBC ‘검법남녀’ 시즌2가 나온다더라고요. 너무 부러웠어요. 또 이이경 씨는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즌2’에도 출연하잖아요. 축하하는 동시에 부럽더라고요. ‘붉은 달 푸른 해’는 모든 배우가 애정이 넘쳐서 다들 시즌2를 희망했어요. 이렇게 시즌2 이야기가 많이 나온 종방연이 처음이었을 정도로요(웃음)”
▲ 연말 시상식 3관왕에 빛납니다. ‘2018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2018 SBS 연기대상’에서는 무려 대상을 받았습니다. 대상은 13년 만의 두 번째 수상이었고요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해도 후보에 오르는 자체가 쉽지 않거든요. 다시 대상을 받기까지 13년이 걸린 셈이니… 여러 감정이 교차했죠. 무엇보다 수상 여부를 떠나서 시상식 가는 걸 좋아해요. 처음 보는 배우들을 만나 신나는 것도 있고요(웃음) 드레스 입을 일도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원래는 예지원 씨랑 시상식에서 수다도 떨고 샴페인도 마시고 싶었는데 자리가 맨 앞이더라고요? 하고 싶은 건 못 했지만 그래도 재밌었어요. (예지원과) 작품 이야기도 나누고 상 받는 배우들 보면서 자극도 받았고요. 대상도 기뻤지만 좋은 분들 많이 만나 더 좋았습니다”
▲ ‘키스 먼저 할까요?’로 만난 예지원과 사이가 돈독한가 봅니다
“나에게는 작품이 끝난 후 재충전하는 게 숙제 중 하나예요. 그럴 때 예지원 씨가 큰 도움이 됐어요. ‘붉은 달 푸른 해’ 촬영할 때에도 틈틈이 괜찮냐면서 전화해주고 현장에 비타민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키스 먼저 할까요?’ 때 제일 부러웠던 게 순진(김선아)과 미라(예지원)의 우정이었거든요. 많은 여자 배우가 순진과 미라의 관계가 부럽다는 얘기들을 했고요.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친구를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잖아요. 그런데 예지원 씨가 현실에서 미라 같은 친구가 되어준 거예요. ‘붉은 달 푸른 해’를 촬영하면서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본 이가 예지원 씨였을 정도도로요.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 돌아보면 ‘키스 먼저 할까요?’나 ‘품위있는 그녀’처럼 여자 캐릭터들의 케미가 빛나는 작품들에 출연해왔습니다
“차기작인 SBS ‘시크릿 부티크’도 여성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라고 해서 선택하게 됐어요. 재밌을 것 같아요. ‘여인의 향기’(2011) 박형기 PD님을 다시 만난다는 점도 좋았고요. 당시에 정말 많이 의지했었거든요. 또 PD님만의 감성도 기대됩니다”
▲ 올해도 쉬지 않고 ‘열일’할 계획인가요?
“최선을 다해서 자주자주 작품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지 좋은 작품을 할 수 있거든요. 그냥 바라기만 해서는 안 돼요”